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당에서 내려오는 길 까치를 보았다.

- 가끔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고집부려도 괜...찮...다.

by 퇴사자 김부장

출발도 하기전에 마가 끼었는지, 삐걱댄다.

전날까지만 해도 말이없던 아이가 밤새 볼일이 생겼는지 쭈뼛쭈뼛 외출준비를 한다.

볼일이 있으면 나가보면 될것을 괜스레 남편옆을 서성대는 폼새가 아무래도 무슨 부탁할 일이 있는 것 같다.직감적으로, 아마도 아이가 차량이 필요한가보다 싶었다.


오늘, 얼마만인지도 모르게 오늘, 남편과 함께 시부모님과 둘째 시숙이 계신 납골당에 가보기로 했었다.

아마도 내가 아프고난 후, 첫번째 두번째 암 수술을 하고는 오늘 납골당 가보는 것이 처음 일 것이다.


암 수술하고 얼마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흔이 다 되어가는 고령으로 대장암과 치매를 앓다 집에서 돌아가셨다. 당시 나 또한 자궁경부암과 자궁내막암으로 투병시기였기 때문에 어머니를 양껏 보살펴 드리지 못했다.

큰 시숙이 애를 많이 쓰셨다. 돌아가시기 가까와서는 온종일 누워만 지내시면서, 누운자리에서 그대로 대소변을 보셨다. 나 또한 환자 였으므로 적극적으로 어머니 곁에서 보살펴 드리지 못한 죄책감은 오래오래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어머니 장례식까지는 그래도 내가 자식 노릇 하느라 함께 있었는데,


어머니 돌아가신 후 거짓말처럼 큰 시숙과 둘째 시숙 모두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가지도 못했던 나는 당혹감에 순간순간 숨쉬기 조차 힘이 들었다. 한 집안 어른 모두가 암으로, 그리고 어머니는 치매를 더하여 돌아가신 것이다.

남편은 순식간에 천애고아가 되었다. 나마저 죽어 없어져 버리면, 저 사람 딱해서 어떡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간적 차이는 있었지만, 두분 시숙이 돌아가셨을 적에는 장례식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

척추압박골절과 다발성미세골절로 자발적 도보가 불가능했다. 쿠싱증후근으로 얼굴은 보름달만하게 부풀어 오르고 림프부종으로 양쪽 다리는 코끼리 다리가 되어 있었다. 일어나고 걷고 앉았다 지체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나 홀로 집에 남아 꺾꺽 숨이 넘어가게 울었다.

어쩌면 남은자 내 신세도 기가막혀 더 울음이 끊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납골당은 고사하고 집 앞 마당에도 내려서지를 못했는데, 지난한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허리 보조기도 풀고, 양쪽 다리 칭칭 감아두었던 5겹 붕대도 풀었다.


납골당에 어머님 뵈러, 아버님 뵈러 그리고 둘째 시숙도 뵈러 가고 싶다 남편에게 말하였더니, 오래두고 고민하였다. 과연 내가 그 길을 걸어 오르고 걸어 내려올 수 있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돌아오는 주말, 드디어 납골당을 가 보기로 하고 나는 서툰 걸음으로 시장에를 가 떡을 조금 샀다. 술도 샀다. 집에 있는 그릇들도 챙기고 내 나름 간편한 축약된 제사 준비를 하였다.

어머님 아버님 뵈러가기 위해서...


납골당을 가려고 떡도 샀는데, 아들아이가 괜스레 왔다갔다를 한다.

어미된 자로써 아이가 필요하다고 하면 기꺼이 아이의 불편을 해소해 주어야 할 것이다.


순간 망설였다. 납골당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고 아이의 근심거리를 덜어줄까 하고...

그러나 내가 선약인데, 내가 먼저인데, 어머니에게 찾아가 뵙겠다고 며칠전부터 마음으로 말씀 드리고 또 드렸는데, 무엇보다 떡도 샀는데...^^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용기내어 모른척 하였다. 그리고 대망의 납골당 가는 길에 남편과 나는 올랐다.


납골당에 도착하고, 남편이 걱정하는 오르막 길을 무리없이 올랐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3층까지 놓여진 계단도 서슴없이 올랐다. 오른발 오르고 오른발 오르고 였던 지금까지 나의 계단 오름이, 납골당에서는 오른발 오르고 왼발 오르고 오른발 오르고 왼발 오르고가 가능하였다. 신기하고 놀라왔다.

척추골절과 림프부종으로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 후 처음이었다. 집에서도 계단을 오르지 못해 계단 난간을 쥐고 울듯말듯 안간힘을 써대며 계단을 오르곤 했었는데 오늘은 가뿐하다.

정상인마냥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01.jpg

드디어 몇년만에 어머님과 아버님을 뵈었다. 둘째 시숙도 뵈었다. 인사드리는 내 모습이 아직은 엉거주춤하다. 등은 굽었고 머리는 조금자라 이제는 모자 밖으로 비어져 나와 있다.

조금씩 조금씩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준비해간 음식들로 간단하게 인사를 드렸다. 남편이 오래오래 절을 했다.


납골당에서 내려오는 길, 경사가 급한 길을 내처 걷고 있는데 남편이 문득, "저기 까치 있다."

남편의 손가락 끝을 따라 올려다보니 높다란 나뭇가지위에 까치한마리가 앉아 있었다.


구부정한 허리를 바짝 피고 무심한듯 시선이 위로 향한 나를 보며 남편은 화들짝 놀랐다.

당사자인 나의 놀람은 말할 것도 없다. 나뭇가지 위 앉아 있는 까치 한마리를 똑똑히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는 외출전이었다.

남편과 내가 납골당을 다녀오는 사이, 일정이 변경되었고 오히려 차량을 가져가면 안되는 상황이 된 모양이다.


어쩔뻔 하였는가. 납골당을 가지 않았으면...

가끔은 엄마 옷을 벗어던지고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고집부려도 괜...찮...다.

작가의 이전글돈 없이 일을 하려니 무척이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