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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Mar 23. 2020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

조직이 이류일 수밖에 없는 이유

스마트한 개인,

아니 본인은 스마트하다고 생각하는 개인들이 만나

이룬 조직은 과연 스마트할까?


안타깝게도 정답은 아니다.


왜 집단지성은 발현되기 어려운지.

그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해 준,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의

안목을 함께 나누어 본다.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_군터 뒤크 지음_김희상 옮김_비즈 페이퍼 출판사]


[조직이 바보가 된 이유]


1) 회의 때문에 일할 시간이 없다.

회의 시간과 횟수는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회의에서 해야 할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한다.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를 두고 서로 신경만 곤두세운다. 길고 지루한 회의 탓에 정작 본래 업무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그리고 결국 마감에 임박해서야 허겁지겁 마무리를 한다. 이처럼 끝없는 잡무는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시간에 쫓기다 보면 스트레스 가득한 버거운 일이 된다.


회의에서는 항상 같은 싸움닭이 만나 (대개 자신의 잘못으로 생겨난) 문제를 물고 늘어질 뿐이다.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는데, 전문가도 아닌 얼치기가 시비만 일삼는다. 애초에 이들이 전문가였다면 문제는 아예 발생하지도 않았으리라.


2) 조직 내 동상이몽

왜 기업은 고객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을까? 왜 경영자는 직원의 말을 무시하기만 할까? 왜 직원은 상사의 말이라면 거부감부터 가질까? 모두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저마다 다른 부분을 보는 탓에 협력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모두가 거대한 전체를 바라본다면, 공동 접근이 가능하리라. 그러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스마트한 것, 심지어 천재적인 작품까지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집단 지성'의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모두가 전체를 보지 못하고 각자의 관점만 고집하며 싸우는 탓에 집단 어리석음이 생겨난다.


어떤 특정 영역(부서)의 경영자와 직원은 다른 영역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데 무슨 신경을 어떻게 쓸까. 결국 전체를 아는 사람은 없다. 최고 경영진은 모든 직원에게 제발 전체에 집중해달라고 호소하지만 이는 그 어떤 반향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예나 지금이나 상황은 마찬가지다. 직원들은 전체를 잘 알지 못한다. 오로지 일부, 특히 자신이 담당하는 영역만 알고 있을 뿐이다. 기업은 대개 인사, 법무, 연구 개발, 생산, 판매 영업 부서 등으로 구성된다. 각 부서는 맹인처럼 회사 전체를 둘러싸고 손을 더듬거릴 뿐이다. 그저 자신의 부서에서 보고 느끼는 것으로 전체를 희미하게 그릴뿐이다. 저마다 전체를 다르게 이해하고 파악하는 마당에 진정한 협력이 과연 가능할까?


3) 유토피아 증후군

폴 와츠라위크(Paul Watzlawick)와 존 위클랜드(John Weakland), 리처드 피시(Richard Fisch)의 공동 저서 <변화하라 Change!>에는 '유토피아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원하는 정도의 성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거나 혹은 인정하지 못해 집요하게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유토피아 주의자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유토피아가 도달할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는 금기시되는 질문이다.


유토피아 증후군에 사로잡힌 사람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며, 계속해서 심한 비난을 퍼붓는다. 이런 사람은 성과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전혀 없다. 때문에 배우려는 태도로 전략을 바꾸지 못하고 유토피아 역시 포기하지 못한다. 게다가 주변의 충고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재능에는 의문을 갖지 않고 그저 집요하게 '세계 최고'만을 고집한다.


갑자기 놀랄 정도의 많은 업무나 과제가 주어지면 나도 물론 야근을 해야 한다.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야근으로 성취 불가능한 목표를 이루려 시도한다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문제의 희생자가 될 뿐이다. 생각해보라. 축구에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이 훈련을 죽도록 오래 한다고 해서 스타 선수가 될 수 있을까?


4) 체계적 권한 위임의 부족

쳇바퀴 밖의 사람을 놈팡이나 게으름뱅이로 여기는 태도는 더 큰 파국을 불러온다. 모든 직원, 특히 자청해서 일을 떠맡는 직원(야심가)은 놈팡이로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일이 삶의 전부인 양 달려든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태도, 즉 집단 어리석음이 자행되는 전형적인 사례다.

