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섬나라가 아닙니다?

사고와 행동을 결정한다

by 이순신서점

* 자의 반 타의 반으로 20년간 일본과 얽혀 산 사람입니다. 대학에서 일본을 전공하고, 일본 관련 일을 해왔으며, 도쿄에 2번 주재했습니다.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일본과 일본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인들도 자연을 사랑합니다. 태풍, 지진,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가 많아서 그런지 자연을 두려워하기도 하고요.


2. 우리는 밥 먹기 전에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밥 차려 주신 분들께 감사함을 표시합니다. 일본인들은 '잘 받겠습니다' (이따다끼마스)라고 합니다. 자연이 주신 생명을 내 몸속에 잘 받아들이겠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법륜 스님께서 고기를 먹기 전에 '소야 미안하다'하고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뜻이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3. 손님들을 모실 때 일본 음식은 먹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농담을 하곤 합니다. 가이세키 요릿집에서는 계절감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봄엔 벚꽃, 가을엔 단풍을 데코레이션으로 사용합니다. 음식 데코레이션 수요가 상당해서, 음식 장식용 꽃과 잎을 판매하는 전문업체가 여러 군데 있습니다.


4. 우리가 제철 음식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요릿집에서도 철 따라 코스 요리를 바꿉니다. 도쿄 시내에 단골 로바다야끼 집이 있었습니다. 고급 음식점으로, 손님 접대하기 좋아서 종종 찾곤 했습니다. 겨울철에 갔더니 작은 도루묵을 내놓았더군요. 한국에서는 값싼 물고기라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접대가 소홀하다는 인상을 줄까 걱정도 되었고요. 그런데 맛있더군요. 겨울엔 알밴 도루묵 구이가 금돔(긴메다이) 보다 낫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5. 일본인들의 꽃 사랑은 못 말립니다. 화투가 괜히 생긴 게 아니죠. 매월 그달에 봐야할 꽃이 정해져 있습니다. 3월의 벚꽃, 5월의 장미, 6월의 수국처럼 말이죠. 벚꽃철이 되면 벚꽃 일기예보를 합니다. 남쪽 큐슈부터 북쪽 홋카이도까지 벚꽃 개화 전선이 올라오는 걸 예보해 줍니다. 각 도시마다 벚꽃 기준목이 있어 그 나무를 기준으로 벚꽃 만개시점을 정합니다. (도쿄의 경우 야스쿠니 신사 벚꽃, 우리가 아는 그 야스쿠니입니다)


5. 일본인들의 꽃 사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가을 7초라고해서 싸리나무꽃, 억새, 칡꽃, 패랭이꽃, 마타리, 등골나무, 도라지 보는 것을 즐겼다고 하네요.


6. 우리가 단풍놀이를 가듯이 이들도 철 따라 여행을 다닙니다. 벚꽃 중에 이와즈자꾸라고 2월에 피는 벚꽃이 있습니다. 첫 벚꽃을 보기 위해 도쿄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이곳 이와즈까지 특별열차를 운행합니다. 6월 말 장마철에는 수국을 보러 가마쿠라에 갑니다. 8월에는 신록이 어우러진 고원 휴양지인 가루이자와, 11월은 단풍의 도시 교토에 갑니다. 일본 여행은 어딜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가느냐도 중요합니다.


7. 지진이 많다 보니 건축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내진설계가 발달된 건 당연하고요. 잘 보시면 일본 맨션의 외벽 타일은 큰 면적의 것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작은 타일을 쓰지요. 지진에 흔들려 떨어질 것을 대비하는 겁니다. 전자식 도어록도 잘 쓰지 않고, 수동 키를 선호합니다. 전자식이라도 수동식 키를 보조수단으로 둡니다. 이 또한 지진과 정전에 대비하는 것이지요. 일본에서 한국식 도어록이 잘 팔리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매년 동사무소에서 침수맵을 보내줍니다. 이 지도에는 내 집의 침수 이력과 가능성, 대피소 정보가 적혀 있습니다.


8. 재해가 많은 나라라서 안전한 곳이 부동산 가격이 비쌉니다. 특히, 암반이 발달한 고지대 지역을 선호합니다. 도쿄에서는 제 필명인 아자부 지역이 대표적인 안전지대로 꼽힙니다. 이곳에 고급 주택가와 외교 공관들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매립지인 저지대는 비선호 지역입니다. 여러분들이 쇼핑하러 많이 가는 오다이바나 도쿄디즈니랜드는 최근에 만들어진 매립지로 침수 가능성이 높은 지역입니다. 이곳의 고층 맨션들은 상대적으로 넓고, 가격도 합리적인 편입니다.


9. 일본은 섬나라이긴 하지만 그리 작진 않습니다. 홋카이도가 남한만 하고, 큐슈가 한국의 절반 정도 크기입니다.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의 거리는 한국에서 베트남까지 거리에 맞먹습니다. 한라산과 같은 2천 미터급 산은 일본에서는 흔한 편입니다. 전쟁 피해를 덜 입었는지 우리보다 나무 수령도 길고, 큽니다. 일본의 계곡과 바다를 보면,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고, 넓습니다. 생각보다 일본의 자연은 작지 않습니다.


10. 카운터파트인 일본인에게 일본은 섬이라고 했더니 반응이 썩 좋지 않더군요. 이들은 일본을 하나의 세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세아니아 대륙처럼 말이죠. 이들의 문헌을 보면 일본을 동천자로, 중국을 서천자로 부르곤 했습니다. 기 607년 일본은 "해 뜨는 곳의 천자가 글을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보냅니다. 별고 없으십니까?"라고 보내 수나라 양제를 열받게 한 적이 있습니다. 1381년에는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어찌 중화에는 군주가 있고, 이적에게는 없겠습니까? 천하는 넓어 한 사람의 임금이 좌우할 수 없고, 우주는 넓어 여러 나라들이 각기 나누어 지킵니다. 천하는 천하의 천하이고,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1. 그리고 일본은 탈아입구,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에 편입되고자 노력했던 국가입니다. 한때 유럽연합에 가입하자는 논의가 있기도 했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고 하실 분이 있겠지만, 이들은 진지합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유럽 정세가 곧바로 일본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러일전쟁을 한 경험도 있고, 최근 러우 사태 직후에 러시아 헬기가 일본 방공식별 구역에 들어와서 떠들썩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일본은 아시아 정세뿐만 아니라 유럽 정세에 상당히 관심이 많습니다.


12. 자연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국제정세로 이야기가 샜습니다. 지리적 조건과 자연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남쪽 끝은 중국과 북쪽 끝은 러시아와 마주한 일본, 지진과 태풍 등 자연재해가 많은 열도의 나라라는 특징은 이들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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