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을 무사히 보냈다
#이렇게 책가게가 된다
서점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책이 많이 없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지만 지레 내가 찔려서 손님들이 물어보지도 않는데 앞으로 책이 더 많아질 거예요 하며 괜한 말을 하곤 한다. 오픈할 때도 너무 없이 시작한 건 아닌가 한켠에 살짝 부끄러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잘 모르는 책들을 마구 사들일 수는 없고, 지인들에게 기증해달라 막 부탁하기도 어려웠다. 기다리면 '어떤'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트윗에서 책장을 정리한다는 지인의 멘션을 보는 순간 '트위터 만세!' 하며 지인에게 연락을 드렸고 흔쾌히 가져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몇번 댁을 가본 적도 있고 책장에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도 대강 알고 있기에 그야말로 보물을 가지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차가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무리한 스케줄을 감행했더랬다.
대략 그날의 스케줄은 이랬다.
6:50 남원시외버스터미널->대구서부정류장 8:50 대구서부정류장(쏘카 대여)->지인댁 9:40 지인댁 -> 우체국 10:30 우체국 ->대구서부정류장(쏘카 반납) 11:37 대구서부정류장->남원시외버스터미널 13:20 남원시외버스터미널->책가게 14:00 책가게 오픈
시간이 쫓겨 다리가 후덜덜 거렸지만 그래도 예상 스케줄을 모두 클리어하고 나니 뿌듯함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다짐했더랬다. 내년엔 우야든동 차를.. 차를... ㅠㅠ
다음날 책이 도착했고, 하나하나 책을 살펴보며 정리하는데 뭐라 말하기 힘든 느낌이 들었다. 책을 가지러 갔지만 책만 가지고 온 건 아니었다. 수십년도 넘은 책 속에 꽂혀있는 지인의 메모지를 포함해서 오래된 종이 냄새 그리고 어마어마한 지식을 담은 고서적 등 한 시대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져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흔쾌히 가져가라고 해주신 지인께 감사하다. 이 이후로도 매주 꾸준히 책을 고르고 주문하고, 기증을 받고 있어 책이 더해지고 있다. 참 다행이다.
#가게앞주차
소도시 골목도 주차전쟁은 피할 수 없나보다. 골목거리와 맞닿아있는 유리문이 길게 하나, 작게 하나 있는데 작은 문은 정문이라 차량이 어지간하면 없지만 긴 문 쪽은 언제나 임시주차를 하려는 사람으로 인기 스팟이다. 오픈 초반에는 '그래, 굳이 일일이 주차하지 말라고 전화하기도 귀찮고, 정문만 보이면 되겠거니' 생각했다가 '어랏, 이건 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차량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가게 유리창이 덜컹 흔들리는 것이다. 쾅-쾅- 차량문을 여닫는 소리를 하루에 수십, 수백번 듣는 것도 별로였고. 또한 유리창에 애써 붙여놓은 포스터도 차에 가려 보이지도 않고... 이래저래 가게 매니저로써 주차된 차량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근처 주차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많다. 가게에서 우측으로 10m 정도 가면 넓은 공영주차장이 있고 직선 방향 30m로도 무료 주차장이 있고... 그 10m, 30m 가기 귀찮아 영업 중인 가게 앞에 차를 대는 것이다. 그래서 주차금지 콘을 시청에서 얻어 표시라도 해두자 싶었다. 콘 3개와 가게 왼쪽거리에 있는 화분 하나를 갖고와 고정시켰다. 맞은편 식당 사장님은 잘했다고 하고, 대각선에 차 가지고 오는 손님이 많은 가게 사장님은 내가 놓은 주차금지콘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어쨌든 이후로도 아예 안 대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처음보다는 줄었다. 콘이 종종 타이어에 찌그러지기도 하지만...(불쌍한 콘 ㅠㅠ)
얼마 전 골목경제활성화 사업 계획을 세우는 어느 컨설팅 회사에서 예가람길 상인들을 불러모았다. 여러 이야기 중에 차없는 거리 이야기가 나왔다가 이내 쏙 들어갔다. 거참... 일방통행 골목 갓길에 다닥 붙어있는 차량을 용인하면서 골목경제활성화? 흠좀, 이상한데?!
