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쇼가나이나(しょうがないな), 일본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로. 한국어로는 어쩔 수 없지 뭐. 영어로는 It can't be helped.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쓰이는 용법은 다양합니다.
2. 먼저, 사정은 딱하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네요로 쓰일 때입니다. 제가 임무를 마치고 복귀할 때 일입니다. 일본은 매뉴얼 사회인만큼, 복귀 절차도 상세한 규정이 있었습니다. 공항까지 이동은 리무진으로 하라고 적혀 있더군요. 불행히도 코로나로 이용 가능한 리무진이 모두 운행 정지 상태였습니다. 저는 대신에 열차를 이용하면 안 되냐고 물었습니다. 리무진을 이용해야 한다고 답변이 왔습니다. 지금 운행을 안 한다고 이야기해도 똑같은 답변을 하더군요. 몇 번 같은 답변을 반복하더니, 담당자는 딱하다는 듯이 어쩔 수 없네요라고 하더군요. 본인도 매뉴얼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 방법이 없고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곤란하다는 말을 덧 붙였습니다. 본인은 매뉴얼대로 할 뿐인데, 계속 같은 주장을 하면 입장이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결론은 그냥 제가 따로 예약을 해서 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비용도 제가 치루고요.
3. 두 번째 용법은 상대방의 말에 동의하는 겁니다. 운전면허 갱신을 하러 갔을 때 생긴 일입니다. 한자 성명의 삐침 하나를 잘못 썼습니다. 획을 잘못 그은 거죠. 수정 후에 제출했더니 담당자가 접수할 수 없고, 다시 써오라고 하더군요. 조금 틀린 건데 괜찮지 않냐? 빨간 줄로 긋고 도장 찍으면 안 되냐 등등 몇 번 실랑이를 하다가, 지쳐서 쇼가나이데스네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너도 어쩔수 없구나. 이해가 되니, 받아들일께 라는 뜻이지요. 그러곤 다시 처음부터 서류를 적었습니다. 틀릴까 봐 조마조마하면서요.
4. 전입 신고를 할 때는 고무도장을 찍었더니, 나무 도장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고무도장의 한자가 너의 이름인지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이번에도 왜 고무도장은 안 되느냐? 외국인에게만 별도 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거냐? 고 몇 번 실랑이를 하다가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쇼가나이데스네 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제야 담당자는 안심을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결론은 다음날 다시 동사무소에 갔습니다. 새로 목도장을 파고, 서류도 챙겨 갔습니다. (다음날은 다른 직원이라 서류는 요구하지 않음)
5. 몇 번 이런 일을 당하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우선, 관공서, 은행, 카드사 같은 곳은 되도록 가지 않게 됩니다. 골치 아프다는 걸 알거든요. 그리고 꼭 가야 되는 상황이 되면 먼저 규정을 샅샅이 파악하고 모든 서류를 완벽하게 챙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빨리 어쩔 수 없네요를 하고 돌아옵니다. 어차피 안 되는 거 알기 때문에 빨리 포기하는 게 이득이라는 것을 아는 거죠. 체념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6. 왜 이러는 걸까요? 제 생각에 일본은 말단 직원에게 권한이 거의 없습니다. 재량권이 없는 거지요. 그리고 매뉴얼과 규정에 따르지 않으면 나중에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상한 규정이라고 해도 따를 수밖에 없는 거지요. 딱히 해줄 수 있는게 없는 사람에게 자꾸 요구하는 건, 그걸로 민폐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못해주는 사람도 어쩔수 없네요.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도 어쩔수 없네요 라고 하는 거지요. 쇼가나이가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겁니다.
7. 지금 저는 여권을 만들려고, 시청에 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쩔수 없네요 라는 말은 잘 하지 않지요? 대신에 왜 안되는거죠? 이거 해주면 안 되나요? 왜 저만 늦게 해주나요? 바빠요. 빨리 빨리 해주세요 라는 말을 합니다. 결론은 소비자가 요구하는대로 맞춰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원을 넣는다던가, 방송을 탄 다던가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런 경험을 몇번 하다보면, 가만 있으면 나만 손해라는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불이익은 참지 않고, 말이 안 되어도 일단 요구하는 문화가 생깁니다. 떼를 쓰게 되는거지요. 해주는 사람도 왠만하면 해줍니다. 왜냐하면, 안 해줬을때 골치 아프다는 걸 경험해서 알거든요.
8. 양국 사람들이 비즈니스를 하게 되면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일단 던져 봅니다. 말도 안 되게 가격을 깍거나, 납기를 당긴다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지요. 될거라고 생각하고 하는건 아닙니다. 일단 던지고 보는 거지요. 한국이라면 그냥 던지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웃어 넘길텐데, 일본인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 이러는걸까? 이상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정중하게 거절하지만 이미 마음이 상했습니다.
9. 체념의 문화, 떼를 쓰는 문화. 어떤 쪽이 더 낫나요? 중간쯤 되면 좋으련만, 이런 특성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무례하고 거칠다고 생각하고, 한국 사람들은 일본인을 답답하고, 꽉 막혔다고 생각하는게 아닐런지요?그리고 이런 특징이 생기게 된 이유는 규정과 책임, 재량권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