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빨리와 미리 미리
빨리 빨리와 미리 미리
1. 일본에서는 택배로 물건을 주문할때 택배 받는 일자와 시간을 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능한한 빨리 빨리에 익숙한 저와 가족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익숙해지니 오히려 편한 점도 있었습니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간대에 확실히 받을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군요. 물론 한국은 집 앞에 두고 가기 때문에 언제든 받을수 있어서 더 편리합니다. 적응하기 나름입니다.
2. 일본은 세미나 같은 행사를 할때 주최측이 참석여부를 알릴수 있는 서류를 팩스로 보내줍니다. 그러면 참석 또는 불참을 적어서 팩스로 답신을 합니다. 불참의 경우에도 꼭 답변을 해야 합니다. 만약 참석으로 통보하였다면, 부득이한 사정이 아닌 이상 가는 것이 좋습니다. 참석자 숫자에 맞춰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부득이하게 못 가는 경우에는 못 가는 이유를 적고, 회의에서 할 말을 적어서 주최측에 보냅니다. 대신해서 주최측 간사가 불참 이유와 코멘트를 읽어줍니다.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생각이 들긴 하지만,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를수 밖에 없지요.
3. 우리나라도 당연하지만, 식당에 노쇼를 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안 내면 어떻게 되냐구요? 그럼 다음부터는 그곳에 가지 못합니다. 당신을 위해 식재료와 스텝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스 요리의 경우에는 미리 코스요리 시간을 확인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다음 일정이 있어 빨리 끝내달라고 해도 들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골 이태리 요리집에서 한두번 재촉을 했더니, 예약할때 식당에서 먼저 물어보더군요. 여유있게 오시던지 아니면 짧은 코스를 드시던지 해주면 좋겠다구요. 곤란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4. 우리는 행사를 정각 또는 30분에 맞춰 시작하거나 끝냅니다. 일정보다 조금 늘어지거나, 당겨서 끝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15분 또는 13분에 시작하거나 43분에 끝내는 행사도 종종 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습니다. 기차 시간에 맞춰서 행사를 준비하다 보니 시작시간을 13분에 했다는 분도 있었고, 발언자들 요청시간을 합산하다 보니 끝이 43분이 되었다는 답변도 들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몇분 덜거나 더해서 정각이나 30분에 맞췄을텐데 그러지 않더군요.
5. 처음 아이를 맡기려고 근처 유치원에 무작정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상담을 하긴 했는데, 직원들이 몹시 당황해 하더군요. 교토에서는 유명한 가이세키 요리집에 불쑥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여주인(오카미)은 드실만한 메뉴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간단한 식사라면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있다고 소개해주었습니다. 예약없이 휴대폰 요금 변경 상담을 갔다가 4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구요. 한국이 정말 그리워졌습니다.
6. 이곳 사람들은 예측 불가능한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리 약속하고, 미리 준비하여, 예정된대로 행동합니다. 이런 시스템은 믿을수 있고,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다만, 환경이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는 유연한 대응이 어렵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빨리 빨리, 적당히 잘, 눈치있게 문화가 강점이 있습니다. 어떤 시스템을 택할지는 그 나라 국민들의 선택입니다. 다른거지 틀린 것은 아니지요?
7. 아이 학교 실습용으로 찰흙을 사야 되는데 파는 곳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로켓 배송을 시켰더니, 다음날 새벽에 집 앞에 와 있는게 한국입니다. 참 편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미친 속도감을 좀 줄이면 안되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중간쯤이면 어떤가 싶습니다.
7.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님이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80년대에 쓰신 글에서 일본 사람들은 빠르다, 한국 사람은 느리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패전 이후에 고도 성장기에 일본인들은 우리만큼 속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타고난 민족성으로 설명하기에는 많은 것들이 환경과 제도, 처한 상황에 따라 변합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정도이겠지요.
8. 한국에 오래 살다가 일본에 가면 갑갑함을 느낍니다. 일본에 오래 살다가 한국에 오면 불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것 같습니다. 6개월 정도 지나면, 금새 사는 곳에 적응해 버리거든요. 30년 뒤에도 한국은 빨리 빨리, 일본은 미리 미리 일까요?두고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