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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선 Jun 28. 2023

"학원에 가면 울것같아"

육아는 고민의 연속이다. 

유치원 하원길, 62개월 6살 첫째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엄마 나 할 말이 있는데"


아이의 표정을 보니 왠지 모를 진지함이 느껴졌다.


"뭔데?"

"나 영어학원에 가기 싫어"


종종 학원 다니기 어떠냐고 물어봤을 땐 재미있다고 대답하던 아이였지만 그래 이제 슬슬 영어 숙제도 생기고 학원에  가기 싫을 때가 됐지.


"아윤아, 사람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거야"

"왜?"

"엄마아빠도 회사 가기 싫을 때가 있지만 다니잖아. 너도 학원은 다녀야지"

"....."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일요일 저녁, 티브이를 보던 첫째가 다시 한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영어학원 가기 싫어"


또 한 번 눈물을 글썽이는 얼굴을 보고 뭔가 이유가 있다 싶어 아이에게 답을 했다.


"이유가 뭐야? 혹시 말해줄 수 있어?"

"오빠들이 나한테 뭐라고 해"


그냥 숙제가 싫다거나 재미가 없다거나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의 답변에 머리가 살짝 띵해졌다.


"오빠들이? 뭐라고 하는데?"

"문제를 맞히면 코인을 모으는데, 오빠들이 왜 너는 코인 많냐고 해"


아 뭐지 우리 애가 너무 뛰어나서 질투를 받나?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머리가 하얘졌다. 아이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는 건 전혀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눈물이 고이고 빨개진 눈으로 그때의 상황과 감정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에게 어떤 상황인지 계속 캐물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들이 왜 코인 많냐고 해"

"누가? 오빠들 이름이 뭔데?"

"몰라"

"네가 코인은 못 모아서 그런 거야?"

"아니 내가 코인이 많아서"


혹시 같이 한 팀으로 게임을 하는 상황인데 아이가 뒤떨어져서 핀잔을 들은 상황일까 생각하며 물었다.


"아니 문제를 맞히면 주는 게 코인이잖아"

"아윤이가 문제를 많이 맞혀서 코인이 많았어?"

"응"


뭐지. 우리 딸 영재인가

혼자 문제를 다 맞힐 만큼 뛰어나서 오빠들의 시기를 받았나?

우리 애가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가 우리 애의 진가를 못 알아봤나?

별별생각이 들면서 계속해서 아이에게 상황을 캐물었다. 이제 진짜라면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한다.


"선생님이 오빠들한테 아윤이 도와주라고 했어"

"....(?)"

"코인을 다 모으면 선생님한테 가져다줘야 하는데"

"... 아..."

"학원에 가서 오빠들 보면 울 것 같아. 안 가고 싶어:



꽤 긴 시간 아이에게 설명을 들은 결과는 이렇다. 선생님의 지시로 학원 오빠들이 아윤이를 도와주고 있었고 그러던 중 아윤이가 코인을 모아둔 통을 비우지 않고 채워두니 오빠들이 코인을 선생님께 가져다주라고 다소(?) 격하게 말한 것 있다, 그리고 아윤이는 그 말을 자신을 미워한다, 나를 공격한다로 받아들였다.


그렇지 우리 아이가 영재는 아니었지.... 하는 안도감과 살짝 부끄러움이 밀려웠다.

그리고 내성적이고 수줍어 사회적 관계를 어려워하는 우리 아이에 대한 고민도 시작되었다.


"아윤아 엄마가 선생님한테 말해볼게. 그런데 일단 학원은 가야 해"

"가면 울 것 같아"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짧은 순간 고민되었다.


"(공감) 그래 누군가 나한테 기분 나쁜 말을 하면 엄마라도 학원에 다시 가기 싫을 것 같아. (현실설명) 그래도 학원을 바로 그만둘 수는 없어. 가기 싫고 누가 보기 싫다고 그냥 그만두는 건 안 되는 거야. (대안) 대신 엄마가 내일 선생님하고 이야기해 볼게. 혹시 누가 아윤이를 괴롭히는 거면 오빠들도 혼나야 하잖아. (제안) 일단 학원에 한 번만 더 가보고 다시 엄마랑 얘기하자."


아 일단은 해냈다.


"그럼 엄마가 수업 끝나자마자 데일러와"

"알겠어. 수업 끝나고 노는 시간 없이 바로 데리러 갈게"



벌써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누군가와 부딪치고 고민하고 관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나이가 되었구나. 

친구와 친하게 지내, 친구랑 싸워도 되지만 싸운 뒤에는 화해를 해봐, 친구가 이유 없이 공격을 하면 선생님께 도움을 청해, 친구한테 안녕하고 인사하자, 같이 놀 자로 이야기해 봐 등등 일차원적인 조언만 해왔다. 하지만 이제 아이에게 조금 더 깊은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고 나 역시도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이에게 생기기 시작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별 문제도 아니야

그냥 참아

걔들 무시해

학원 그만둘래?

다른 데로 옮겨줘?


이런 대답은 아이에게 하고 싶지 않다.

방치도 무시도 무조건적인 보호도 하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또 어떻게 이끌어줘야 할까.

일단은 학원 가는 날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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