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도 사람이다.
김웅 검사님.
아니 김웅 국회의원님의 ‘검사내전’을 읽었다.
검사의 이야기가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항상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니, 일단 행복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는 확신은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은 우리들의 마음가짐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재치와 유머를 통해, 삶의 교훈까지 이끌어내는 저자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내가 다짜고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분통 터지지 않느냐고 묻자 선배는 폭탄주를 한 잔 건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라는 것이었다. 나사못의 임무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를 걱정하기보다 자신이 맡은 철판을 꼭 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대한민국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벤츠 자동차를 살 때는 삼각별 엠블럼을 보고 사지만 실상 벤츠를 벤츠답게 해주는 것은 수천 개의 보이지 않는 나사못들 덕분이라고 했다.
병원장을 불구속으로 기소한 후 부장이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서류봉투 하나를 건네주며 방에 가서 읽어보라고 했다. 두둑한 대봉투를 열어보니 내가 그 병원을 수사하는 동안 자신에게 들어왔던 나에 대한 투서와 음해들이 담겨 있었다. 곤경에 처했을 때 가장 쉽고 효과적인 해결책은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모함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함은 터무니없을수록 효과적이다. 너무나도 단정적으로 써놔서 진짜 이런 음모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중 절반만 사실이더라도 내가 이리 쪼들리며 살지는 않을 텐데 하는 마음에 좀 아쉬웠다.
하나하나 읽다 보니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부장이 그동안 이 모든 음해와 모함을 듣고서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혼자서 그 외압들을 다 막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마법이 통하지 않자 부장까지도 음해한 모양이었다. 병원장을 구속해서 부장의 입장을 살려줬어야 하는데, 결국 마법사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정치와 권력의 힘은 성층권에서 행사되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비열하고 무서운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흔히 사람들은 여럿이 모이면 좀 더 나은 판단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집단지성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18급 100명이 머리를 짜낸다고 이창호 국수를 이기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여럿이 모일수록 그 집단이 빠진 오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오류에 빠진 사람이 같은 오류에 빠진 사람을 만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그 정도가 심해진 원인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바로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른들이 보인 행태 때문이다.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 편을 들어 조용히 끝내기를 강요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학생들은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문제는 강요된 피해자의 용서나 전학으로 해결되었다. 피해자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가장 간단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해자들은 사라졌고, 가해자들은 승리했으며, 학교폭력은 더욱 악랄해지고 한층 은밀해졌다. 아이들은 이제 남을 괴롭히지 않으면 언제 그 먹이사슬의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가장 약하고 낮은 학생들을 경쟁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피해를 입으면 입을 다무는 것이 더 큰 피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폭력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학교를 떠나는 것이었다. 학교도 사회도 인권전문가들도 모두 그것을 원했다.
피해자가 떠나면 학교는 평온을 찾았다고 믿지만, 그것은 피해자가 평생에 걸쳐지고 가야 하는 정신적 외상의 대가일 뿐이다.
소년 전담 검사를 하면서 나는 늘 피해자들에게 너는 소중하고 무엇보다 존엄하다고 말해주곤 했다. 그리고 가해자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고, 화해하거나 용서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피해를 당한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대개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존엄함과 권리를 포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존엄한 것은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말했다. “진정 용서하고 망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응징 혹은 정당한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죄인이 적절하게 징벌되고 나서야 나는 앞으로 움직일 수 있고, 그 모든 일과 작별할 수 있다.”
역사책을 보면서 늘 느끼는 건데, 바른말을 하는 자는 대개 죽는다. 충언은 몸에 해롭다. 왕의 몸이 아니라 충신의 몸에.
양념과 아부는 비슷하다. 재료가 좋으면 별로 필요 없다. 원물의 질이 떨어지니 양념으로 미각을 속이는 것이다. 게다가 양념과 아부는 한번 넣기 시작하면 점점 더 많이 들어간다. 물론 폭탄사에 들어가는 아부는 별로 해롭지 않다. 그게 거짓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프로선수가 “제 기록보다는 팀 성적이 우선입니다”라고 말하거나, 연예인이 “악플도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마음에 없는 소리지만 서로 알고 속아주는 것이다. 설마 정치인이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말한다고 사랑 고백받았다고 설레는 사람이 있겠는가.
의지력은 사다리 위에 올라간 사람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승리를 고취시키거나, 상대방을 몰아붙이며 대안 없이 비판할 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의지와 투혼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중략)
예상대로 등산을 하는데 다들 힘들어했다. 비까지 왔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산 서너 개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느 개놈이 이런 코스를 잡았느냐며 다들 찬사와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길 반복하다 보니 수석검사는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던 근육이 견디지 못했고 결국 퍼져버렸다. 나는 최대한 담담히 먹잇감을 향해 다가갔다.
“형님 일어나시죠.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수석검사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고,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악마처럼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형님,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의지력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수석검사는 어리둥절해하더니 한참 후에야 예전에 자기가 한 말이라는 것은 깨닫고 웃기 시작했다. 그 후 내 별명은 ‘또라이’에서 ‘집요한 또라이’로 바뀌었다. 좋은 의미인 것 같았다.
