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픈이에겐 따뜻한 관심 다정한 한마디가 필수약이다.
쿠싱증후근 진단을 받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건, 24시간 소변모으기 였다.
진단받기 1년 전에는 집에서 하는 24시간 소변모으기, 소변을 모아 냉장고에 보관하였다가 병원에 제출하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어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님 상담까지 다 마친 후 검사를 하지 않았다.
어떡하든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다. 요령을 부렸고 병을 방치하였다.
증상은 차츰 심각해져, 얼굴이 하루가 다르게 풍성하게 부어올랐다.
눈을 뜨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눈이 앞으로 쏠려 빠져 나갈 것만 같았다.
배, 가슴, 겨드랑이에 보라색 자색선조가 생기면 없어지지 않았다.
당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풍성한 얼굴 때문에라도 꼭 마스크를 착용하고 업무를 보았다.
점심도 동료들과 아닌 혼자 단독으로 식당 맨 구석 벽을 보고 앉아 얼른 먹고 마스크 착용을 하고 돌아왔다.
다른 때는 상관이 없었는데,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시간이 맞물려 점심식사라도 함께 하게 되면 무척 곤란하였다. 빠르게 마스크를 풀고 빛의 속도로 밥을 먹고 얼른 다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접대하였다.
사람들은 내가 암을 앓고 있다 라는 것을 인지하여 거부감 없이 나를 대해 주었지만, 드러나는 병의 증상들에 대범하게 대처할 수 없어 업무 집중도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게 되었다.
몸속 호르몬을 관장하는 부신 장기의 역할이 골밀도에도 영향을 미칠까 의문스럽기는 하지만, 세 곳 장기에 대한 암을 진단받고 부신에 종양이 있음을 진단받은 후, 나는 척추압박골절이 왔다.
다발성 미세골절도 진행되어 지금 이 순간에고 뼈는 쉼 없이 약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척추골절과 다발성미세골절로 뼈 전이가 의심되어 입원, 검사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레 다시금 24시간 소변 모으기 검사 또한 피해갈 수 없었다. 1년을 도망 다니다 다시 제자리로 온 것이다.
24시간 소변모으기 검사와 골밀도 검사 X-ray검사 호르몬평가 등을 진행하여 갑상선암 과 쿠싱증후근 최종진단을 받았다. (유방)외과 교수님 협진을 받아 갑상선 암과 부신종양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기력이 엄청 떨어질 겁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냥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회복하는 데 수개월 이상 걸릴 수도 있습니다.”
24kg 체중이 늘었다. 초등학생 아이 하나가 나의 몸속으로 들어와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이다.
보름달보다 더 커진 얼굴과 목뒤 두툼하게 채워진 지방덩어리들이 내 몸 안에서 빠져나가만 주어도 살 것 같다는 희망이 있었다. 수술만 하면 무거운 살들을 떼어나고 일어날 수 있을테니, 그까짓 무기력쯤 견뎌줄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교수님 걱정이 괜한 기우라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2021년 6월 처음 암 수술을 하면서 ‘부신에 종양이 있습니다. 크기는 1.6cm 정도 되고요.’ 의 설명을 방치하고 2024년 2월까지 견디는 동안 종양의 크기는 2.3cm로 자라 있었다. 수술은 오른쪽 옆구리 뒤쪽에 구멍을 뜷어 종양을 제거 하였다. 종양만 제거하려고 하였는데 크기가 이미 너무 크고 부신장기 깊숙이 박혀있어 종양만의 제거는 아무 의미가 없다 판단되어 부신장기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나고 귀신같이 교수님 말씀이 마법처럼 실행되었다.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을 겪게 되는 것이다.
무기력함만으로는 감히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그냥 죽어 있는 것이라 말 할 수 밖에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
한쪽 부신을 제거하면 남은 쪽 부신이 정상 활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호르몬 약을 복용한다.
하루 두 번 약을 먹는 시간 외 눈을 뜨고 지탱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24시간 잠만 자는 사람이 된다.
도무지 기운을 차리지 못해 중간에 며칠 다시 입원을 하기도 하였다. 외래진료가 있어 병원을 가는 날이면 엉금엉금 기다시피 걸어가 대기석 의자에 쪼그리고 누워 버린다. 이내 정신을 잃는다. 그런 생활이 6개월 가량 이어졌다. 24kg 체중이 빠지기는커녕 호르몬 약으로 인해 손과 발은 더욱 더 퉁퉁 부어올랐다.