 대기행렬 공식은 다음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한다.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은 중요도 혹은 자격 요건이 떨어지는 사람보다 훨씬 더 적은 부담을 갖고 일해야 한다. 고위 경영자가 중요한 몇 가지 사안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누구도 오랫동안 결정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매끄러우리라. 최고 전문가가 시간 여유를 누리는 덕에 모든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거리가 부족해지면 일은 위로 몰리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이 집단 어리석음의 결과가 아닐까? '모두'를 위한 일거리가 충분하지 않다면 직원들이 재충전할 수 있도록 휴가를 주거나 교육시간으로 활용할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 최고 경영자는 새로운 전략과 혁신과 개혁과 변화를 이끌어낼 구상을 하고 자신과 직원을 위한 교육에 매진하면 된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일에만 매달리고 싶어 한다. 경영자는 평범한 직원에게 넘겨도 좋을 일마저 자신이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가능한 한 일을 아래로 위임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애써 하지 않으려 한다!

 자동차 정비 장인이 어리석게 구는 것을 본 적 있는가? 도제보다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장인이 손수 타이어를 갈던가? 그런데 대기업은 항상 정반대로 돌아간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부하 직원의 일거리를 가로채는 형태가 벌어진다. 상사에게 그만큼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쓴다. 바로 이 때문에 간부급에게 좋지 못한 회사 사정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다! 그저 아랫것들만 벤치에서 빈둥거린다. 에휴, 저들을 치워라! 비용만 잡아먹고 손실만 일으키는 저들을 해고하라!

 미국의 경영 이론은 이 문제를 '체계적 권한 위임의 부족(Systemic underdelegation)'이라 부른다. 이는 매우 끔찍한 참상을 야기한다. 실력자는 회사를 구하겠다며 녹초가 되어 나가떨어질 때까지 일하는 반면, 아래의 '평범한 직원'은 한가하게 빈둥거린다.


5) 지표

재차 강조하지만 정확한 측정값이 가장 좋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인생에는 정확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는 대개 지표를 근거로 판단을 내린다. 지표에 근거한 판단이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많다. 때문에 우리는 지표와 기준을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지표가 부정확하다는 불평은 판단을 내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소에 방증과 지표를 신중하게 다루는 법을 익혀 직관력과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지표는 상황을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조작된 지표는 이런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다. 조작된 지표에 의존하는 사람은 눈먼 장님과 같다. 어쩌면 좋을까?


- 조작을 막는다.

- 조작되지 않은 새로운 지표를 찾는다.


복잡한 지표는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만 조작이 어려워진다. 이런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품을 들여야 한다.


6) 중압감과 번아웃 증후군

 오늘날의 권력자는 "비교하고 통치하라(Compera et impera)!" 또는 "평가하고 통치하라!"라는 금언을 따른다. 권력자는 부하들을 단 한 명의 승자만 존재하는 경쟁으로 내몬다. 승자는 권력을 얻게 될 것이라는 미끼가 던져진다. 오늘날 경영자, 부모, 교사, 기자, 축구팀 감독은 평가라는 권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지배한다. "네 형은 성적이 좋아서 사랑을 듬뿍 받았어, 너도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이런 비교는 인간의 영혼에 심각한 상처를 낼 수 있다. 목적이 그저 동기부여였을지라도 말이다.

 학생은 언제나 성적표만, 국가대표 선수는 기자들의 반응만 살핀다. 권력이 원하는 쪽만 바라보느라 이들은 분열한다. 이렇게 해서는 당연히 좋은 팀이 될 수 없으며 그저 허약한 집단으로 전락할 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부모에게 항상 비교당하는 아이는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네 형은 너보다 훨씬 더 잘했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 가정에서 이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의 영혼은 뒤틀릴 수밖에 없다. 효율적인 동기부여 수단이라며 보너스를 빌미로 공격적인 비교를 당하는 직원의 영혼도 다르지 않다. 아이든 어른이든 비교를 당하면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런데 아이의 경우 부모의 잘못이 인정되는 반면 왜 기업은 비교를 효율적인 직원 관리 수단이라며 자랑스레 떠들어댈까?

