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
책을 읽다 보니,
글을 쓰게 된다.
좋은 문구가 있으면,
적어두게 된다.
나중에 나만의 글, 나만의 책에
그 좋은 문구를 인용하기 위해
하나씩 모아두게 된다.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책이 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그중 가장 검증된 책이 아닐까 싶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찾은
소중한 문구들을 적어본다.
흔히 글쓰기도 방법을 배우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방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몸으로 익히고 습관을 들여야 잘 쓸 수 있다. 글쓰기는 그런 면에서 자동차 운전과 비슷하다.
무엇이든 잘 모르면 겁이 난다. 처음에 초보가 아니었던 운전자는 없다. 솜씨 좋은 운전자들도 교습소에서 처음 핸들을 잡았을 때 느꼈던 감정, 첫 도로 연수를 나갔을 때 들었던 두려움을 기억할 것이다. 사람들은 원고지나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두려움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자동차 페달과 변속기 손잡이가 그런 것처럼, 자꾸 글을 쓰다 보면 그대에게도 컴퓨터 키보드나 볼펜이 손가락처럼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올 겁니다.”
생각과 느낌을 소리로 표현하면 말이 되고 문자로 표현하면 글이 된다. 생각이 곧 말이고, 말이 곧 글이다. 생각과 감정, 말과 글은 하나로 얽혀 있다. 그렇지만 근본은 생각이다. 논증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다면 무엇보다 생각을 바르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먼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 기준을 바꾸고 감정에 휘둘려 논리의 일관성을 깨뜨리면 산문을 멋지게 쓸 수 없다.
우리는 오랜 세월 논증 없는 주장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살았다. 사실과 논리에 입각해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목소리 크고 힘센 쪽이 이기는 현실에 익숙하다. 권력자들은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말로 합당한 논증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핍박했다. 시민들은 정책의 타당성을 논증하려고 애쓰는 대통령을 ‘말이 많다’고 비난했다. 부모들은 꼬박꼬박 어른한테 말대꾸한다며 논리적인 주장을 펴는 자녀를 혼냈다. 교사와 교수는 질문하는 학생을 귀찮게 여기거나 구박했다. 심지어는 국가 정책을 다루는 정당들까지도 사실과 논리와 이성적 추론이 아니라 대중의 감정에 편승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논리적인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재주만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논리의 완벽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집, 미움받기를 겁내지 않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글쓰기에는 철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
논리 글쓰기의 첫걸음은 텍스트 요약이다. 그런데 이 첫걸음을 똑바로 내딛으려면 텍스트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독해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쓰고 싶으면 먼저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텍스트를 읽지 않고 독해력을 키우는 방법은 없다. 글쓰기 첫 번째 철칙은 바로 이 단순한 사실에서 나온다.
많이 읽지 않으면 잘 쓸 수 없다. 많이 읽을수록 더 잘 쓸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정보와 논리 중에 스스로 창조한 것이 얼마나 될까? 별로 많지 않다. 사실은 거의 없다. 대부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책, 방송, 신문, 인터넷, 대화를 통해 얻는다. 정보와 논리만 그런 게 아니다. 그것을 담은 어휘와 문장도 마찬가지다. 지식과 정보, 논리 구사력, 자료 독해 능력, 어휘와 문장, 논리적 글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는 남한테서 받는다.
그 모든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경로는 책이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아는 것이 많아진다. 아는 게 많을수록 텍스트를 빠르게 독해할 수 있고 정확하게 요약할 수 있다. 텍스트를 독해하고 요약하는 데 능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는다 그러면 글을 잘 쓸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그래서 많이 읽지 않고는 잘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독서광이 되어야 한다. 책을 읽지 않고 타고난 재주만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없다. 글 쓰는 기술만 공부해서 잘 쓰는 사람도 물론 없다.
글쓰기 근육이 부실한 사람은 무엇보다 첫 문장을 쓰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중략)
지금 쓴다면 첫 문장을 아주 간단하게 쓸 것이다.