사람들이 실은 알고 있으면서도 간과하는 것은, 법은 불구이자 어느 하나만이 옳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분쟁 해결 방법이라는 점이다. 일도양단과 이분법적인 해결 이외에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법은 아직도 유일한 분쟁 해결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에 대한 의문이나 반성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헤겔이 말했듯이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그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가장 적게 인식된다.
금주법은 선의에서 시작되었다. 술이 사라지면 정치도 깨끗해지고, 폭력도 사라지고, 사회가 다시 도덕적으로 바뀔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미국을 정화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금주법은 예상치 못한 불치병을 낳았다. 마피아가 창궐하게 된 것이다. 금주법이 시행되자 마피아들이 쓰나미처럼 미국 전역을 휩쓸었다. 원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활동하던 마피아들은 1860년대에 기후가 비슷한 뉴올리언스로 이주한 뒤 매춘과 술집 운영으로 돈을 벌어 세력을 확장했다. 경찰서장을 살해하는 등 악명을 떨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던 마피아들은 금주법이 시행되지 미국 전역으로 퍼져갔다. 금주법이 쓸어버린 북부 대도시의 주류시장을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장악한 것이다. 밀주 사업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된 마피아들은 그 자금을 바탕으로 몸집을 불렸고 무서운 기세로 시카고, 뉴욕 등 대도시를 접수했다.
술이 늘 사고를 치는 건 아니었지만 마피아는 빠짐없이 사고를 쳤다. 사실 술은 사고를 친 적이 없었다. 술을 마신 사람이 사고를 친 것일 뿐. 결국 음주법은 술의 유통과 음주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을 온갖 불법과 조직범죄의 온상으로 탈바꿈시켰다.
갑자기 금주법 이야기를 꺼낸 것은 현상과 원인에 대한 판단, 그리고 그에 대한 처방을 잘못 내릴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밤중에 나방이 들끓을 때는 살충제를 뿌리는 것보다 불을 끄는 것이 낫다. 살충제를 아무리 뿌려도 불빛이 있는 한 나방이 몰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살충제에 의존하다간 나방은 못 잡고 사람만 잡을 수도 있다. 불을 끄면 전기도 아끼고 나방 꼴도 안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꾼은 조직폭력배와 유사하다. 혼자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늘 떼로 몰려다니는데, 고향이나 출신지에 따라 모이며 주로 검은 차나 승합차를 타고 다닌다. 조직의 이름은 주로 모이는 곳이나 오야지가 사는 동네, 그게 아니면 오야지의 이름이나 별칭을 따서 만든다. 하는 일은 주로 모여서 같이 밥을 먹는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대개 ‘식구’라고 부른다. 주변에서 계보를 만들어주는데 당사자는 그 계파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나 사실인 경우가 많다. 요즘에는 계파 구분도 모호해져서 ‘범00’ 혹은 ‘친00’으로 불린다. 이권 앞에서 그나마 의리도 사라진 거다. 그들은 서열이 확실하고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벌이는 좋고 세금은 안 낸다. 또 갈등과 분쟁을 사랑하기에 늘 그런 자리에 나타나며 주변 사람들의 염원과 달리 그런 상황을 키우는 데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범죄를 저지르면 늘 자신은 모르는 일이며 아랫사람이 몰래한 짓이라고 변명하는 것도 조폭과 다를 바 없다. 교도소를 다녀와야 대접을 받고 난동을 부려야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다. 자주는 아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완력과 힘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종교 행사에도 자주 참석하고 영화나 드라마에도 자주 출몰한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국민들은 욕하면서 늘 열심히 본다. 막장드라마 시청률이 높은 것과 유사하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정치꾼과 달리 조폭은 암묵적인 정년도 있고 여자들은 가담하지 않는다. 정치는 세상을 좋게 만드는 데 유용하지 않은 도구이지만,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기에 그보다 더 효율적인 도구도 없다.
딱딱한 검사의 일상을 그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검사를 하며 겪은 저자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법률가가 쓴 책이지만, 그 어떤 책 보다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검사다’라는 느낌보다는, ‘검사도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특히, 어려운 상황을 마무리하면서도 저자 특유의 유머와 해학을 통해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불의를 참아야 하는 상황, 납득되지 않는 상황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그런 상황을 대했는가? ‘이게 나라냐? 회사냐?’며 한탄을 했다면, 저자는 달랐다.
‘또라이’에서 ‘집요한 또라이’가 되기까지, 본인이 생각한 대로 행동했다. 본인이 옳다고 여긴 것은 끝까지 실현했다. 공무원직을 걸고 생활해야 하는 상황, 눈 밖에 나면 승진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저자는 본인의 가치관대로 업무에 임했다. 조직을 대했다.
불의를 보고도 나의 회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가름했던 나의 미성숙함. 어떤 업무가 새로 시작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조직과 고객을 위하는 것일까?’를 고민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는 것이 고생을 덜 할 수 있을까? 평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는 고민을 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게 된다.
당장 몇 시간 뒤면, 저자는 대한민국 21대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게 된다. 사법부에서 입법부로 자리를 옮긴 저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집요하게 실천하는 그 모습을 실천할 것이라 믿는다. 지금까지는 대한민국의 정의를 위해 일했다면, 지금부터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일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에는 국회의원을 하면서 겪은 일에 대해서도 좋은 책을 내어주실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