 인간에게 심리적 상처를 안기는 방식으로 동기부여를 하는, 아니 직원을 지배하는 집단 어리석음 탓에 결국 참상이 빚어진다.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가 해마다 증가한다.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며 실수와 처벌을 두려워하고 그 중압감에 괴로워하는 번아웃 증후군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매년 급격하게 늘어난다.


7) 집단 어리석음

우리 대다수는 맹수처럼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타인에게 사기나 치는 악당이 아니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 점수를 구걸할 뿐이다. 우리는 집단 어리석음의 포로가 되었다.

집단 어리석음은 집단 지성으로 변해야 한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악당뿐 아니라 어리석음과도 싸워야 한다.


8) 선의의 경쟁 vs 무한 경쟁

선의의 경쟁에서는 더 발전하기 위해 자신의 실력을 측정한다.

무한 경쟁에서는 무조건 이기려 한다.

선의의 경쟁은 서로를 북돋워가며 아름다운 승부를 펼친다.

무한 경쟁은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선의의 경쟁은 '아레테', 즉 최고의 경지, 퍼스트클래스의 갈망을 담아낸다. 선의의 경쟁은 우리의 심장을 따뜻하게 채운다. "오늘 우리가 훌륭한 경기를 펼쳐서 쉽게 이기긴 했는데, 상대 팀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 아쉽네. 함께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더라면 더 멋졌을 텐데."

 무한 경쟁은 구체적으로 현재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지금 당장, 이번 분기만큼은 꼭 목표 실적을 달성해야만 한다. 방법은 아무래도 좋다. "아름다운 경기가 중요한 게 아냐. 우리는 반드시 8강에 올라야 해, 왜 그렇게 형편없는  경기를 하느냐는 비판은 그냥 무시해. 무조건 결승에 오르면 돼. 그게 전부야.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해!"

선의의 경쟁은 실력을 끌어올려 챔피언다운 역량을 갖추려는 의지를 가진다. 무한 경쟁은 반드시 상대방을 꺾고 우승컵을 차지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조직을 스마트하게 만들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


1) 대기행렬 공식

계산대 대기 줄의 평균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계산원의 업무 부담에 따라 달라진다. 이 관계를 표현한 것이 대기행렬 공식이다.


계산대 앞의 예상 손님 수 = 계산원 부담 / (1-계산원 부담)

인력 활용도 60%인 경우 : 0.60 / (1-0.60) = 0.60 / 0.40 = 1.50. 0.60 x 1.50 = 0.9

인력 활용도 85%인 경우 : 0.85 / (1-0.85) = 0.85 / 0.15 = 5.60. 0.85 x 5.6 = 4.81

인력 활용도 95%인 경우 : 0.95 / (1-0.95) = 0.95 / 0.05 = 19.0. 0.95 x 19 = 18.05


대기행렬은 실수를 만든다.

혼란 상황에서는 당연히 실수 발생률이 높아진다. 인력 활용도 100% 이상의 압박에 시달리는 사람은 어떻게든 일거리를 줄이려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실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일정은 지연되고 품질 관리 역시 허술해지며 안전 수칙은 무시되기 일쑤다. 요컨대 상품에 숱한 결함이 생겨난다. 신뢰가 사라지고 오해가 빚어지며 고객의 불평을 달래느라 시간이 허비되는 등 무의미한 추가 업무가 수없이 생겨난다. 20%, 30% 초과 근무로도 부족해 오로지 마감이 임박한 일만 처리하게 된다. 최소한 마감은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행렬은 긴박하지 않은 모든 일을 뒤로 미뤄버린다.


혼란은 '분위기'와 지속성, 시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을 짓눌러버리고, 결국 서서히 모든 것을 질식시킨다. 문제는 갈수록 커지기만 한다. 최고 경영진은 수차례 회의를 열어 제발 지속적으로 관리할 사안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 경고 역시 시간을 잡아먹지만 모든 것이 급한 탓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최고 경영진은 다시금 압력을 행사해 급한 일을 더 늘려놓는다.


