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도난
#첫 오픈과 첫 손님
오픈 전날 남원에 내려와 오픈까지 해야 할 일을 적었다. 얼추 다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적고 보니 또 해야할 게 촤라락. 당연히 또 마음이 조급해졌다. 택 작업을 마무리하고, 임시 간판을 만들고 화장실부터 매장 구석구석 대청소를 하고 SNS에 공지글을 올리고, 입고한 책들 정리하고 드라이브에 기록하고 정산 리스트 만들고, 개업 떡을 근처 가게에 쫘악 돌렸다. 마지막으로 입간판에 [알아가는 책가게 오픈] 이라는 글씨를 적고 가게 앞에 내놓으면서 오픈 준비는 끄읕- 과연 어떤 사람들이 가게 문을 열까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카운터 테이블에 앉았다. 문 열자마자 사람이 들어오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오픈하고 2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도 안 들어오니 긴장이 확 풀어졌다. 이건 마치 가게가 아닌 내 개인작업실이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그런 기분이 들 때즘 드디어 첫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두둥! 얼마 전 지리산자락으로 내려온 지인의 가족이 남원 시내로 나올 일이 있어 왔다가 가게 오픈일을 아시고 들러주셨다. (역시 지인 장사인 것인가?! ^^;;) 아이들이 구석구석 책가게를 즐겨주었다. 첫 웰컴드링크도 재미나게 마셔주고 ㅎㅎ 아무튼 그렇게 고마운 첫 손님들이 다녀갔다.
그 이후로 SNS를 보고 온 인근 가게 사장님과 근처 공방 사장님, 궁금해서 들어오신 분, 소개 받고 온 분들이 있었다. 공간을 신기해하기도, 이곳에 서점이 생겨 좋다고도 하셨다. 나 역시 와주신 분들이 신기했다. ㅎㅎ 그렇게 첫 오픈일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영업시간 후 아는 분들과 치맥으로 마무리하였다. 다음날 뻐근한 어깨를 풀러 꼭 사우나를 가리라 다짐하며 -
#도난을 당하다
첫 오픈일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사우나 갈 준비를 하고 밖을 나와 자전거를 찾았는데 어----랏! 어디갔니? 자전거야 어디 간거니!! 오픈날 너무 많은 신경을 써서 그런가 나의 또 하나의 다리인 자전거를 신경쓰지 못한 그 결과! 자전거는 감쪽같이 도난당했다. (설마 자기 발로, 어디론가, E-T를 만나러 간 건...이놈의 과대망상 0-0) 하... 허탈했다. 가게 알아볼 때 제일 먼저 산 물건이자, 중고였지만 참 잘 달려줬던 자전거야.. 미안하구나 ;; 어쨌든 있어야 할 곳에 없는 자전거의 빈자리를 잠시 쳐다본 후 오래된 작은 목욕탕을 갔다왔다. 둘째날 가게 오픈 준비를 하면서 뭔가 도난의 흔적을 표시하고 싶었다. 범인은 범행 장소를 다시 지나갈 가능성이 있고 그 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 다시 되돌려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다못해 양심의 스크래치가 조금이라도 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 작은 사건일지라도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보긴 하지만 자전거는 여지껏 돌아오지 않았다. (ㅠㅠ) 그래서 나는 또 중고자전거를 샀고 이번엔 확실히 챙기리라 마음 먹고, 이름도 붙여줬다.
#깜짝 그림 선물
손님이 없는 시간, 할일을 멈추고 가게 안에서 보드로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건물 밖에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맞은편 가게에 앉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어랏! 아는 분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인사를 건넸는데 그 분은 당황해했다. 가게 전경을 그린 후 나를 깜짝 놀래켜줄 계획이었다고 하며 아쉬워했다. (나는 어쩔 때 보면 참 눈치가 없다) 연휴 기간 어딘가 가고 싶었는데 마침 내 책가게 오픈 소식을 듣고 급 남원행을 결정했다며 당일치기로 놀러왔다고 했다. 이열이열~ 멋지고 고마웠다. 나도 오랜만에 그 분 옆에서 드로잉을 했다. 그렇게 완성된 그 분 그림(왼)과 나의 그림(오) 둘 다 소중히 가게 한 자리에 놓았다.
