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생초보 적응기 시이이,작
#월동준비
겨울이 일찍 왔다. 11월 중순부터 영하로 뚝 떨어지다니... 부랴부랴 가게 내 바람이 새는 문틈 등 막을 수 있는 건 막았고 난방기도 일찍 가동했다. 전기요금이 불안하긴 해도 쓸 때는 쓰자 하며 마음을 토닥토닥하고 있다. 그렇게 가게 홀은 얼추 월동준비가 된 것 같은데 큰 준비가 필요한 곳은 바로 화장실. 건물 뒷편에 간이로 만든 공간이라 그런지 거의 바깥인데 하... 여기를 어찌할꼬. 손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민을 더 해봐야겠다. 이 참에 공간 공부를 해보지 뭐.
월동준비를 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따로 있었다. 바로 석유난로를 살 것이냐 말 것이냐는 고민. 일찍 찾아온 추위에 순간 겁을 먹은 것 같다. 여름 끝자락 오픈 준비를 할 때 겨울에도 쓰려고 컨버터형 냉난방기를 샀지만 왠지 그것으론 부족하면 어쩌지 하는 호들갑 + 난로 위 주전자를 올려놓거나, 고구마를 구워먹는 이상적인 장면을 상상하는 낭만으로 서둘러 난로를 알아봤다. 가격 천차만별, 종류도 각양각색. 하... 냉난방기를 살 때의 스트레스가 되새김질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불을 직접 내는 장치니까 혹시나 화재가 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생겼다. 물건을 들인다는 것은 걱정도 함께 들이는 거구나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자영업을 하면서 더 절실하게 느낀다. 공간 뿐만 아니라 공간에 놓여진 물건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 힘든 일이구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의 갯수가 늘어나는 게 나에게는 그닥 기쁜 일이 아니라는 걸 이 참에 거듭 알게 되어 조금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난로는 사리라. 시기는 좀 더 고민해볼테지만.
책방에 낭만이 빠지면 안되지, 암 그렇고 말고 흠-_-흠
#적정소비생활
책방 일 외 활동이 생겼다. 네이버오디오클립 적정소비생활 에서 패널 '아요'로 참여하고 있다. 격주로 긍정적 합리주의자 소비생활을 피력(?)하고 있다.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 (현재 잠정 휴식기) 에서는 조수석이란 네이밍으로 뭐든지 해봐요 요정의 캐릭이었는데 ㅎㅎ
관심있는 주제를 가지고 수다 떨 듯 긴장한 듯 내 생각을 잘 정리해서 이야기해보는 것, 정말 좋은 경험이다. 초반엔 '내 얘기가 도움이 될까, 안 들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적어도 나에게 도움이 되니까, 누군가 듣겠지' 하며 재밌게 참여하고 있다. 직장계 N잡러가 트렌드(!)인 요즘 오디오계 N패널러로 자리매김해볼까 하는 뜬금포 허무맹랑 상상도 살짝 해보고... (찡긋)
#거꾸로레퍼런스
11월 4일 토요일. 책가게를 여는 날이지만 10월에 흔쾌히 약속한 행사에 가기 위해서 과감히(?) 닫고 서울로 향했다. 전자책출판 협동조합 롤링다이스(이하 롤다)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이하 기청넷)에서 공동 주최했고 느슨한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 거꾸로컨퍼런스에서 주저리 주저리 나의 이야기를 보탰다. 조직에서 일한 경험과 함께 일한 경험을 꺼내놓기도, 앞으로 함께 일할 경험을 상상해보면서 말이다.
부업 공동체인 롤다와 가치(?) 공동체인 기청넷의 지난과 앞으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막연히 느낌적 느낌으로 생각했던 '느슨한'의 의미를 내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느슨한 조직(공동체)이란 나에게 편한(맞는) 일하기 구조를 만들 수 있는, 나의 발언이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은 조직(공동체)이 아닐까 싶다. '내'가 기준이 될 수 있는만큼 '남' 역시 '나'와 같이 느낄 수 있도록 신경써야 할테고. 편한 말이긴 하나 편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더 민감하게 신경써야 되는 셈이다. 느슨함이 마냥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건 경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느슨함이 안 맞는 사람도 분명 있다. 타이트하거나, 시키는 일만 한다거나, 발언을 할 필요가 없는 곳에 있고 싶은 사람도 있을 터다.
조별로 나눈 이야기 중 나와 남을 신경쓰는 이런 느슨한 곳에서는 쌓이는 부채의식이나 미안함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런 감정을 없애고 좀 더 자신이 도움이 되는 동료가 될 수 있을까 에 대해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기프티콘이었다. 내가 올해 책가게를 준비하면서 기프티콘의 위력(!)을 느끼기도 했고 이런 주는 기쁨 받는 기쁨이 이따금씩 가진다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윤활유가 되어 주지 않을까, 응원을 주고 받는 의미로다가 말이다.
조직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미약하다고 느껴지고 그것이 동료를 향해 미안한 마음으로 전이될 때가 있다. 갸륵하지만 그 마음을 지속하게 놔둬서는 시름시름 괴로워질 것이다. 아무리 느슨하고 편한 조직이라고 해도 일로 뭉쳤으니만큼 일이 되게 하는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계에서 말 한마디, 표현 하나하나 자신의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잘 못해서 다른 구성원이 애쓰고 있다거나 내 역량과 다른 월등한 동료의 역량과 비교에 휩싸일 때 해소하는 방책으로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은 동료에게 기프티콘을 쏘는 것. 미안함을 해소하고 조금이나마 영향을 주는 것으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지 않을까? 단, 그것으로 면피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 안되겠지만.
