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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Aug 02. 2023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요?


이유를 모르고 화가 난다면 그 상황과 화가 나는 지점을 잘 적어보라고 했다. 이유가 없지 않을 거라고.

그걸 알아가는 게 또 삶을 살아내는 방법일지니, 오랜만에 좋아하는 팀장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날씨를 보면 정말 환경이 심상치 않긴 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팀장님은 가볍게 하신 말씀이었는데 나는 그만 화가 나고 말았다. 모르는 일이 화가 날 일은 아니다. 외면과 방관 아닌 무지는 순진과도 같다. 그럼에도 화가 났던 이유는 평소 내가 환경을 지키고자 행동하는 걸 알면서 가볍게 얘기하시는 팀장님의 모습에서, 최근 다른 집단에서 페미니즘적으로 내가 그간 말하고 보였던 내 행동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회의감이 겹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법을 찾기보다는 질문만 내뱉던 사람에게 받은 피로한 염세가 연상 작용으로 겹쳐 떠올라서였다. 과거의 일들과 오늘의 대화는 엄연히 다르다. 그러니까 나는 화를 낼 필요 없이 차근차근 알려드리면 된다. 정말 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방법을 알려만 주어도 미약하게라도, 언젠가라도 바뀔 수 있다. 나도 그랬으면서.


"오... 그럼 뭘 해야 할까요? 이런 방법도 있고 저런 방법도 있겠네요."


화를 참은 말에는 꾹꾹 눌렀지만 나보다 먼저 생각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기성 세대에 대한 원망과 무시도 담겨 있었다. 그래도 엄한 사람에게 화를 내면 안 되는데. 이렇게 어릴 수밖에 없나 싶다. 팀장님이 저 말을 하신 건 오히려 내 의견을 듣고 싶어서, 나를 믿어서라는 걸 알고 팀장님은 항상 내 행보를 지지해주시는 걸 알면서도 방법을 말하면서 아까의 나는 화를 내고 있었다.



대화를 하다가 팀장님의 전 직장 동료가 유명 방송의 메인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제야 너무 당연하게도, 환경이든 페미니즘이든 다 같은 방법으로 실천해야 할 필요도, 그럴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의 전 직장은 방송국이었고, 방송 작가 출신 답게, 대학 방송 작가와 아나운서를 겸했던 그 쾌활한 성격 답게 어디서든 마이크를 잡고 강연하시는 데 주저함이 없으시다. 기성세대이시면서도 영상 제작이나 강연 자료 만드는 일이나 업무에 열정적이시고, 나눔에도 아낌이 없으시다. 그만큼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설득하고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건네는 일에는 훨씬 역량이 있으시기도 하다. 


각자의 그릇도 길도 다 다르다면 알려주고 응원하고 믿어주는 게 맞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들이 오히려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라면, 큰 물에서 사업가 스타일로 영향을 끼치는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 그게 내 행동 10년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것도 맞으니까. 미약하지만 무해한 음모를 계속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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