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물은 썩는다

일본 부침의 원인

by 이순신서점

* 자의 반 타의 반으로 20년간 일본과 얽혀 산 사람입니다. 대학에서 일본을 전공하고, 일본 관련 일을 해왔으며, 도쿄에 2번 주재했습니다.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일본과 일본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제이팝 전성기는 90년대 초반입니다. 그럴수 있었던 이유는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우타다 히까루 같은 외국에서 살다 온 가수(소위 귀국 자녀)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이식하고, 일본 국내에서도 젊은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쟈니스와 같은 프로듀싱 기업의 출현도 한 몫을 했겠지요.


2. 기계를 만드는 기계라 불리우는 공작기계 분야에서 일본이 1등을 할수 있었던 이유도 제이팝과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에 밀려 만년 2등에 머물던 일본은 당시 우주항공 분야에서만 사용되던 반도체를 공작기계에 처음 접목해서 단숨에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아직도 화낙과 같은 일본 기업은 기계의 두뇌라 불리우는 CNC 독점기업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3. 소니의 워크맨,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패스트 패션의 창시자 유니클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처음 시도해서 대성공을 했지요. 반면에 한때 세계를 휩쓸었던 일본 망가, 조선 산업, 샤프와 같은 전자 대기업들은 힘이 많이 빠진 것 같습니다.


4. 왜 한때 잘 나갔던 일본이 주춤하는 걸까요? 짧은 생각이지만 외부로의 개방성이 약화되고 고인 물이 된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5. 우리와는 다르게 일본은 해외근무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일본 드라마를 보면, 해외근무 발령이 나면 좌천으로 받아들이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해외 유학생 숫자도 다른 나라에 비해 적습니다. 일본 국내에 와 있는 외국인 숫자도 그리 많지 않고, 외국인의 유입을 반기는 분위기도 아닙니다. 고도성장기 이후에는 일본 국내에서 대부분의 것들이 충족되었기 때문에 굳이 일본 밖으로 나갈 유인이 없었습니다. 좁은 국토와 협소한 시장과 제한된 자원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와는 처한 현실이 다릅니다.


6. 대외적인 개방성 뿐만 아니라 일본 각 지역별로도 갖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110볼트를 쓰는데 관동 지역과 관서 지역이 헤르츠가 달라 양 지역간 전력 융통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관서와 관동 지역은 하다 못해 에스컬레이터 타는 방향도 다릅니다. 평생 태어난 곳에서 살다가 도쿄에는 한번도 온 적이 없다는 사람도 상당합니다.

7. FTA를 통한 대외 시장개방도 늦었습니다. 오죽하면 아베 전 총리가 TPP 가입을 추진하면서, TPP를 21세기의 새로운 흑선으로 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걸었겠습니까? 페리 제독이 흑선을 타고 일본을 개항시켜 이후 메이지 유신에 이르렀듯이, TPP로 충격을 줘서, 일본 사회의 개방성을 높히고,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8. 적당한 크기의 내수시장을 여러 플레이어들이 나눠 먹는 구조도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꼽힙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한국의 현대/기아차가 양분하고 있지만, 일본은 10개 가까운 상용차 업체들이 시장을 갈라먹고 있었습니다. 내수로 근근히 먹고 살 정도는 되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유인도 크지 않았고, 나가더라도 덩치 큰 외국 기업과 경쟁도 어려웠던 것이지요. 작지 않은 내수가 오히려 독이 된 것입니다.


9. 요즘 한국 사회는 과거의 일본과 같이 안주하려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득수준이 올라가고, 추구하는 가치가 다양해지다 보니, 예전보다 헝그리 정신이 약해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변화를 모색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외국인 이민과 투자에 우호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대외 통상개방에도 적극적입니다. 낮은 곳은 높아지고, 높은 곳은 낮아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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