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인도 만나고 횡재수도 생기고 문서운도 있다는 말에 콩닥콩닥 가슴이.
며칠째 유튜브를 켜면 소띠 2026년 운세를 봐주겠다는 영상들이 난무하였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내가 소띠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지난날 내가 검색한 알고리즘에 의해 보여지는 영상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료운세를 본 기억도 없었는데..
처음 며칠 동안은 자동으로 추출되는 영상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다가 또 다시 며칠 후 소띠 무료운세를 클릭 해 보았다. 한때는 나도 점집 꽤나 다녔었는데, 총총 잘도 걸어 다니던 때를 회상하면서 클릭클릭하였다.
소띠 2026년 운세는 자다가라도 떡이 생기고, 귀인을 만나고 부동산의 문서가 들어오고, 횡재수가 있는 대박의 한해가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바깥에 나갈 일 없는 내가 어떻게 귀인을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음이 들떴다.
내친김에 이 영상 저 영상 클릭해서 소띠에게 들려주는 2026년 덕담들을 마음에 담았다.
소처럼 묵묵하고 우직하게 돈 벌어 부모위해 자식위해 가정위해 쓰느라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소띠들이 2026년부터는 그동안 베푼 것들을 거두어들이니, 지금부터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라 하는 대목에서는 어쩐지 마음의 위로도 받았다. 새벽아침에 유튜브 영상을 보고 울컥하여 울 뻔도 하였다.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라, 나로 살아라...의 대목이 욕심이 났다. 살아온 삶 전부를 통 털어 자신을 희생만 하고 살은 것은 아니겠지만, 돌이켜보면 나 자신만을 돌보면서 살아온 기억은 별로 없다.
너무 어려 엄마가 집을 나가셨고, 스무 살이 갓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쩌면 엄마가 집을 나간 날로부터 나의 고단한 삶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꾸준하게 한 길만 걸어왔지만 모든 면이 더뎠고 언제나 가난한 삶은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노릇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했다.
사람노릇, 자식노릇, 아내노릇 그리고 부모노릇. 내 지갑의 무게와는 아랑곳없이 감당해야하는 노릇들을 해내느라 때로는 지갑이 너덜거렸다. 때로는 시커먼 작업복을 입고 달랑 슬리퍼를 꿰신고 남은 점심시간 동안에 돈을 마련하겠다고 회사 부근에 있는 은행들을 보험회사들을 쫒아 다닌 적도 있었다.
자식노릇이 필요할 때였다.
부모노릇을 하면서는 사실 없는 티를 그렇게 내지 않았다. 부모로써 가진 것이 많다 허세를 부리지는 않았지만, 빈털터리라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차마 그렇게까지는 솔직해지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자식 일 때도 아내 일 때도 엄마 일 때도 나 하나로써 솔직하게 그들 앞에 나를 내세우지 않았구나 라는 것을 아프고 난 후 깨달았다. 마음의 병이 내 몸 하나를 망쳤구나 깨달았다.
남편과 나에겐 캥거루가 둘 있다. 이제 마지막 내가 감당해야할 노릇 부모노릇의 대상이다.
가끔은 함께 살고 있는 캥거루를 놀리기도 한다. 캥거루 주제에...라고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미혼남녀가 결혼을 하려면 첫째가 주거할 집이 문제이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살 집이 마련되지 못하면 결혼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본인이 벌어서 시집장가가야지. 는 정말이지 옛말이 되었다.
부모로써 어떻게든 힘을 보태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자녀가 성장하여 결혼을 할 즈음에는 부모로써 숨겨놓은 통장 하나쯤 내어주는 일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일까 생각하면 마음이 더 답답하다. 지금까지 나는 뭘 했지 자연스레 자책도 든다.
살고 있는, 대출 삼십년 상환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집이라도 팔아, 결혼하겠다는 자녀에게 도움주고 남편과 나는 시골로 옮겨가는 것이 최상의 해결방법이다 생각하다보면 마음이 오그라든다.
