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 되고 있는 서울 주변의 한 도시의 병원 및 병원 근처 이야기를 담은 피프피 피플.
세 번째 읽고 나서 알았다. 피프티 피플은 엄마의 죽음에서 엄마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엄마. 딸의 결혼식을 멋진 장례식으로 만든 엄마. 딸은 힘들었지만 엄마를 기억하면 엄마의 춤이 먼저 생각이 날 것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던 엄마, 딸에게 학교는 쉬자고 했지만 딸은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그날 동생은 떠나고 엄마는 입원을 했다. 엄마가 살아날 가능성은 그리 높지가 않다. 초등학생인 다운이가 받아들이기엔 버거운 현실이다.
피프티 피플의 사람들 삶 속엔 삶과 죽음이 늘 공존한다. 살면서 내 옆에 이리도 많은 죽음과 삶이 존재했나 싶게 소설에서는 많은 죽음이 등장했다. 죽음과 폭행, 공포 등이 너무 근접해 있는 삶을 살고 있어서인지 그들은 더욱 열심히 살았다.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엄마의 죽음, 딸의 죽음, 남, 친구의 죽음, 지인의 죽음, 강아지의 죽음 등 죽음은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딸의 죽음을 눈앞에서 봐야 했던 엄마, 데이트 폭력은 어디에나 있었다.
제자의 자해를 눈앞에서 봐야 했던 선생, 세상을 바꾸기엔 너무 작은 삶이라는 게 안타깝지만 너라면 할 수 있다고 힘을 주고 싶었다. 본인도 어쩌지 못하면서.
동생의 폭행과 부모의 방치로부터 도망친 소녀, 가정폭력은 보이는 모슴으로만으론 판단할 수 없다.
너무 많은 억울한 죽음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한해에 만명이 보코하람에게 죽었는데 몇십명 죽은 전염병이 더 뉴스가 되나니,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에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었다. 익숙해지려 늘 애썼지만, 내내 애썼지만 실패하는 순간에는 에러가 난 컴퓨터처럼 멍하게 멈췄다
그보다는 설핏 잠이 들려하는 혜린을 깨워 묻고 싶었다. 우리도 그렇게 변하면 어쩌지? 엉뚱한 대상에게 화내는 사람으로?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지쳐서 변하면 어쩌지?
"아니라고 대답해줘."
"응?"
"안 변한다고."
"응."
혜린은 대충 대답을 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 법을, 힘겹게 마음을 방어하는 법을 배웠다.
그래 봤자 지난 세기의 이야기. 승화의 몸과 마음을 혹독하게 다뤘던 엄마는 죽고 없다. 승화는 안도하고, 안도할 때마다 스스로를 미워했다.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저 봐, 저런 데서 일하는 사람도 있어. 훨씬 힘든 사람이 많은데 의사가 되어가지고 약한 소리를 하면 어째?"
"아버지, 알고 계세요? 저기서 사람이 한 달에 한 명꼴로 죽어요."
"조선소는 원래 그런 데야."
"원래 그런데가 어디 있어요? 사람이 죽어나가는 게 당연한 직업 같은 건 없어야 해요. 조선소에서 일하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하나요? 공장이든 병원이든 모조리 다 사람을 갈아 넣고 있어요."
"요즘 애들은 나약해서...."
"믹서기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건 나약한 게 아니에요."
문제를 일으키려는 건 아니었다. 넘어갈 수 없었을 뿐.
그리고 사람들.
모두 무사해서 좋았다.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다만 억울한 죽음이나 억울한 인생이 없길 바랄 뿐이다.
2022.05.19-05.24 피프티 피플 읽은 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