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9년(선조 22) 나덕명은 기축옥사(己丑獄死: 일명 정여립의 난)에 연루되었다. 그는 정개청의 문하생이었으므로 역적 정여립과도 가까웠을 것이라는 무고를 받아 함경도 경성(鏡城)으로 유배되었다.
유배 생활 중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관노 국경인(鞠景仁) 등이 작란하여 왕자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 및 수행신하들을 왜적에게 넘겼다. 이에 의병을 일으킨 함경북도병마평사(咸鏡北道兵馬評事) 정문부(鄭文孚) 막하에 들어가 싸웠다. 이후 쌍포(雙浦) 백탑교(白塔橋) 싸움에 참전하였으며, 1594년 귀향이 풀린 후에는 형개(刑玠)에 있던 허충의‧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 1537∼1599)과 함께 일본에 대적하였다. 또한 정유재란 때에는 아버지의 시묘살이 중이었음에도 판서(判書) 임담과 의병을 일으켜 전라남도 화순(和順)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이러한 공적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고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증직되었다. 1803년(순조 3)에는 충신으로 정려(旌閭)되어 무안군(務安郡) 일로읍(一老邑) 청호리(淸湖里) 주룡(住龍)마을에 충신각이 건립되었으며, 도내 사림(士林)이 소포사(嘯浦祠)를 지어 그를 배향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 외 나주 금호사(錦湖祠), 고양(高陽) 덕양구(德陽區) 행주내동(幸州內洞) 충장사(忠莊祠) 등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