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는 책가게를 열고나서_05

춥고 다채로운 1월이 간다

by 조아라

#드디어 지리산 종주

2018년을 맞이하면서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곳은 바로 지리산. 그것도 1박2일로 종주로 가고 싶었다. 1월 첫째주에 가게 임시 휴무를 공지하고, 식량을 구비하고, 필요장비를 챙기고, 루트를 확인하고서 친구와 함께 떠났다. 천안에서 내려오는 친구의 대중교통편을 고려하면서도 종주 첫 경험자에게 맞는 루트를 폭풍 검색한 결과 [화엄사 출발-노고단 대피소(1박)-노고단 정상-화개재-뱀사골 도착]이 좋을 것 같았다.

종주 첫날. 커피 한잔의 여유를 만끽하고 남원에서 버스를 타고 화엄사 정류장 도착. 그날 날씨는 완벽했다. 공기도, 하늘도. 화엄사도 스윽 구경하고 삶은 달걀이지 하면서 까먹고는 등산 시작. 친구와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며 한시간, 두시간 올라가는데 세시간부터 고비가 찾아왔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올라가는 코스는 듣던대로 계----속 오르고 또 오르는 돌산 코스. 단 거를 먹어가며 근근히 올라가다 막판에는 거의 네발로 올라갔다. 나의 등산 역사에 네발로 오른 건 또 처음. 아무튼 무사히 예상한 시간에 노고단 대피소 도착. 일몰을 보는데 나의 네발 역사쯤은 좋은 추억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운수대통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풍경 ;;


노고단 대피소에서 기대 이상으로 따뜻하게 잠을 잤다. 아침밥을 든든히 챙겨먹고 걷기 시작했다. 노고단을 지나 고개고개를 넘어가면서 지리산자락 풍경을 눈에 담았다. 참 좋았다. 생각보다 빨리 화개재에 도착해서 꽤 오랜 시간 쉬고 뱀사골로 내려오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기분이 들어 코스를 다시 확인하니 이런 이런, 마지막 화개재에서 뱀사골 코스 시간을 완전 착각한 것이다. 4.5시간이 걸리는 걸 45분으로 읽고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ㅠㅠ) 졸지에 종주 첫 경험자 둘이서 9시간 동안 꼬박 20km를 걸었다. 뱀사골 정류장에 도착한 나의 무릎 관절은 어디론가 잠시 사라졌었지. 며칠 다리를 절룩거렸지만 돌아오는 봄에 다른 루트로 또 가리라 다짐했다. 그 때는 안내판 제대로 읽을테야.

섬진강아 어쩜 그리 빛나는 거니~


#깜짝 타이밍

눈이 아주 많이 온 1월 10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대설주의보 재난문자가 시시때때로 울렸다. 재난문자에 깬 나는 가게 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그래도 그래도, 볼일을 보는 사람은 있을테고 주문한 책을 찾으러 오는 손님도 올 수 있으니 열자 싶었다. 나의 일은 기다리는 일이니까.

가게 문을 열고 길냥이 밥을 주고 바깥 눈을 치우고, 가게 바닥을 쓸고 점심을 해먹고 커피를 마시며 책상에 앉아 밖을 보았다. 지나다가는 사람은 드물게 있었지만 꽁꽁 싸매고 어디론가 부리나케 걸어갔다. 너무 추운 날. 나조차도 다들 얼른 집에 가서 몸들 녹이길 바라게 되는 날. 길냥이들도 어디에 숨어있는지 밥먹으러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공간에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데 문이 덜컹 열렸다. 지난주 책을 주문하신 분이 책을 찾으러 오셨다. 볼일 있어 나왔다가 들렀다고 했다. 문득 오늘 '내가 안 나왔다면...'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하고 복잡 미묘한 기분이었다. 저녁이 되니 더 어둡고 더 추워졌다. 조금 일찍 닫자 싶어 정리를 하던 차에 단골 손님이 오셨다. 이 추운날 어쩐 일로 나오셨냐고 물으니 맞은편 칼국수 집 가려고 나왔다가 들렀다고 한다. 다시금 '내가 안 나왔다면...' 하는 생각에 고맙기도 하면서 왠지 모를 오만기분에 부랴부랴 이 글을 쓴다. 추운 오늘을 기억해야겠다. 기다리는 일, 뭘까?



#공부

올해는 공부를 꾸준히 하고자 마음 먹었다. 좀 더 전문전문한 무언가를 쌓고 싶은 욕구가 작년부터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했기에 올해는 그 기운으로 배우고 싶은 걸 꾸준히 공부하고 응용해볼 것이다(단호!)

관심 분야 중 코딩이 있다. 코딩 강의를 몇 년전부터 보다 말다 했다가 이번엔 16일 동안 매일 꾸준히 보면서 이해가 안되는 건 반복해서 보면서 '어랏, 나도 사이트를 만들 수 있어!' 하는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책가게 사이트를 만들어볼까? 호호홋 곧 CSS-JAVA- PHP수업도 꾸준히 들어야지. 그나저나 코딩을 꾸준히 여러차례, 다양하게, 알기 쉽게 알려주는 이고잉 정말 스고잉! 혹시 이게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코딩야학(클릭)


#종교란 무엇인가

남원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이 책가게는 신기한 한편 들어오긴 어려운 공간인가보다. 슬쩍 유리문을 통해 안을 보지만 선뜻 들어오시진 않는다. 먼저 이곳에서 식당을 시작하신 분한테도 들었던 이야기였다. 시간이 걸릴 거라고. (그냥 안 들어오고 싶은 걸수도 있지만 ;;)

