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나쁜 날

- 못다핀 꽃 한송이 피우리라.

by 퇴사자 김부장

오늘은 아침부터 운수 나쁜 날이다. 아들아이 출근 길 작은 마찰이 있었다.

작은 사건은 작은 사건답게 소란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그리고 아이는 출근하였지만, 어미 된 자로서는 내내 마음 한 켠이 불편하였다. 혹시라도 아이 마음을 다쳤을까봐.

낼 모레 서른을 앞둔 성인 아이의 일을 내내 마음에 둔다는 것이, 그러면 안 되는 일이지 싶어 애써 마음을 지웠다. ‘본인이 알아 잘 하겠지.’


신년 연봉협상을 앞둔 딸 아이에게서 카톡창 불이 나도록 사연이 길다.

상사와의 부대낌과 대표로부터 받은 지적으로 아마도 화장실에서 몇 분간 울고 나온 모양이다.

성정이 나를 닮아 대놓고 큰소리를 치지 못하는 타입이다. 꾹꾹 눌러 쌓고 쌓았다가 한꺼번에 펑 하고 터트리는 타입이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울었을 아이를 상상하니 마음을 견딜 수가 없다.

이러면 안 되는데, 두 아이모두 성인인데, 성인으로써 제각각 나이 값은 거뜬히 하는 아이들인데.

나의 노심초사가 도에 지나치다 생각하며 딸 아이 울음 건 또한 희석시키려 마음을 달랜다.


오후시간, 남편이 갑자기 노래 한곡을 들려준다.

대학가요제에서 대학생들이 부른 노래인데 애절하기가 기가 막한다고 하면서.

김수철 가수의 ‘못다 핀 꽃 한송이’ 노래를 학생들이 편곡하여 부른 곡이었다.

처음 듣는데, 애절...하기는 하였다.

여자가수의 음색이 특히나 더 그러하였고, 여자가수의 의상이 곡과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러나, 이미 너무나 아는 노래였고, 많이 들었던 노래였던지라 남편이 들려주는 성의만을 참작하여 들어볼 참이었다.


언제가셨는데, 안오시나. 가시다가 잊으셨나...


의 가사가 나의 마음을 후벼파기 시작했다. 노래를 세 번째 들었을 때였다.

특히나 ‘가시다가 잊으셨나.’에서 나의 울음은 폭발하였다.


열 한 살의 어린 내가 집 대문 앞에 서 있고, 곧게 뻗은 신작로 어두운 길을 엄마가 황급히 걸어 사라지고 있었다. 한 번의 뒤돌아보는 법이 없이 엄마는 빠른 걸음으로 신작로 길 위에서 사라지셨다.

그 길을 가시다가 나를 잊으셨나. 어린 나는 엄마가 사라진 그 길을 바라보며 오래오래 서 있었고...


노래 가사와 어린 시절 나의 처지가 오버랩 되면서 설움이 복받쳤다.

수술을 하고 나서는 어쩐 일인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었다. 슬퍼할 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눈물샘이 말랐나 할 정도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슬픈데, 예전 같으면 소리죽여 울었을 대목에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프니까, 나는 암에 걸렸으니까 눈물샘도 마르나보다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못다 핀 꽃 한송이 노래 한곡을 듣고 나서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서는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집 떠난 엄마를 그리워 하는 나의 노래였던 셈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고 나면, 그것이 무엇이든 자꾸만 의미부여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불리해지면 무기로 삼으려고 한다. 나 아픈데, 나 암 환자인데 하면서

대신, 인심이 좀 후해지는 것도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아픔으로 인해 가지게 된 장점이다. 엄마와의 관계가, 그리고 지금은 뗄려야 뗄 수 없는 남편과의 관계가 좋아졌다.

만약 내가 암에 걸리지 않았으면, 열 한 살 때 나를 잊고 집을 떠난 엄마와는 데면데면 하였을 것 같다.

만약 내가 암에 걸리지 않았으면 남편의 진면목을 모르고 허송세월 하였을 것이다.

버려지지 않았기에 안도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생각하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할 따뜻한 보호를 받았다.

암 덕분이다. 그러니 세상에 마냥 손해보고 마냥 이익을 보는 일은 없다고 하는 모양이다.


아이 둘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언제 못 보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아이 둘에게 알게 모르게 집착하게 만든다. 딸 아이는 딸대로, 아들 아이는 또 그대로 참견사항들이 점차 많아진다.

혹시라도 오늘이 그들을 볼 수 있는 마지막이 될까봐서이다. 아직은 오늘은 건재한데,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나의 염려들이 때로는 부질없이 에너지를 낭비 할 때도 있다. 그들은 모른 체로 말이다.


신용카드사에서 메일이 왔다. 사용한도를 줄이겠다는(?) 당연하다. 나의 소득이 없어졌으니 당연하다 하겠지만 그래도 서운은 하다. 벌써 몇 십 년째 사용하고 있는 카드인데.

역시 딸 아이는 나를 닮았나보다. 나는 단 한마디 항의 없이 문의조차 없이 순응한다.

소득이 없으니 당연하다 생각한다. 이래저래 오늘은 운수 나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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