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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Mar 25. 2017

오! 나의 다기리죠

영화감상문 #01 [오버 더 펜스]  

기다리던 영화 [오버 더 펜스]를 보러 가는 길은 미세먼지 꽉 찬 따뜻한 봄날이었다. 평일 낮 한산한 영화관을 상상하며 룰루랄라 걷는 한량한 백수의 발걸음은 대학생 가득한 캠퍼스 정문 앞에서 잠시 주춤했다. 왜 나는 이곳으로 왔을까 하는 후회를 초큼 하고 중국말이 가득한 한국 어느 대학교 내를 잽싸게 걸었다. 북적이던 교정과 다르게 극장 안은 텅 - _ - 영화 티켓을 끊으려고 하니 "00 대학생이세요?"라고 물어봐주는 매표원. 아 - 00 대학생이면 2천 원 할인되는구나.. 를 깨닫고 "아니요" 하니 정가로 카드가 긁힌다. 윽, 아쉽다. 왜지? 알량한 백수의 이중성을 누가 알리오.


한치의 오차 없이 상영 시각에 맞춰 시작한 영화는 오다기리 죠에서 시작해 오다기리 죠로 끝났다. 아-나의 오다기리 죠를 이렇게 큰 스크린으로 마주하다니 정말 보길 잘했군 하는 짧은 감상과 함께 영화관 밖에 나오니 어째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영화 속 풍경과 닮아 있었다. 다시 오버 더 펜스를 생각해본다.  


시라이와(오다기리 죠)는 도쿄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샐러리맨 생활로 가정생활은 뒷전이었다. 아내와 갓 태어난 딸에게 남편과 아빠가 되지 못했다. 육아를 비롯해 집안일 독박으로 아내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했고 결국 둘은 같이 만든 가정을 합의하에 없애기로 한다. 그 상처, 죄책감을 안고 고향으로 와 실업급여를 연장하기 위해 직업훈련학교에 목수일을 배우는 그의 일상은 담배로 시작해 맥주로 끝나는 하루하루. (일본이나 한국이나 장시간 노동 환경이 근본적 문제인 건가...) 아무튼 이사 박스를 풀지도 않고 가구라고는 부엌의 식탁과 방 가운데 놓인 작은 상이 전부. 그야말로 미니멀라이프를 (하는 수 없이) 실천하는 그의 단조로운 일상은 같이 목수일을 배우는 동기, 카즈히사(마츠다 쇼타)의 꼬드김(?)에 온 캬바쿠라(룸살롱 바)에서 사토시(아오이 유우)를 만나면서 조금씩 장조로운 일상이 되는데...


여기까지가 내 식대로 정리한 줄거리. 더불어 이 영화를 보는데 내 눈과 귀를 잡았던 키워드가 몇 개 있었다.   




#01. 음악

예고편에서도 심상치 않은 영화의 음악. 귀에 들어오는 걸 넘어 후벼 파는 듯한 음악이 영화 전반에 깔렸다. 밝은 듯 밝지 않고, 우울한 듯 우울하지 않은 이도 저도 아닌데 묘하게 설득되는 음악들이 장면과 장면 사이 여운을 두며 깔린다. 중저음의 오다기리 죠 목소리와 더없이 잘 어울린 브금(bgm)이었다.


#02 생활에서 튀어나온 듯한 조연들

건조하고 깔끔한 시멘트 냄새 물씬 나는 도시 분위기를 닮은 두 남녀의 잃을 것 없는 사랑이야기가 메인이지만 어째 난 시라이와와 같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목수일을 배우는, 잃을 것 없다고 스스로 말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더 들여다봤다. 그들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꿈꾸는 미래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카즈히사와 시라이와가 술집 귀퉁이 자리에 앉아 나눈 짧은 대화가 어찌나 찔리던지 흠흠...  


카즈히사 : 시라이와씨, 먹고사는 게 참 귀찮지 않아요?
시라이와 : 응, 뭐 그렇지..


#03 아이우에오오오올~ 아오이 유우

주인공 시라이와의 사연은 앞뒤로 나오는데 사토시의 사연은 어째 알려주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충분히 유추 가능하니 부러 안 넣은 것 같은데... 아무튼 사토시의 도발적이고 슬픈, 충동적이지만 따뜻한 스토리를 아오이 유우는 온 몸과 표정과 마음으로 연기한 것 같았다. 일본 스타일의 예쁜 보헤미안 이미지로 알고 있었는데 점점 연기의 폭을 동서남북으로 넓히는구나, 멋있는 배우구나 하고 감탄했다. 나처럼 오다기리 죠만 보고 갔다가 아오이 유우의 매력에 놀랄 사람도 분명 많을 듯.

 

#04 그놈의 담배와 맥주

한 씬 건너 담배 씬, 또 한 씬 건너 맥주 씬이 감초처럼 나오는데 어쩜 그리 맛있게 피고 마시는지... 사물 주인공이 있다면 이들이었겠다. 특히 영화 가장 첫 장면, 직업훈련학교 내 흡연실에서 목수반 사람들의 별 거 없는 수다와 어우러지는 담배연기와 시라이와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도시락 집에서 픽업하는 아사* 캔맥주의 두드러진 자태는 침까지 꼴깍 삼키게 만든다고 해야 하나... 영화에 쏴아아악 녹아드는 사물의 향연을 볼 수 있었다.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 이따금씩 찾아보는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처럼 이 영화 역시 볼 때마다 감정이 달라질 것 같다. 왜 그런지를 계속 나에게 물어보며 보게 되겠지. 아무튼 오다기리 죠는 자연스럽게 멋있게 나이를 먹어가는 배우구나, 그 비결이 뭘까? 구글링을 해도 모르겠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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