아마도 내 엄마라면 어릴 때 버려두고 가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나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천성까지 부모이지는 못한 것인지 자꾸만 약은 계산을 한다.
병치레 하느라 다 쓰고 겨우 집 한 채 남았는데 하는, 우스갯소리로 우리 집 지킬려고 한창 아파 병원에 누워 있을 때 하루하루 입원비와 매일매일 추가되는 고가의 치료비가 무서워 조기퇴원을 했던 나였다.
내가 죽어도 집만은 건들지 않은 체 남편과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늘 생각했었다.
내가 굳이 소띠여서가 아니더라도 사람으로써 묵직하고 우직하게 살아내야 할 것 같다.
암 수술 후 휴유증과 쿠싱증후근으로 2곳의 척추골절로 더 이상 회사원으로써의 운명은 다 했었다.
출근할 수 없으니, 일어나 움직일 수 없으니 아쉽다 말 한마디 못해보고 사직했었다.
아프지 않았다면 ‘김부장’ 처럼 열심히 일하고 차곡차곡 통장을 채웠을 것이다.
남부끄럽지 않게 아이들 결혼 앞에 통장 하나씩 마련하여 건네줄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통장 속 잔액이, 점심시간 내가 뛰어다니며 만들어낸 대출금이라 하더라도 부모노릇이니 기꺼이 하였을 것이다.
해결해야할 문제가 생길 때 마다, 나는 왜 번번이 나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였는가를 두고 생각했다.
단 한 번도 힘들다 말하지 않고 그들이 보기에 척척 문제를 해결하는 나의 행동 밑바탕에 바로 인정욕구가 숨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인정받고 칭찬받고 궁극적으로 외면당하고 싶지 않아서...
엄마가 집을 떠난 날로부터 스무 살 성인이 될 때까지 눈치꾸러기로 살았던 나의 과거가, 훗날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된 후로도 계속 나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말문을 닫고 우직하게 살아낸 것 같다.
그렇게 살면 인정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려지는 일은 격지 않아도 되니까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나를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외로움이 질색인 나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2026년 올해부터는 나만을 위해 살라는 운세의 점사는 틀린 말이다. 알고 봤더니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 살아온 나다. 오히려 이제는 나만을 위해 살아왔던 기운을 조금씩 내려놓아야 할 태세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일자리는 필요하여 이곳저곳 구직시장을 찾아보았다.
암 수술로 장기를 들어내면, 장애인증명서가 발급된다. 장애예상기간은 영구이지만 용도는 소득공제신청용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근로자가 되어 연말정산을 하여야 장애인증명서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요원하다.
가계수입이 전무하여 우선 급한 마음에 국민연금 조기수령을 알아보았다. 280개월을 납부하였으니, 우선 지금 내가 아프고 경제활동을 할 수 없으니 조기수령을 해 주실 수 없는지 문의 드렸으나 거부되었다.
지금의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가기에 많은 부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도저도 안 되는 일들만 가득하다.
그래도 버려지지는 않았으니 살 수 있겠다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림프부종과 쿠싱증후근으로 양쪽다리가 커다랗게 코끼리 다리가 되었었다.
치료방법으로 5겹의 붕대를 아침에는 감고 저녁에는 플어야 했다.
당시 척추골절로 상체를 아래로 숙이는 일이 불가능하여 나 혼자서는 붕대치료를 할 수 없었다.
남편이 아침저녁 수개월을 붕대를 감고 풀고 해주었다.
그때 버려지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겠다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머리도 없는 나에게 남편이 머리빗을 사주었다. 이번 쿠팡 개인정보유출사고에 대해 지급받은 보상쿠폰으로 엄청나게 비싼 머리빗을 남편이 사주었다. 나는 엉엉 울었다. 아주 오랜만에 펑펑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