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어려운 난중일기, 1회독을 목표로, 오늘자에 해당하는 일기만 발췌하여 소개하고, 짧은 생각을 덧붙여 연재 하고 있습니다. 매일 이순신과 하루를 함께 하고 싶으신 분들은 팔로우 또는 구독 바랍니다.
1595년 12월 2일
맑음. 거제현령, 당포만호, 곡포만호 등이 와서 만났다. 술을 먹였더니 취하여 돌아갔다.
1597년 12월 2일
맑음. 날씨가 매우 따뜻하여 봄날 같았다. 영암의 향병장 유장춘이 적을 토벌한 사유를 보고하지 않으므로 곤장 50대를 쳤다. 홍산현감 윤영현, 김종려, 백진남, 정수 등이 와서 만났다. 밤 10시경에 땀이 배었다. 북풍이 세게 불었다.
1. 오늘 장군님께서 부하들과 한잔 하셨네요.
2. 95년은 명왜가 강화협상 중이었고, 이순신은 한산도 통제영에 있었습니다. 이순신 함대는 역대 최대 규모였습니다. 이 당시 일기에서는 작전장교 보다는 군수장교나 행정장교로서의 이순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부하들과 회식도 리더의 중요 업무 중 하나이지요.
3. 97년 오늘에는 향병장 유장춘에게 벌을 주셨네요. 군대는 일사분란한 지휘계통을 확립하는게 중요합니다. 승전한 장수라도 이를 어기면, 무섭게 벌을 주셨네요.
4. 유장춘은 처음 들어본 장수라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1533년생으로 이순신(1545년생) 보다 8살 나이가 많은 영암 출신 무신으로, 51세(1583년)에 무과에 합격하였습니다. 이순신이 1576년에 합격했으니, 7년 후배네요. 나이는 8살 많고, 무과는 7년 후배. 일기에는 향병장이라고 되어 있는걸 보니 관직은 없는 의병장으로 활동하신 것 같습니다.
5. 명량대첩 이후 수군을 재건하고 있던 이순신은 주둔지 근처의 의병들을 조직화하기 위해서, 유장춘과 같은 명망있는 의병장에게 엄한 벌을 준 것은 아닐까요? 나이많은 후배가 이순신에게 대들어서 화난 걸까요?
이해를 돕기 위한 사건일지
1593년 1월 8일 조명연합군 평양 수복
1593년 4월 18일 왜군 서울 철수
1594년 10월 10일 명, 일본과 강화재개 조선에 통보
1597년 1월 28일 이순신 파직, 원균 삼도수군통제사(2월)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 승리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전사
오늘의 인물 : 유장춘
전몽성(全夢星)·전몽진(全夢辰) 형제, 유장춘(柳長春) 등은 지금의 학산면 밤재에서 왜적 수백 명을 참살하고 월출산으로 진을 옮겨 해암포에서도 적선 수십 척을 격퇴하였으나 순절하였다.
임진왜란 때 공신인 전봉성(1561∼1597)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천안 전씨인 전봉진과 전봉대를 함께 모시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인 고경명을 따라 금산전투에 참가했으며 이후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함평군수에 제수되었다. 정유재란 때에는 유장춘 등과 힘을 합쳐 율치전투에서 싸우기도 하였으나 아쉽게 선조 30년(1597) 현석포 전투에서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