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2020년
2017년 암 진단을 받았을 때 휴직을 생각했다. 간단한 수술로 물리적인 치료는 끝났지만, 수술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2개월 병가를 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복직을 했지만, 다음 해에 옮긴 학교에서 업무를 많이 받아(도대체 새로 온 사람에게 폭탄 돌리기를 하듯 업무를 왕창 주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비단 학교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은데) 스트레스로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2개월을 넘게 항히스타민제를 왕창 복용하고 고생 좀 했더랬다.
그래서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2020년을 손꼽아 기다렸다. 명목상으로는 '육아휴직'이었지만, 사실 '육아'가 주가 아니라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지친 '나의 심신을 달래는' 게 주목적이었으니까. 뭐 쉬는 김에 그동안 출근한답시고 제대로 하지 못한 엄마로서의 역할도 아주 조금은 해보자 하는 이기적인 심산이었다.
여행 계획도 세웠다. 일단 하와이를 가보는 거야. 여유가 된다면 괌이나 사이판, 태국도. 그리고 평일엔 제주도 항공권이 싸니까 체험학습보고서를 쓰고 제주도에도 철마다 가는 거지. 아이가 노래를 불렀던 키자니아와 놀이공원, 박물관에도 가고, 국내 여행도 여기저기 구석구석 다 돌아다녀보는 거야. 다만 무급휴직이라 아쉬운 건 돈이지만 나에게는 마이너스 통장이 있으니 괜찮아.
그런데 2020년 1월 갑자기 코로나19가 터졌다. 세세한 건 서술하지 않으련다. 그저 '한숨만 나온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해서 대신할 수 있으리라.
아이의 등교는 5월 중순이 되어서나 가능했으며, 그 또한 전면 등교가 아니라서 학교 가는 날과 온라인 수업하는 날로 나뉘었다. 뭐 2020년은 방학기간을 제외해도 학교 간 날 보다 안 간 날이 훨씬 많았으니 말해 무엇하랴. 외출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 졸지에 아이와 난 '집순이'신세가 되었다. 일하는 엄마를 둔지라 항상 엄마가 고팠던 아이는 엄마와 하루 종일 붙어 있으니 행복해했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는... 반대였다.
'앞으로 내가 살면서 또 언제 아이와 이렇게 딱 붙어서 지낼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마 없겠지. '육아'휴직을 했으니 '육아'를 하는 게 맞아. 지금까지 제대로 못 한 엄마 노릇도 하면서 아이에게 가졌던 죄책감을 더는 거야.' 하고 생각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는 마음을 고쳐먹기를 수십 번 했다. 마치 도를 닦는 사람처럼. (세상의 모든 유치원 선생님, 초등학교 선생님, 정말 존경합니다!!)
휴직하면 도전하리라 계획했던 모든 프로젝트를 코로나가 망쳐버렸다.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여행도 제대로 못 갔으며, 마라톤 대회 10km 완주도 실패(대회 자체가 열리리 않았으므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엄마들과 우아하게 브런치 먹기(엄마들 사귀지도 못함), 어딜 갈 수가 없으니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코로나가 가능하게 했던 것은 '엄마'로서의 역할이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시간이 늘었다. 함께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면서 아이의 관심사에 나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엄마가 옆에 있어서 정말 좋아'라는 아이의 말에 순간 맘이 찡해진 적도 있었더랬다.
그리고 내가 집에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하게 되자 나의 '엄마'도 조금은 쉬실 수 있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나의 휴직을 기다린 사람은 우리 '엄마'였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1년만 계획했던 나의 휴직은 마지막 남은 기간까지 다 쓰기로 하여 5개월 더 연장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당연히 누렸던 엄마의 마중, 엄마의 보살핌, 엄마와 함께하는 긴 시간들이 아이에게는 특별한 이벤트처럼 행해진다는 것이 약간은 서글프기도 하지만, 특별한 시간이었기에 살면서 두고두고 기억되는 특별한 추억이길 바란다면 내 욕심일까.
오늘도 학교 건물 입구까지 무조건 함께 가자는 아이의 말에 이젠 혼자서도 갈 수 있잖냐고 했다. '이제 엄마가 이렇게 데려다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시한부 인생을 이야기하는 환자처럼 말하는 아이의 말에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제대로 된 엄마 역할'을 또 성실히 수행해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