#크리스마스
나는 무슨무슨 데이를 개인적으로 챙기거나 기억하는(고 싶은) 사람은 아니지만 가게 매니저로써는 연말을 맞아 뭔가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래서 뭔가 만들어보자 싶어 고향집에서 안 쓰는 옷걸이를 활용해 트리를 만들었다.
이 트리를 만들면서 다시금 깨달았는데 나는 있는 재료로 새로운 걸 만드는 걸 참 좋아하는 닝겐이다.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이래저래 지인들과 파티를 하려다가 파토가 나서 그럼 뭘해볼까 하다가 10% SALE 기간을 정했다. 연말연시 작은 동네 서점이 새책을 10% 할인한다는 것은 정말로 큰 맘 먹고 하는 이벤트임을 동네 책방 사장님들은 알아주시겠거니.. ^^;;
#축사경험
부끄러웠지만 재밌는 경험을 했다. 팟캐스트 귀촌녀의 세계란 프롤로그에 축사 녹음을 한 것. MC 중 한명이 완주에 살고 있는 지인이기도 하고 올 봄에 시골 책방 관련 이야기를 나눴던 지인도 PD로 참여하는 방송인데 나보고 축사를 해줄 수 있겠냐 연락이 왔다. 어이쿠야, 제안이 고마워 냉큼 한다 했지만 윽.. 이내 '내가 뭐라고병'이 도져서 한참을 고뇌하다가 녹음할 문구를 적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내 목소리도 들어간 프롤로그 방송을 들었는데 첫방부터 반전이 있을 정도다. 하핫 ^^ 아무튼 귀농, 귀촌을 비롯해 다른 지역에 살고픈 사람이 찾아 듣는 방송이 되기를 응원해용~
#특이한 사람들
어이없게도 나의 성별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던가 하면 아무 약속도 없이 대뜸 인터뷰 요청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옷가게도 아닌데 자신이 새로 산 옷이 어떤지 진지하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이래저래 이상한 기분(feat. 짜증)이 들었지만 외로운 사람이 어디에나 있구나로 정리하고 싶다. (-_-)
#골목 경제 활성화
책가게가 있는 곳은 옛 남원군청이 있던 길거리 끝자락에 있다. 군청따라 길 이름을 예가람길이라고 지었으며, 이 거리를 전주의 한옥마을 근처나, 서울의 익선동, 대구의 북성로 등과 같이 왁자지껄 사람이 모이는 특색있는 거리로 만들고자 시에서 꽤 공들여 왔는데 잘 안되었다는 정보는 이미 가게 오픈 전부터 나는 몇 번 들어 알고 있었다. 밑바진 독에 예산붓기마냥 인구가 격하게 줄어드는 소도시에서 으레 있는 행정 이벤트였겠거니 생각하며 별 감흥이 없었다. 근데 얼마전 시에서 다시 이 길을 살려보려고 정부예산을 받았다고 한다. 박수칠 일이지만 이래저래 나의 경험상 쌓인 데이터로 말미암아 좀 찜찜한 기분부터 드는 건... 하... 어짜쓰까잉... (ㅡ0ㅡ)
#생계형 알바 끝
손님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고, 즐겁고 좋은 관계도 생겼지만 매출은 어쩜 이리도 쩜쩜쩜 (0-0) 인건비는 준비할 때부터 바라지도 않았지만 운영비도 안 나와서야 가게라고 할 수 있겠나 싶다. 자기만족형 제작자와 수지타산적 자영업자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다고 할까, 양립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흠...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결정을 하게 되겠지. 그래도 비출퇴근형 생계 알바로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알바가 있어서 내가 만들고 싶은 책가게로 만들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원하는 일은 취미로 해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말, 생계는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한 한달이었다. 그나저나 올해는 어찌 잘 넘겼는데 과연 내년엔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새해, 컴온!
내가 가게 안에서 요리조리 이것저것 하는 와중에 길냥이들은 부지런히 배를 채우러 왔다. 든든히 먹고 이 겨울을 잘 보냈으면 좋겠다.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군 -_-;)
암튼 많이 많이 먹어냥. 2018년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