우리는 대학생 병영집체훈련을 단호히 거부한다.
선언문에서 하려던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렇게 쓰는 게 뭐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주장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문자로 옮기면 된다. 블로그에 정치, 영화, 축구에 대한 글을 쓸 때도 첫 문장은 이렇게 쓰는 게 좋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단문으로 일단 내지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일단 내지르고 난 다음에 차분히 설명하면 된다. 첫 문장 쓰기는 어렵지 않다.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할 뿐이다.
가장 좋은 독서법은 아이들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책을 읽게 하는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고전 100선’이니 ‘00 추천 청소년 필독서 50선’이니 하는 광고에 현혹되지 마시라. ‘어린이 논어’니, ‘어린이 사서삼경’이니, ‘청소년용 그리스. 로마 신화’니 하는 책을 재미있게 읽을 아이는 거의 없다. 어린이 독서는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독서를 생활 습관으로 만들고 자신이 읽은 것을 활용해 무엇이든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면 된다.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독서 교육의 목표는 아니다. 재미를 붙이기만 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나름의 독서 이력을 만들어간다. 만화, 판타지 소설, 무협소설, 추리소설, 역사소설, 잡지, 그 무엇이든 괜찮다.
글은 단문이 좋다. 문학작품도 그렇지만 논리 글도 마찬가지다. 단문은 그냥 짧은 문장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길어도 주어와 술어가 하나씩만 있으면 단문이다. 문장 하나에 뜻을 하나만 담으면 저절로 단문이 된다. 주어와 술어가 둘이 넘는 문장을 복문이라고 한다. 복문은 무엇인가 강조하고 싶을 때, 단문으로는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 쓰는 게 좋다. 다시 노래와 비교해보자. 가수가 고음을 시원하게 잘 내면 좋다. 그런데 어떤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음으로만 부르면 어떨까? 청중이 감탄할 수는 있지만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래는 높은음과 낮은음이 잘 어우러져야 제맛이다. 고음은 ‘클라이맥스’에 잠깐 나오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야 듣는 사람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복문을 쓰면 읽는 사람이 힘들다. 복문은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
글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실용적인 면에서든 윤리적인 면에서든, 읽는 사람에게 고통과 좌절감을 주는 글은 훌륭한 소통 수단이 될 수 없다. 타인에게 텍스트를 내놓을 때는 텍스트 자체만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글 쓰는 사람이 지녀야 할 마땅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런 자세를 유지하려면 지식과 전문성을 내보이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글을 잘 쓰려면 왜 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방법만 배운다고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재주가 아니라 삶으로 글을 쓴다고 말한다. 시사평론과 칼럼, 논술문과 생활 글은 더 그렇다. 은유와 상징이 아니라 사실과 논리로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필요하지만 기술만으로 잘 쓸 수는 없다. 잘 살아야 잘 쓸 수 있다. 살면서 얻는 감정과 생각이 내면에 쌓여 넘쳐흐르면 저절로 글이 된다. 그 감정과 생각이 공감을 얻을 경우 짧은 글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글을 쓰면 쓸수록 글쓰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브런치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글쓰기에 대한 2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나의 글쓰기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수영을 배울 때, 발전이 없는 것 같아 수영에 흥미를 잃어가는 시기를 겪고 나면 어느새 실력이 향상된 것과 비슷했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왜 이렇게 속도가 안나지?’라고 느끼지만, 이동시간은 더 단축되어 가는 것과도 비슷하다.
둘째. 글을 잘 쓰는 방법만 익히는 것은 인스턴트 음식과 같다는 것이다. 글에는 글쓴이의 인생이 녹아있다. 그렇기에 화려한 글솜씨로 꾸며낸 글은, 글쓴이의 삶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적어낸 글을 당해낼 수 없다.
결국 글 잘 쓰는 쉬운 방법을 알고자 펼쳐본 이 책은, 꾸준하게 나의 인생을 걸어가라고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