"과중한 부담 아래 집단은 노이로제에 걸린다. 과중한 부담에 시달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함께 곤경으로 끌어들인다. 어리석음이 전염병처럼 퍼진다."


2) 부모 소외 증후군 & 인간 소외 증후군

'부모 소외 증후군(PAS, Parental Alienation Syndrome)'을 들어본 적 있는가? 통계에 따르면 떨어져 사는 아버지나 어머니와 1년 이상 연락을 지속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서로 소외되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이 멀어지는 것이다. 아이가 아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면,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언짢아진다. 아이는 어머니의 이런 기분을 곧 알아차리거나 직접 듣는다. 그러면 아이는 1인 2역을 연기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몇 달 동안 이런 연기를 하며 계속해서 정신적 부담을 받는다. 그러다 점차 마음이 멀어지고 서서히 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게 된다. 앞서 통계가 밝힌 바대로, 이런 관계는 평균 1년 이상 지속되지 못한다.


부모 소외 증후군은 얼마든지 확대 적용할 수 있다.

무조건적인 업무 강도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시스템은 뻔뻔하게 모든 신경을 자신에게 집중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이런 요구는 결국 '인생 소외 증후군(Lift Alienation Syndrome)'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마치 제시간에 정확히 퇴근하려 할 때 듣게 되는 빈정거림과 같은 것이다. 심지어 아들 생일이라고 양해를 구하며 정시에 퇴근하는 경우에도 말이다. 아마도 일찍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사람은 동료의 질투심을 자극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이유로 업무와 관련해서는 모두가 가능한 한 사적인 일을 감추려 한다. 부모 소외 증후군 증상을 가진 아이가 어머니 앞에서 아버지를 부정하듯, 우리는 업무 앞에서 사생활을 감추기 시작한다. 아이가 아버지의 좋은 점을 애써 깎아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적인 일상에서도 업무 처리를 한다고 부풀려 말한다.


3) 카이젠 _ 지속적인 업무 환경 개선을 통한 경영 효율화

경영진은 늘 새로운 개선책, 특단의 해결책을 찾으려 회의를 소집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흐름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나는 '개선한다'는 뜻의 일본어 '카이젠*'에 주목했다. 위키피디아에 '카이젠(Kaizen)'을 검색하면 카이젠 혁신 법인 '3무 개선' 원칙이 나온다.


* 카이젠 : 지속적인 업무 환경 개선을 통해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하자는 개념이다. 일본의 도요타(Toyota) 기업이 도입해 세계적인 반향을 이끌어냈다.


- 낭비하지 말라! 무다

- 직원과 기계에 과중한 부담을 주지 말라! 무리

- 업무 처리 과정의 불규칙함, 불균일함을 피하라! 무라


서구의 기업은 낭비되는 부분을 철저하게 따져 아기는 것만을 효율적인 경영이라 여겼다. 그러나 모든 것을 줄이거나 절약하는 것만이 능사일 수는 없다. 새로운 효율 경영 원리로 직원과 기계에 '무리'를 없애는 과부하 줄이기를 강조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오로지 '무다 줄이기'에만 주목하고 이를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도처에 과부하가 걸려 불규칙한 생산 공정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4) 북 스마트 vs 스트리트 스마트

이성 대 교활함. 영어에는 '북 스마트(Book Smart)'라는 표현이 있다. '책을 통해 터득한 스마트함'이라는 뜻이다. '북 스마트'는 흔히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와 대비를 이룬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북 스마트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고 싶어 한다. 반면, 스트리트 스마트는 거리에서 주먹다짐을 벌이며 어떤 싸움 방식이 유리한지를 터득한 교활한 건달이다. 스트리트 스마트는 위기 순간에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생존 기술로 무장한 스마트함이다. 북 스마트는 모든 것을 이성으로 해결하려 노력하는 반면, 스트리트 스마트는 싸움에서 민첩한 본능을 자랑한다.

