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리의 일본

과거와 현재의 간극

by 이순신서점

* 자의 반 타의 반으로 20년간 일본과 얽혀 산 사람입니다. 대학에서 일본을 전공하고, 일본 관련 일을 해왔으며, 도쿄에 2번 주재했습니다.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일본과 일본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일본은 성장을 넘어 성숙 단계에 들어선 나라입니다. 경제, 인구, 문화 등 여러 면에서 일본은 정점을 찍은 나라일지 모릅니다.


2. 도쿄는 에도 시대 이후 팽창을 거듭해왔습니다. 현재 도쿄는 도쿄 시내라 할수 있는 23개구와 베드타운으로 개발된 위성도시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타마도 그런 도시 중에 하나입니다. 도쿄 통근자들을 위해 지어진 신도시인데, 지금은 유령도시라 불릴만큼 한적한 곳이 되었습니다.


3. 동일본대지진이 난 후에 일본은 전국의 모든 원전을 가동 중지시켰습니다. 전력 공급 부족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고도성장기에 만들어진 유휴 설비들을 가동시켰고, 절전대책을 병행하면서, 원전을 모두 정지시켰는데도 전력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습니다. (물론 비싼 가스발전을 하느라 전력요금은 올랐습니다. )


4. 최근 심심찮게 유명한 일본 기업들의 자료위조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도요타자동차의 에어백 검사자료 위조, 맨션 제진용 스프링 품질검사 자료 조작, 오사카 최고급 호텔의 식재료 원산지 오기. 예전 대비 요즘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5.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80년대 만들어진 메뉴얼과 00년대 현장의 괴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에는 많은 인력과 자원이 있다는 전제하에 메뉴얼을 만들었지만, 정점을 찍고 슬림화된 00년대 현장에서는 메뉴얼을 실행할 능력이 없는 겁니다. 이 괴리를 풀 방법은 메뉴얼을 바꾸거나, 대충 하는 것 뿐이지요. 조작 사건들은 후자를 선택해서 생긴 일이 아닐까요?


6. 저는 일본에서 기차여행을 하곤 했습니다. 1~2량짜리 꼬마 기차를 타고,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시골역사를 구경합니다. 대부분 무인역사라 검표도 하지 않습니다. 관광객인 저에게는 좋지만, 버블기에 만들어진 비효율을 감당하려면 댓가도 큽니다. 이 모든 비용은 신칸센 요금에 반영되고, 일본 서민들은 높은 대중교통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7. 요금을 더 치루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게 더 문제입니다. 버블기에 만들어진 공항, 댐, 도로, 터널, 수영장을 유지하려면 비용이 듭니다. 예산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유지보수가 소홀해 질수 밖에 없습니다. 제 아무리 잘 관리해도 내구연한이 지난 인프라는 사고에 취약합니다. 최근 들어 터널 붕괴, 침수 등 사고나 자주 발생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부모 세대가 만들어놓은 버블을 자식세대들의 목숨으로 갚고 있는 격입니다.


8. 몇년전 도쿄에 다시 갔습니다. 예전에 살던 메구로역 주변을 들렀는데, 깨진 아스팔트와 보도블럭이 군데 군데 보이더군요. 10년전만 해도 최소한 도쿄 도심내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과거로부터 밀려온 관성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이제 더 이상 메우기 어렵게 된 것일까요?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핵심은 바로 과거와 현재의 괴리라고 생각합니다. 괴리의 일본


9. 이 괴리를 메우는 방법은 두가지 입니다. 과거의 영광을 잊거나 현실을 조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때 현실을 쉽게 재구성하곤 합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 역시 괴리를 메우려는 시도의 하나로 이해할수 있지 않을까요?


10. 일본과 한국은 30년 간격을 두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요즘엔 이 간격이 더 짧아져서 5년, 10년이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완벽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양국이 이미 일정 정도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과거와 현재의 괴리 문제는 우리도 똑같이 겪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도 언젠가 정점을 찍을 것이고, 그것이 오늘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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