알아가는 책가게가 열리기까지_03

그렇게 자영업자가 되다

by 조아라

#핑크색문


세번째 남원으로 내려간 기간 중 둘째날이었나 - 그날은 또 어느 동네를 돌아볼까 하고 이곳저곳 자전거를 타고 이제는 익숙한 그 골목을 차랑차랑 페달을 밟으며 지나가던 차였다. 사거리 골목 모퉁이에 3층짜리 건물 1층이 눈에 들어왔다. 4면으로 둘러싸인 유리창문 테두리에 진한 핑크색이 칠해져 있는 공간에 지난번에는 보이지 않던 임대문의 종이가 붙어있었다.


어랏,


순간 페달질을 멈추고 건물 앞에 섰다. 바깥에서 본 공간 속 모습은 이런저런 집기들과 슬레이트로 덮힌 벽면, 나무로 벽면, 홀과 부엌 등으로 공간이 나눠져있는 형태였다. 안 보이는 곳까지 찬찬히 보고 싶어졌다. 임대문의 종이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했고 건물주는 타지역에 있는 관계로 대각선 가게의 사장에게 가게 문 비밀번호를 물어보라 하였다.


그렇게 들어간 빈 공간. 바닥부터 천장, 빈 창고, 화장실까지 구석구석 보았다. 크기와 공간의 구분, 뭔가 일관되지 않는 인테리어(?) 등 지금까지 봤던 열 몇 군데 중 단연 마음에 들었다. 권리금 여부와 월세, 보증금을 건물주에게 물었는데 가격은 좀 아쉬운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예상하는 월세의 맥스를 넘은 금액이었기 때문. 흠... 그래서 바로 계약하겠습니다! 라고 하진 못하고 좀 더 생각해봐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 고민하면 안될 것 같았다. 위치나 내부 등 금방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딱 주말 동안 고민하고 결정을 내려보자 싶었다.


좀 더 돌아보면 더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지 않을까, 내가 너무 지쳐서 성급히 결정하려고 하는 건 아닌가, 그래도 언젠가 결정을 해야 되는 건 아닌가 등 결정을 하고자 하는 나와 결정을 유보하고자 하는 내가 번갈아 가며 마음을 휘저었다. 그렇게 더웠지만 걸었다. 무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쨍쨍한 하늘에 목덜미를 덮은 머리카락이 어째 거슬렸다. 그래서 커트나 해볼까 싶어 눈에 보이는 미용실에 쓱- 들어갔다. 미용실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망설임 없이 단번에 들어간 내가 신기했다. 어떤 주제에 생각이 너무 많으면 다른 주제의 생각의 에너지는 덜 쓰여서 쉬이 결정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미용실 안 풍경은 장날을 맞아 꼬불꼬불 파마를 하는 할머니가 몇몇 있었다. 그리고 바지런히 염색과 펌을 확인하는 미용사가 놀란 표정으로 날 보더니 좀 기다려야 된다고 했다. 나는 쇼파에 앉아 멍하니 티비를 바라봤다. 티비 속에는 최양락와 팽..(누구더라..) 부부가 진행하는 부부 관찰 예능 프로인 듯 한데 이외수 부부가 신상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왠지 맛있어 보여 나도 저녁을 그 컵라면으로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방송이 끝날 때즘 내 차례가 되었다. 커트가 시작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작은 서점을 하고 싶다 하니 남원이 토박이인 미용사는 딱히 책이 안 팔릴 거라는 비관적인 말씀을 하셨다. 뭐 그러려니 싶었다. 나의 커트가 끝나갈 즘 미용사의 지인이 가게 안을 들어왔고 이야기의 화제는 급 성형수술로 바뀌었고 성형수술비용이 싼 곳은 서울이다 라는 결론을 내면서 나의 커트는 완료되었다. 나는 커트비가 얼마냐 물었고 만원을내고 나왔다. 잠시만, 커트가 만원! 꺄악 -


목덜미가 시원해져서 그런지 복잡했던 마음도 한결 시원해졌다. 그래, 주말 동안 생각해보자. 그리고 결정을 내리고 싶으면 내리자 싶었다. 이래도 후회고 저래도 후회일 것이다. 판단은 내 몫이고 그 이후의 과정도 내 몫이니 틀릴 건 없다 싶었다. 그렇게 주말 동안 그 공간을 몇 번 더 가보고 월요일, 계약을 하겠다고 건물주에게 연락을 했다.


#기싸움인가봉가


나는 소비생활에서 물건 값 잘 못 깎고, 흥정은 왠만하면 안하려 한다. 그래서 정찰제의 고마움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공간 계약은 그리 하면 안될 것 같았다. 고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이 밀당은 해야겠다는 생각각이 들었다. 그래서 준비를 단단히 했다.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를.


혼자서 공간은 알아보긴 했지만 혼자서 계약하긴 참 싫었었는데 마침 그 때 남원 가까이 지리산에 여행 온 지인이 시내쪽으로 나오신다 하여 내심 살았다 싶었다. 계약날, 지인들과 영화도 보고 맛난 점심도 먹은 후 계약하러 공간으로 왔다. 여수에서 사신다는 건물주도 혼자 오지 않았다. 건물주가 잘 따르는(것 같은) 분을 데리고 왔다. 인사와 으레 처음 보는 사이에 하는 이야기들을 지나 이전에 통화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월세 금액을 적는 칸으로 넘어가는데 전화상 얘기와 다른 말이 나와 당황했지만 침착히 설득해서 다른 말을 없앴다. 휴...


어쨌든 결과적으로 아슬아슬하게 1:0으로 진 기분이다. 많이 억울하진 않았다. 나름 고군분투했고, 성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씁쓸한 장면도 있었지만... 이는 내가 이 공간에서 지내면서 풀어야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세상이 왜 이리 끔찍해, 못살겠어' 에서 시작하는 생각보다 '끔찍한 세상, 내가 살 구멍은 어떻게 만들까' 에서 시작하는 걸 좋아하니까.


#사업자등록증


계약을 한 다음날 사업자등록증을 내러남원시 세무서로 갔다. 소문대로 금방 나왔다. 나는 그렇게 금방 자영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책임져야할 무언가가 생겼다는 생각이 뭉게구름 같이 커져서일까. 사업자등록증을 만든 그날 저녁 밥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 이제 이 공간을 어쩐담... 해야할 많은 것이 떠올랐지만 일단 작업테이블과 의자를 사고 인터넷을 깔아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책가게를 채우는 물건과 사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