얼마전 일상기술연구소 리피디가 이런 내가 한 헐레벌레한 이야기의 요점을 콕 집어 쓴 글을 보았다. 한겨레 ESC 이를테면, 기프티콘 보내기 (하.. 내가 뻘말을 한 게 아니었어.. ^^;)
조직에서 일하는 게 안 맞아 하고 나왔어도 어느 커뮤니티에 직간접적으로 있기 마련. 나 역시 앞으로 어떤 동료들과 어떤 조직을 만들지 모른다. 애써 벗어나려고 하기 보다 내게 맞는 느슨한 끈을 놓지 않고 잡았다 놓았다 연습해보리라 마음먹은, 나에게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준 컨퍼런스였다.
#부럽고 또 부러움
서울 합정 당인리발전소 근처에 새로운 북카페가 생겼다. 유명인(오상진&김소영 아나운서 부부)이 만든 그 책방은 오픈하자마 마자 언론의 관심도 받고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 관련 기사를 읽기도 하고 김소영 씨의 자영업이 힘들다는 투정섞인 글도 봤는데 뭐랄까, 참 부럽다랄까. 그 몫 좋고 비싼 곳에 기계들이며 책들이며 쏵- 사들여 알바생까지 두며 장사를 해서 그런가...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오상진이라고 해도 질투가 났다. 유명인이 뭔 죄야 싶다가도... 나는 나대로 살거야 라고 하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 거겠지. 내 안에 보고 싶지 않은 속물근성을 오랜만에 발견했다. 동종업계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네. 애써 돌려 말하기는 싫다. 변죽 올리지 말고 부러운 건 부럽다고 이야기하자 마음 먹었다. 암튼 그 가게가 마냥 부럽네.. 쯔업 -_-
#지진
11월 15일 수요일 고양이 밥을 주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어떻게 만들어 볼까 고민하려고 할 때 폰이 삐아아악 울렸다. 포항에서 규모 5.5 지진이 났다는 긴급재난문자를 받고 오매.. 어짜쓰까나.. 하는 순간 가게 건물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오! 마이! 갓! 깜짝 놀라 밖을 나가보니 동요하고 나온 사람은 나 뿐이었다. 건너편 드럼교실은에 수강생들은 쿵짝쿵짝 페달을 밟고 있었다. 뉴스를 보니 포항이 난리가 났다. 아이고... 나 역시 가게에서 대피요령을 읽고 또 읽고 머릿 속으로 시물레이션을 하고 그렇게 마음의 불안을 없애려 애쓴 2시간 뒤 폰이 또 큰 소리로 울렸다. 포항에 또 지진이 난 것이다. 작년 울산에서 겪은 지진, 그 공룡 수백마리가 표효하는 것 같은 소리가 땅 끝에서 올라오며 진동을 느꼈던 그 때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아... 핵발전소 어쩌나.. 휴...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CCTV
사촌이 사놓고 안 쓴 홈CCTV를 주길래 받아 걸었다. 책가게를 오픈하고 많이 들은 말 중 '여자 혼자 있는데 CCTV라도 걸어야지' 라는 말. 그놈의 여자혼자라는 말, 무슨 사자성어인가 싶다. 여자 혼자 살아도 살만한 세상은 언제 오는 것인가. 여자 혼자 잘 사는데 건드리는 이상한 XX들을 잡아다가 엄벌에 처해야지 저런 말이 사라지려나.. 나 역시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 한구석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함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서 CCTV를 걸어야 될까 말까 고민하는 중 어쩌다 득템한 덕으로 걸긴 걸었지만 뭐랄까 좀 찜찜하긴 하다. 팔힘을 기를거얏!
#첫 모임
책가게에 첫 모임을 열었다. 나름 서점인데 독서모임을 첫 모임으로 열까 하다가 2018년 새해 모임으로 열자 싶기도 하고 내가 해보지 않았던 모임으로 열고 싶어서 필사모임으로 정했다. 과연 사람이 신청할까 두근두근했는데 고맙게도 신청자가 있었다. 히히 오손도손 첫 모임을 가졌고 각자 책을 매개로 글도 쓰고 이야기도 나누는데 시간이 금방 흘렀다. 몰입하며 꽉 찬 시간을 보낸 증거구나 싶다. 좋았다. 필사모임은 계속 해야지 마음 먹었다. 두번째 모임으로 공부모임을 열었는데... 예상대로 신청자가 없어 나홀로 공부모임 중이다. 흐흐 다음엔 과연 신청자가 있으려나.. 나라도 꾸준히 해야지! (불끈)
#구경오는 손님들
지인과 가족들이 오는 시기를 넘어 알음알음 지인의 지인을 넘어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책가게에 하나,둘 구경 오기 시작했다. 인스타를 보고 부러 찾아오거나, 약속이 근처인데 어디 한번 들어가볼까 해서 들어오거나, 지나가다가 슥 들어오는 행인까지. 여기가 무슨 공간인가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나 역시 신기하다. 책 한권, 잡화 하나 안 팔리는 날도 있지만 이는 충분히 '책'을 판매한다는 사업자등록증을 내면서 예상한 일이니까 그건 그렇다 쳐도 누구하나 들르는 이 없다면 초큼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다행스럽게 이리저리 손님들이 와서 둘러본다.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각종 아이디어를 짜보긴 해야겠다. 해보는 거지 뭐. 혼자 있기는 넓은 공간, 드나드는 사람들과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이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가게 블라인드를 촥촥 걷고 있다.
겨울의 본격적인 시작, 나도 옷깃을 본격적으로 여매며 책가게를 열어야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