어쩌면 수술만 하면 금세 체중은 빠지고 얼굴은 보름달스럽지 않고, 목 뒤편 두터운 지방덩이도 제거하고, 복부 곳곳을 가르고 있는 자색선조 증상도 없어질 줄 알았는데, 그래서 수술을 하였는데 어느 것 하나 나아진 것 없는 실상에 낙심하여 더 기운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생활공간도 안방을 벗어나 외딴 작은방으로 옮겼다. 침대하나 책상하나, 책상 위 컴퓨터한대가 전부였다.
골절로 일어나고 앉고 걷고 하는 일이 너무나 아프고 힘이 들어서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주방 가깝고 화장실 가까운 방으로 옮겼다. 24시간 언제든 물이라도 잠든 남편 깨우지 않고, 남편 손 빌리지 않고 스스로 가져다 마시기 위해 내가 고집 부려 방을 옮긴 것이다.
손이 퉁퉁 붓고 눈도 부어 휴대폰 화면을 보고 인지하는 일이 어려웠다. 식구들 모두 잠든 사이 새벽 한 두시쯤 겨우 일어나 물이 뚝뚝 흐르는 샤워를 겨우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3분, 길면 5분 빠르게 볼일 볼 것 하고 다시금 누워버리는 일의 반복이었다. 볼일이라고 하면 은행이체정도, 카드 값을 입금 해 두어야한다거나 집 대출금이자를 미리 입금해두어야 한다거나 정도의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만 겨우 행하고 빠르게 눕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도, 매일도 아니고 컴퓨터를 켜는 날 3분, 길면 5분의 시간동안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을 때면 가보는 곳이 있었다. 인터넷카페인데 림프부종 환우들이 회원으로 있는, 혹은 보호자들이 가입하는 카페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늘 그곳이 생각이 났다. 환우카페 가입이 처음도 아니다. 암이 걸린 후 암 환우카페에 당연히 가입하였다. 태어나 처음 겪는 암 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암 수술 얼마 후 곧바로 가입하고 카페를 드나들었다.
정보를 얻고 댓글을 올리고 게시글을 작성하였다. 보통의 인터넷카페답게.
그런데 림프부종 환우카페는 나에게는 남달랐다. 그곳은 따뜻한 마음이 있고 다정한 글귀들이 있었다.
자꾸만 나의 마음을 기울게 하였다. 암에 걸렸을 때도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림프부종에 걸렸을 때도 아는 것 하나 없이 무식하기는 매한가지였는데, 나는 똑같은 걸음으로 암 환우 카페도 갔었고, 림프부종카페도 드나들었는데 나를 대해주는 태도, 인심들이 달랐다. 친정에 온 느낌, 언니가 있고 동료가 있고 친구가 생긴 느낌 자꾸만 나를 챙겨주는 포근함이 아파 정신 차리지 못하는 나의 뇌리 속을 두드렸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는 시간에도 카페 생각이 났다. 이 정도면 병인데, 인터넷카페에 의지를 하다니.
정말 많이 외로운가보다. 스스로를 놀리기도 하였지만 사실이다. 무기력으로 정신 차리지 못하고 누워만 있을 시간에도 카페 생각을 하고 카페에 가고 싶어 이른 새벽 컴퓨터 앞에 앉아보기도 하였다.
림프부종을 처음 겪고 카페 가입을 하였을 때, 응원의 목소리가 아주 많았다. 함께 슬퍼해주고 병에 차도가 생길 때에는 덩달아 기뻐해주며 격려의 글들이 넘쳐났다. 친정엄마에게도 오롯이 받지 못했던 관심을 받았다.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나 아파요, 나 힘들어요. 의 어릿광을 나는 림프부종 카페 게시판에 올리고 싶었으니...
휴일하루 우두커니 앉아, 림프부종 카페에 대한 나의 집착(?) 내가 의지하는 정도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았다. 비단 내가 외롭기만 하여서는 아닌 것 같다. 그곳에 가면 넘쳐나는 온기와 다정함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신종양에 관하여, 쿠싱증후근이라는 병에 관한 실질적인 정보도 카페에서 얻었다.
나의 게시글 하나에 선뜻 초콜릿을 보내주시는 분도 계셨다. 그때는 정말 내 삶에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며 살지 못했다. 초콜릿 선물에 철벽같던 차갑기만 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카페회원 대부분이 나와 같은 림프부종 환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환자들을 그들은 돕는다.
나와는 확연히 다른 점들이다. 내가 변해야 할 점들이다. 림프부종 관련 책을 구하여 공부를 하고 병에 관해 제대로 알 수 있게 된 것도 카페를 다니며 알게 된 일이다. 나에게 있어 가보고 싶은 유일한 곳이 되었다.
휴일하루, 우두커니 앉아 지난 2년을 간략하게 더듬어 보았다. 자꾸자꾸 카페 생각이 나기에 그렇게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