#캣맘이 될 마음의 준비
가게 카운터 테이블에 앉아서 이것저것 하다가도 멍- 하니 밖을 쳐다볼 때면 길냥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노랑이, 삼색이, 턱시도, 검은냥, 고등어 등 각자 경계의 걸음으로 유유히 가는 그들을 보면서 묘하게 안정감을 얻는다.
눈에 밟히기도 하여 마트 갔다가 고양이 간식을 사서 가게 앞 구석진 곳에 놔뒀더니 한 두마리씩 지나가다가 고양이가 개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나는 그만 4kg 전연령용 사료를 주문해버렸다. 매일 가게를 여는 게 아니니 사료를 줬다 안 줬다 해야 되지만, 유독 눈에 밟히는 냥이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일단 밥을 주고 싶은 내 마음의 소리를 적극 따르는 것으로 결정! 땅땅 - 이제 나는 간헐적 캣맘이로소이다.
#댓글하나에 짜증 확마 -
오픈 3일째였나... 책가게 sns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당연히 내놓으라는 식의 댓글을 받고는 기분이 확 상했다. 감정을 떼어놓고 보면 충분히 내놓을 수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거 참... 표현의 방식 참 중요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정 선을 찾는 손님과 가게 매니저가 되면 참 좋겠는데... 끼리끼리라 할 수 없는, 네트워크라는 이름 아래서 가능할 수 있는 손님과 가게의 관계는 과연 가능할 수 있을까. 2년이라는 제한적 시간 안에 그런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다.
#사인은 참 어렵다
내가 만든 책을 가게에서 팔고 있다. 부끄러워하면서 홍보도 하고 있다. ㅎㅎ 오픈 주간 어느날, 남원 여행을 온 분이 그 책을 보고 굉장히 공감하며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순간 나는 내 손발이 없어지고 막.. 그래..ㅆ..다) 그리고 그 분이 내 책을 계산할 때 내가 만들었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사인을 해달라고 하셨다. 사인하는 격정적 나의 손떨림을 눈치채진 않으셨겠지? (^^;) 앞으론 좀 더 뻔뻔하게 팔고 사인요청에도 덜 부끄러운 척을 해야지 다짐했다(아자!)
#영업시간 내 주차 금지
차를 운전할 때 주차를 얼른 하고 싶은 그 마음 충분히 알고 있으나 일방통행에다 영업하는 가게 앞에 버젓이 양해 한마디 구하지 않고 차를 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운전하면 그러지 말아야지 곱씹어 다짐하곤 한다. 그렇다고 오만데만 주차금지 팻말을 붙일 수는 없고 일일이 차주한테 전화하기도 피곤하고... 나의 에너지를 덜 쓰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오픈 선물들
준비할 때도 그랬지만 오픈일을 기억하고 축하해주신 친지와 지인들의 다양한 물건과 현찰(!) 선물들이 두고두고 내가 갚아야 할 고마운 빚이 되었다. 덕분에 힘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오픈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공간을 신경쓰고 주신 잡지, 책, 식물, 쓰임새있는 물건들 두고두고 기억하리라. 그리고 나도 그런 의미를 공간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게 매니저가 되어야지,라는 어려운 다짐을 매일 하고 있다.
아무튼 10일 첫 오픈주간이 무사히 끝났다. 연휴라 손님이 없는 것일수도, 오히려 연휴라 그만큼 손님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 공간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 건 좋은 징조라 생각한다. 하지만 매일 문을 연다는 건 정말 힘들구나 라는 것도 알았다. 적정하게 내 페이스를 찾기까지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해보면 할 수 있겠다 싶다. 그렇게 공간에 눈과 손을 계속 붙였다 떼면서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자 싶다. 다음 오픈 이야기를 쓰러 나는 또, 가야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