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은 나에게 생계수단이다.

- 쇼핑몰 만들기, 글로써 소득만들기 그리고 주식하기

by 퇴사자 김부장

3개월만에 오늘은 병원가는 날이다.

다음주 3월 10일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님 진료대비 피검사를 하고 갑상선 초음파를 찍는다.

초음파검사시간에 맞춰 일찌감치 집을 나서 부산대학교병원 A병동에 도착한다.

나는 내리고, 남편은 주차를 위해 A병동을 빠져나가고, 나는 언제나 그랬듯 건물 벽에 붙어있는 난관 손잡이를 잡고 B병동으로 이동한다. 부산대학교병원 채혈실과 내분비대사내과 외래진료는 B병동에서 볼 수 있다.


난관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움직였던 내가 거기에 있다.

접수/수납창구에 다다르면, 대기하는 의자 등받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버티듯 서 있는 순간에도 다리는 떨렸다.

때로는 병원건물 내 둥그런 기둥에 위태롭게 기대 서 있고, 이도저도 안되면 안면몰수 의자 두개, 세개를 차지하여 누워버리기도 하였다. 그런나를 남편은 옷가지를 여며주고 옆자리에 앉아 지켜주었다.


암으로 오른쪽 갑상선을 제거하고, 쿠싱증후근으로 오른쪽 부신을 함께 제거하였다.

수술하고 6개월정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삶의 기운을 낼 수 없었다. 죽음이 늘 가까이 있다 생각되어지던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제법 인간이 되었는지, 남편 없이 나 혼자 접수를 하고 채혈실로 옮겨 피를 뽑는다.

채혈실 앞 대기석에도 길게 누워 잠들었던 내가 있다. 남자/여자 화장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없이 남자화장실로 들어가려는 나를 허둥지둥 달려와 제지하던 남편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눈에 선하다.


병원 곳곳에 내가 있다. 이제는 제법 보호해주는 남편없이 나 혼자 접수하고 채혈하고 초음파검사실까지 이동한다. 혼자 엘레베이터도 탄다. 이제는 제법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병원 곳곳에서 발견되는 나를 대하매 마음이 쿵쿵쿵 떨어진다. 새삼 저런 나를 살리겠다고 뛰어다닌 남편의 애달픈 마음도 알게되어 눈물이 더 난다.


3년에 걸쳐 남편은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초음파검사실 앞에 다다라 남편에게 전화했다.

채혈실로 가지말고 4층 내분비대사내과 앞으로 곧장 오시라고...어느새 마지막 검사일정만을 남겨두었다고...


24시간 남편과 나는 함께 있는 중이다. 언젠가 남편이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내가 뒤뚱거리며 걷다 중문 턱을 넘지 못하고 넘어져 입술과 치아를 다쳐 피를 흘린 후로 남편은 한달이면 두번 이발하러가는 일 말고는 집을 비우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남편은 계속 나를 보살펴줄 모양이다. 늙은이 둘이 무엇을 먹고 살지를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경제활동을 생각해야했다. 수익을 낼 수 있어야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세가지 정도를 생각했다.

쇼핑몰을 운영하는 것, 글을 써서 수익을 내는 것, 주식을 해서 하루 반찬값을 버는 것.

코스피6000시대 주식은 나에겐 투자가 아니라 생계다. 초기 투자금도 넉넉치 않다.

남편과 나 퇴직금으로 얼마간의 목돈 마련을 하였지만, 나 암 수술 세번하고 척추골절, 림프부종으로 병원 쫒아다니느라 현재 통장은 매우 가벼운 상태다. 쇼핑몰과 글로서 소득을 내기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그나마 매일매일 적게나마 실질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주식이다. 손실을 감안하면서라도 일단은 주식에 손을 대보기로 한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하루하루 반찬값만 벌 수 있으면 남편과 나 둘의 살림살이는 어떻게든 꾸려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아 주식을 시작하고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글을 쓰는 것...


2026년 3월 3일. 오늘이 나에겐 첫 주식 거래일이다.

먹고 살기위해 나는 오늘부로 주식에 손을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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