 온라인 사전 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는 스트리트 스마트를 이렇게 정의한다. "다양한 상식으로 무장한, 세상살이 방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알고 주변의 모든 그룹을 꿰뚫어 보며 어떤 상황에도 적절히 대응할 줄 안다. 이런 사람은 거리와 빈민가 그 어디에서라도 어리석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으며, 항상 정확한 결정을 내리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며, 독립적인 태도를 보인다. 스트리트 스마트는 고집을 부리지 않으며, 모든 바보 같은 허튼소리를 귀담아듣고, 또 이해할 줄도 안다."

 이 설명이야말로 진짜 스트리트 스마트가 작성한 것이리라, 그렇지 않은가?

스트리트 스마트는 북 스마트를 가소롭게 여긴다. 특히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북 스마트가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뽐내면 스트리트 스마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코웃음부터 친다.


5) 퍼스트클래스 vs 세컨드클래스 vs 서드클래스

영어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퍼스트클래스는 퍼스트클래스를, 세컨드클래스는 서드클래스를 고용한다.(First class hires first class, second class hires third class.)

 최고와 이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 존재한다. 최고는 천재적으로 단순하게 탁월한 것을 창조하려는 목표를 추구한다. 그리고 그에 알맞은 방법을 찾는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끈질기게 목표를 달성하려 노력한다. 연습을 거듭하며 진땀을 흘린다. 반면 이류의 북 스마트는 좌우를 살피기 바쁘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해가며 '이대로 좋은지' 전전긍긍한다. 나는 의무를 다한 것일까? 다른 사람은 뭘 할까? 그들이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나면 어쩌지? 1등은 누구일까? 나는 평균 이상인가? 이류의 스트리트 스마트는 이런 생각도 한다. 지금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뭘까? 당장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퍼스트클래스의 절대적인 관점과 세컨드클래스의 상대적인 관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집단에서 이류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이류의 사고방식이 그 집단을 지배한다. 이류는 공동의 목표를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업무만 처리하려 든다. 최고가 이류를 막지 못해 집단 어리석음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퍼스트클래스는 절대적 기준을, 세컨드 클래스는 상대적 기준을 적용한다.


세컨드클래스인 북 스마트는 항상 중간치에 만족하며, 이 정도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실력을 갖췄다고 믿는다. 또한 진짜 실력자로 행세할 보증, 즉 공인 도장이 찍힌 보증을 얻어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신조는 이렇다. "나는 대학 졸업장을 가졌다, 그러므로 나는 실력자다!"


세컨드클래스인 스트리트 스마트는 그저 졸업장이나 최종적인 성공만 원한다. 이들은 매우 목적 지향적이며 실용적이다. 오로지 사안을 효율적으로 '장악'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진다. 스트리트 스마트는 창의적이며, 효율성 또한 효용의 대가다. 이들은 필요한 경우 또는 흥미가 없는 일 등 아무튼 틈만 보이면 거침없이 '꼼수'를 써가며 상대를 속인다. 그건 곤경에 빠져야만 속임수를 쓰는 세컨드클래스 북 스마트와는 다르다.

최고를 꾸며내거나 조작하면 절대성이 위협을 받는 탓에 퍼스트 클래스는 절대 속이는 일이 없다.


대개 집단에 몇 명뿐인 퍼스트클래스는 수많은 북 스마트(점수만을 위해 일하는 무리)와 스트리트 스마트(이득만 노리는 무리) 가운데서 부대끼느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소수파로 내몰린 퍼스트클래스는 탁월함, 걸출함 그리고 천재적인 단순함이라는 문제에 대해 타인의 관심을 유도하지 못한다. 그런 것에 점수란 없으니까!

 항상 다른 것이 문제의 중심을 차지한다. 회장은 실적과 열의와 근무시간과 업무 집중도를 따져가며 늘 다른 부서와 비교해 성공 정도를 가늠하고 경쟁 업체와 비교해 판단을 내린다. 경영자는 통상적으로 거의 항상 거의 항상 경쟁 상대보다 한 걸음 더 앞서 가기만을 요구한다. 이런 상대적인 관점이 장기적으로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따위의 질문은 깨끗이 무시된다. 이런 현실에서 승리는 십중팔구 세컨드클래스의 몫이다. 최고의 스트리트 스마트가 경영진의 다수를 차지하는 놀라운 상황은 이렇게 해서 벌어진다.