아무튼 그와중에도 문을 벌컥 여는 사람 중 거의 90%는 종교인이다. 특히 하늘 쪽을 믿는 계열에서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가게에 들어오신다. 하나밖에 없는 자기 딸래미가 이단에 빠졌는데 자기 아는 목사님이 있으니 구해줄 수 있다고, 나보고도 주위에 그런 사람 있으면 자신한테 연락을 하라느니... 하는 말부터 인자하게 책가게에 대해 이것저것 묻다가 종교는?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사람까지... 흠... 아직까지는 뭐... 그러려니 해야지. 이젠 어느정도 옷 매무새나 관상을 보고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수구-정화조-부가가치세

1월이 다채로울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부가가치세 신고 덕(?)이었다. 1월 25일까지 모든 사업자는 이 신고를 해야하는데 국세청에 로그인하는 것만 1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과정마다 모르는 용어가 잔뜩 나와서 하나하나 공부하면서 신고 작업을 했다. 지인에게 물어보고, 물어본 걸 또 물어보면서 공부해가면서 신고작업을 한 그 주에 싱크대 하수구에 물이 역류하는 바람에 하수구 뚫는 작업을 했고, 그러다가 우연히 열어본 정화조는 가득 찰 것 같아 건물 정화조 청소를 했다. 어쨌든 세금은 중요한 것이기에 그 깊은(?) 의미를 알아가며 신고를 했고 싱크대는 더이상 물을 뿜지 않았고 정화조는 새로이 채우면 된다. 초보 사업자가 힘겨운 한 주를 보내고 먹은 탄두리 치킨을 잊을 수는 없을리야 -

화목 난로에서 구워 더 꿀맛 (사진은 안 그래보이지만;;)



#끼니 할끼니

작년에 남원에 내려오면서 먹는 거 하나는 참 잘 먹고 산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동안 못 먹고 산 건 아니었지만 일상에서 채워지는 뭔가가 있다. 생선 구워놨으니 밥 먹으러 오라 부터 시골집에서 고기파티를 하기도 하고 전복을 넣은 미역국을 함께 먹기도 하고, 간간히 가게에 들르는 동네 친구들이 김밥, 곶감, 떡, 원두, 차 등 건네주는 먹거리까지-

서로의 공간이 가까워야 동네 살이를 체감할 수 있나보다. 서울의 동네와는 전혀 다른 밀착감이 있다. (이 점이 동네를 좁은 시야로 만드는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나의 끼니를 걱정해주는 동네 친구분들이 있어 굶어죽을 걱정은 할 수가 없다. 고마운 일상이다.


#물청소

매주 토요일 책가게 구석구석 물청소를 한다. 효용성으로 치면 쓸데없는 것 같긴 하다.(사람 발자국의 흔적이 그닥 없기에...)

내가 이 일을 하게 시작한 뭐랄까 일종의 초심을 확인하는 일인 것 같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손님이 없어도 내가 정한 일을 내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이란 누가 알아주면 더없이 좋지만 모를 수밖에 없는 일 투성이니까. 비교하자면 끝도 없고 남의 떡은 더 커보이는 법. 직장을 다니든 프리랜서든 자영업이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물걸레질을 끝내니 가게 바닥이 반딱반딱하다.


#가게 밖 풍경 한가닥

이 공간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좋아하는 풍경이 하나 생겼다. 저녁 어스름 바깥 공기의 색이 짙은 파란색이 되는데 핑크색 문 테두리와 참 잘어울린다. 이 공간에 햇볕이 드는 시간이 너무 찰나라 아쉽지만 그나마 저녁 어스름을 느낄 수 있어 좋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잔망스럽네 ;;


#저도 카페 좋아합니다만

손님한테 자주 듣는 말이 생겼다. "카페 안하세요?" 혹은 "카페하면 돈 벌텐데" 혹은 "딱 카페 공간인데" 라는 말. 빈 공간이 아까워서 하는 말일 수도, 책 팔아서 돈 못 벌텐데 하는 안타까움에 하는 말일 수도, 아무튼 생각해주는 말이겠지만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다짐한다. '카페는 하지 말아야지!' 왜 그런 다짐을 하게 되는지는 글쎄, 잘 모르겠쒀요.


#난로

음력 12월 1일에 아고민하고 또고민하던 난로를 구입했다. 크게 신경써야 되는 물건을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들이고 나니 좀 더 빨리 살 걸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닝겐은 얏빠리 오모시로이. 사과 아그작아그작)

난로를 산 뒤로 고구마를 매일 굽고 있다. 고구마 냄새 폴폴 나는 책가게. 캬~ 낭만이 살아있네예~ 하하핫 (아마 2주만 지나도 질려서 안 먹을 것 같지만 ;;)

맛있고구마
난로 처음 켠 날 *^^* 훈기가 폴폴~


#길냥이 집

엄마가 보내준 반찬용 스티로폼 택배 박스 크기가 딱 길냥이 급식소로 안성맞춤이었다. 길냥이들은 추운 곳에 밥 먹는데 나는 가게 안에서 그 모습을 보기가 내심 켕겼었는데 한결 마음이 놓였다.

자주 오는 고등냥. 눈 마주치면 째려본다


잘 놀고 잘 보고 잘 지냈지만 그래도 책가게 운영으로 보면 혹독한 1월이었다. 인스타에서 겨울을 힘들게 나는 책방을 비롯해 뭔가 하고자하는 소규모 자영업의 이야기를 한참 보면서 쉽게 공감을 표시하거나 댓글을 달 수 없었다. 그 무게를 아니까 더 못 다다가는 마음. 얼른 (공기가 좋은) 봄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렇게까지 봄을 절실히 기다린 적이 있었을까 싶다. 뭐, 봄이 와도 나아질 거야 라고 장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따뜻할테니까 그것만이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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