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번엔 진짜 이혼한다고?

네버엔딩 부부싸움 / 결혼생활에 대한 사소한 고찰

by 어쩌다

저녁에 마트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친정아버지께서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어머니와 이혼하려고 하니 내일 오전에 집에 들르라는 것이었다. 이미 나는 낮에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와 다투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놀라진 않았다. 아버지의 전화를 끊자마자 타 지역에 사는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빠의 전화를 끊자마자 언니의 전화까지.. 아버지께서는 세 자식들에게 모두 내일 집합하라는 전화를 하신 거였다.


함께 살면서 단 한 번도 싸우지 않는 부부가 과연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있다면 아마 어느 한쪽이 엄청나게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감정적으로 희생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정말이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셨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사소한 것에서부터 싸움이 시작된 것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엔 '이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주민센터에서 이혼 서류를 가져다 놓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정말 심각한 싸움인가 싶었다. 어머니께 별 일 아니라고 걱정 말고 어서 자라는 문자를 받았지만 그날 저녁에 나는 잠을 설쳤다.


다음 날 딸아이를 등교시키자마자 언니와 함께 친정집으로 갔다. 들어가 보니 두 분 표정과 분위기가 험악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대충 상황은 종료된 것 같았다. 그만 좀 다투라고 학생에게 잔소리하듯 말씀드리고 장난기 섞인 말을 몇 마디 던져 분위기를 호전시킨 후 친정집을 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두 분은 정말 어지간히 많이도 싸우셨다. 막내인 나는 안방에서 큰 소리가 날 때마다 겁에 질려 엉엉 울기 일쑤였고, 이미 익숙해진 오빠와 언니는 저러다 괜찮아진다고 우는 나를 달랬다.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싸우셨다. 얼마 전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영화 <결혼이야기>에서 이혼 소송 중인 니콜과 찰리가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 부모님 싸울 때와 오버랩되는 걸 느꼈다면 오버일까? 한 때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니콜과 찰리는 결국 이혼을 하기로 하고, 소송까지 가게 되면서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서양사람들은 우리네 정서와는 달라서 이혼하게 되어도 쏘쿨~하게 하는 줄 알았다. 왜 드라마 같은 데에서 보면 그런 장면 하나쯤은 나오지 않는가.. 이혼한 부부가 서로 재혼한 배우자와 함께 동석하여 식사도 하고, 친한 친구처럼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 말이다. 우와 쟤네는 정말 쏘쿨~해서 저런 게 가능하구나 생각했었더랬다. 하지만 '님'에서 '남'이 되는 과정에서 마치 진흙탕에서 서로 육탄전을 벌이는 것처럼 싸우는 건 인종과 문화를 막론하고 마찬가지이더라. 이혼 조정 과정에서 니콜과 찰리가 서로의 장점을 나열하는 부분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 다들 처음엔 상대의 많은 장점들 때문에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약속하겠지. 하지만 어쩌면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은 사소한 단점 몇 가지로 결정나버린다.


함께 지낸 시간들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게 되어버린다. 너무나도 잘 아는 상대이기에 서로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것도 부부인 것 같다. 영화에서 이혼하여 남이 되었지만 니콜이 찰리의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다. 둘 사이엔 '애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이젠 서로에 대한 '연민'만 남아 있다고 느꼈다고나 할까? 그래 저게 바로 '리얼'이지...


완벽한 남남이 되어버린 영화 속 부부와는 달리, 우리 부모님은 앞으로도 계속 쭈욱 '지지고 볶고 싸우시고 화해하고'를 무한 반복하실 것 같다. 아마 두 분 중 한 분이 세상을 달리하는 날 전까지도 사소한 것으로 다투실 테지. 다툼도 상대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여기고 아버지와 싸우셨다고 푸념하시는 어머니 속을 잘 달래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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