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반장이 되었다.

'여자'반장이 없던 나의 어린 시절

by 어쩌다

기나긴 겨울방학도 끝나고 새 학기가 되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반장선거를 한다는 안내를 받고 한동안 고민을 좀 하는가 싶더니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선거 전날 저녁 우리는 함께 연설문을 작성하였고, (초등학교 2학년의 학교 생활은 고등학교 교사인 엄마로서도 가늠하기 힘들었다) 소리 내어 한 번 읽어보는 것으로 선거 준비를 마쳤다. 혹시나 낙선할 것을 대비해 당선이 안 될 수도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미리 신신당부하였다.


'혹시 한 표도 못 받고 떨어지면 어떡하지... 상처만 안 받으면 좋겠는데... '이런 걱정을 했는데 결과는 다행스럽게도 반장 당선이었다. 아이가 기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얘들아 고맙다 너희들이 날 살렸어...'


문득 잊고 있던 나의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반장 선거가 떠올랐다. 나 역시 학급 '임원'으로서 한몫을 당당히 하고 싶다는 거창한 포부가 있었고, 담임선생님께서 "반장 선거 출마할 사람...?"이라고 하였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었더랬다. 후보가 몇 명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결과는 내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고, 난 잔뜩 의기양양해져 있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께서는 '반장은 남자가 해야 한다'라고 못을 박았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50대 '여자'선생님이셨고, 나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처럼 1982년생이다) 하교 후 선거 결과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나의 말을 들은 엄마는 어렵게 전화기를 들으셨다. 하지만 엄마의 소극적인(?) 항의 전화에도 담임선생님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난 '남자'인 반장을 옆에서 돕는 '여자' 부반장이 되었고, 그 이후로는 반장선거에 절대 나가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교육청 민원감이고, 뉴스에도 오르내릴 수 있는 사안이겠지만 그때는 그런 일들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장남'이자 '아들'인 오빠의 학부모회(당시엔 어머니회로 불렸던 것 같다)에 참석해야 하는 엄마 입장에서도 '셋째'이자 '딸'인 나의 학부모회의 가입은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부담이 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득표는 나보다 낮았지만 반장을 한 그 남자아이(아직도 이름 세 글자가 명확히 기억나는 거 보면 어린 나의 맘에도 어지간히 상처였나 보다)의 엄마도 '장남'이자 '아들'인 어머니회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셨겠지. 실제로 해마다 오빠의 어머니회에는 매번 참석하였지만, 막내인 나의 어머니회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는 그것에 왜...? 하는 의문을 달지 않고 그저 받아들였다.


교사가 된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도 해 본다. 선생님께서 '남자'반장을 원했다면 개표를 자연스럽게 조작하여 의도적으로 남자 반장이 선출되는 결과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상처 받았던 '여자'아이도 없었을 텐데... 아마 담임선생님은 우리 친할머니와 같은 부류의 '여자'였을 것 같다. 할머니는 이미 아들인 오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에 아들 하나 더 있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우리 엄마는 국가적으로 '둘만 낳아 잘 키우자' 운동이 시행되던 1980년대에 셋째인 나를 가져서 너무 부끄러웠다고 한다. 뱃속 셋째는 아들일 거라고 잔뜩 기대하고 산바라지를 해 주러 오셨던 할머니는 엄마가 낳은 셋째가 '딸'인 것을 확인하신 순간 매우 실망하셨고, 3일 만에 댁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 나서는 할머니가 참 미웠더랬다.


학급 아이들의 도서카드를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준비를 하는 '여자'반장인 나의 아이는 오늘도 기분 좋게 등교했다. '여자'라고 출생조차 환영해주지 않았던, '여자'라고 학급의 임원이 되지 못했던 그런 나와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고 해야 하겠지만 얼마 전 인터넷에서 접한 '동아제약 면접'이야기가 우리 현실이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딸아, 네가 인생을 살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제약을 받는 상황을 만나지 않았으면 하고 엄마는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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