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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Aug 01. 2023

팔자를 믿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평소 품고 있던, 태어난 일시로 앞으로의 인생을 묶어두는 일에 대한 반발심과 결이 같다. 그래도 사실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는 그렇게 오래된 통계적 학문이라면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겠지 하는 체념도 있었다.


우연히 어떤 영상을 보고 이제는 팔자를 믿지 않아도 되겠다고 느꼈다. 사주풀이가 실제와 영판 달랐다는 경험을 다룬 영상이었다. 사실 아무리 밖에서 떠들어도 결국 해내는 건 본인 아닌가. 겨울이나 여름처럼 태어난 계절적 환경에 따라 면역력이 이렇게 저렇게 다르다, 정도는 통계적 근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사주팔자라는 건 괘씸하다. 니들이 뭔데 싶다. 사실 재미 삼아 친구들에게도 사주를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 사주가 꽤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말하면 내 복이 달아날 것 같이 느껴졌는데, 그러면서도 내내 사주가 좋다는 말에 의지해 스스로를 묶어두는 일우습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보게 된 영상은 정말 우연히 본 영상이어서 이렇게 평생의 믿음이 송두리 째 바뀌는 게 짧은 순간 때문이라는 게 놀라웠다. 사실 그건 페미니즘을 접할 때도 같았다. 가랑비처럼 젖어들고 있었다고는 해도 결정적인 깨달음은 찰나였으니까. 최근에 들었던 표현으로는 물의 온도가 99도까지 올랐다가 100으로 바뀌는 지점, 그 지점이었던 거다.


어제저녁에는 충격적인 바비 후기를 봤다. 여기저기 유명하던 길고 정성스러운 해석이나 전해 듣고 찾아 읽은 여러 해석들에도 시큰둥한 채였다. 우연히 보게 된 지인의 후기는 겨우 세 문장뿐이었는데도, 그리고 실제로 결정적이었던 건 한 문장뿐이었으니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그 한 문장을 읽는 순간 지난 일주일 간 계속 비관적이었던 감상이 정반대로 바뀌게 됐다.


누군가의 삶이나 관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일이 꼭 긴 글이나 엄청난 사건이 아니라는 걸 느끼는 순간은 놀랍고 그로 인해 다시 희망을 가지게도 된다. 아마 그건 너무나 개인적인 각자의 경험이라 저마다의 귀인이 다르겠다는 사실도 동시에 깨달았다. 특정인이나 종교를 왜 저렇게까지 좋아할까 궁금해할 때가 있었는데, 내가 보지 못했지만 순간에 그에게 필요한 장면을 봤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이제야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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