위대한 신전을 지을 탁월한 능력을 갖춘 수도사는 매우 많았다. 하지만 단 한 명이 성인이라는 기둥만으로 신전이 세워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탁월함이 카리스마의 빛을 발휘해야만 한다. 즉 진정한 퍼스트클래스라면 그에 맞는 스트리트 스마트의 자질도 갖추어야 한다.


 퍼스트클래스는 주의력을 키우고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 매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퍼스트클래스는 자발적으로 반응을 살피며, 고객과 시장,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 '최고의 걸작'과 장인의 솜씨를 갖추기 위해 활발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토론을 벌인다. 퍼스트클래스는 어떤 경우에도 코끼리 곁에서 전체를 보지 못하는 장님처럼 우두커니 서있지 않는다.

 세컨드클래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좋은 점만 찾으려 든다. 칭찬이나 보상에만 목을 맨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하려면 세컨드클래스에게 커다란 압력을 가해야만 한다. 그러나 세컨드클래스는 거울 앞에서 말끝을 흐려가며 알아듣지 못할 사과의 말만 중얼거리고, 모든 문제를 두고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지경으로 상대적인 비교만 되풀이하거나, 거울이 이상하다거나 조명이 너무 강하다고 트집을 잡는다. 이런 부분에서 세컨드클래스와 퍼스트클래스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스트리트 스마트가 일상의 비즈니스를 장악한 기업, 즉 모든 것을 숫자와 도표만으로 소통하는, 집단 어리석음에 사로잡힌 기업은 계속해서 모든 탁월함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6) 자원봉사자 같은 기업

나도 꿈이 하나 있다. 마틴 루터 킹의 꿈에 견주기에는 너무나 소박하지만, 그래도 계기는 마련해줄 것이다. 바로 성탄절 바자회와 같은 기업을 꾸리는 것이다. 의아하겠지만 다음 설명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자원봉사자로 구성되는 단체나 조직을 경영하는 법을 다룬 책이나 이론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자원봉사자는 뭔가 도움을 주거나 어떤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말 그대로 자발적으로 찾아온다. 이들은 높은 목표를 갖고 있지만 이를 실현하라는 강압에는 질색을 한다. 조급하게 서두르며 압박을 가하면 자원봉사자는 봉사하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버린다. 이들은 여유롭게 일하고 싶어 한다. 일의 성과는 만족스러워야 하고,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기에 기쁨을 주어야 한다. 기회주의자는 자원봉사자 모임에 끼어들 수 없다. 꼼수란 없으며, 또 필요하지도 않다.


[책장을 덮으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정치질 한다. 줄 탄다.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퍼스트클래스가 아닌,

인맥으로 우위를 점하려 하는 세컨드클래스의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내가 올라갈 수 없으니 상대의 발목을 잡아 버리는 서드클래스는 논의할 필요도 없다.


정정당당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

나의 이익과 안위보다는, 집단의 미래를 생각하는 퍼스트클래스가 많아질수록

우리 조직의 미래를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흑등고래, 대왕고래는 바다 생태계에서 가장 큰 포유류에 속한다.

그들은 크릴새우,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산다.

경쟁자를 제거해 본인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맞게 생활해 갈 뿐이다.


범고래는 흑등고래나 대왕고래에 당할 수 없다.

그들의 목표는 흑등고래나 대왕고래 수를 줄이고

본인들이 바다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범고래는 체격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무리 생활을 하고,

흑등고래나 대왕고래의 새끼들을 공격한다.

미래의 경쟁자를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공격한다.


세컨드클래스인 범고래가

퍼스트클래스인 혹등고래나 대왕고래의 새끼를 사냥하는 것은

그 새끼 고래만이 본인들의 유일한 먹이이기 때문이 아니다.


퍼스트클래스를 제거해

세컨드클래스의 세상을 만들려는 욕심일 뿐이다.


세컨드클래스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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