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는 편집이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읽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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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창의성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김정운 교수님 생각이 났다. 김정운 교수님이 생각하는 창의성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에디톨로지’를 읽었다.
지식의 데이터베이스와 이것들을 연결해 주는 것이 창의성임을 알려준, Editology의 내용들을 적어본다.
정보가 부족한 세상이 아니다. 정보는 넘쳐난다. 정보와 정보를 엮어 어떠한 지식을 편집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 세상이다. 편집의 시대에는 지식인이나 천재의 개념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아는 사람이 지식인이었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정보를 외우고 있으면 천재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지식인은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엮어내는 사람’이다. 천재는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남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사람’이다.
마우스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던 스탠퍼드 연구센터는 마우스의 활용 분야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수년 후, 고작 4만 달러를 받고 애플 사에 마우스의 특허권을 넘겨버린다. 잡스가 위대한 것은, 아무도 몰랐던 그 엄청난 발명품의 진가를 알아보았다는 거다.
마우스를 이용한 ‘그래피 유저 인터페이스(graphical user interface)’를 통해 이제 보통 사람들도 천재처럼 날아다니는 생각을 잡아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관심을 클릭하면 바로 링크된다. 귀찮게 논문의 각주, 미주의 번호를 일일이 찾아 읽지 않아도 된다. 클릭하면 다 나온다. 드디어 하이퍼텍스트의 시대, 즉 탈텍스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적으로 마우스 덕분이다.
남의 이론을 많이,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편집할 수 있는 카드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실력이 있다’는 것은 편집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는 뜻이다. 이렇게 카드로 축적된, 편집 가능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database)라고 한다. 이 같은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가 오늘날에는 너무 쉬워졌다. 예전에는 일일이 책을 읽으며 옮겨 적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저 검색하고 ‘Ctrl+C’ ‘Ctrl+V’하면 된다. 이제 실력은 ‘잘 찾아내는 것(know-where)’에 있다. ‘검색’이 곧 실력이라는 뜻이다.
독일에서 배운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이렇다. ‘공부는 데이터베이스(database)’ 관리다.’
내 이야기가 가능하려면 사용 가능한 데이터가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자유롭게 연결할 때 얻어지는 메타언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부다. 내가 축적한 데이터를 꼭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 데이터들에 관한 메타언어를 익히게 되면 데이터베이스의 일차적 목적은 달성된 거다. 이를 나는 ‘커닝 페이퍼 효과’라고 부른다.
커닝 페이퍼를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그 내용을 다 숙지하게 된다. 정작 커닝 페이퍼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다.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며 나름의 개념 체계를 만들다 보면, 어느새 전혀 다른 차원의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시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시간을 ‘분절화’한다. 시간을 숫자로, 마치 셀 수 있는 물체처럼 만든 것이다. 일단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갠다.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된다. 그리고 365일이 모여 1년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1년이 매번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아니, 반복된다고 믿는 것이다. 반복되는 것은 하나도 안 무섭다.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 해가 잘못되면 그다음 해에 잘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가 오는 것을 매번 그렇게 축하하며 반기는 것이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그냥 오르는 게 아니다. 시선을 소유하고 싶어서다.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그 절대적 시선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다. 더 정확히 설명하면, 세상을 전부 소유하는 것 같은 그 시선에 대한 욕망 때문에 산에 오르는 거다. 물론 이는 ‘세속적 권력’과는 질적으로 다른 ‘미학적 권력’이다. 칸트는 이를 ‘장엄의 미학(Asthetik des Erhabenen)’이라고 정의한다.
천장의 높이면 조금 더 높여도 창조적이 된다. 미네소타 대학의 조안 마이어스-레비(Joan Meyers-Levy) 교수는 천장 높이를 30센티미터 높일 때마다 사람들의 문제 해결 능력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공간의 형태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천장이 높고, 넓은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관점이 거시적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 반면 천장이 낮고, 좁은 공간에서는 사물을 꼼꼼하게 바라보게 되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의 애플이나 구굴이 사무 공간을 놀이터처럼 바꾸겠다는 것도 마찬가지 발상이다. 가장 창조적인 행위는 놀이다. 놀이터처럼 사무 공간도 즐거워야 창조적 사고가 가능해진다. 개도 데리고 출근하고, 바닥에서 뒹굴거리거나, 사무실 벽에 공도 차면서 일할 수 있어야 남들 안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다. 똑같은 책상 쭉 늘어놓고, 윗사람은 창가에 앉아 부하직원들 뒤통수나 감시하는 방식으로는 현상 유지나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백화점(department store)’는 ‘부서’가 나뉘어 있는 매장을 뜻한다. 즉 상품의 분류와 전시가 체계적을 되어 있는 매장을 뜻한다.
백화점이 생기기 전, 물건을 사려면 제각각 흩어져 있는 가게들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했다. 구매 방식도 지금과 달랐다. 손님은 절대 왕이 아니었다. 주인이 왕이었다. 사고 싶은 물건을 주인에게 말하면, 주인이 창고로 가 그 물건을 찾아왔다. 묽건이 맘에 안 들어도 불평하기 힘들었다. 못된 주인을 만나면 아주 구걸하듯 물건을 사야 했다.
백화점은 달랐다. 일단 구입 가능한 물건이 한 건물에 모두 들어와 있다. 그리고 아주 잘 분류되어 있다. 물건의 상위 카테고리, 즉 남성복, 여성복, 귀금속 등과 같은 상품 분류만 잘 알고 있으면 바로 해당 매장을 찾아갈 수 있다.
백화점이 가져온 문화 충격은 진열과 전시 방식에 있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백화점의 문화 충격은 ‘상품 분류’에 대한 충격이었다.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물건이 이토록 분명하고도 간결하게 공간적으로 분류되어 자리 잡고 있음에 감동했다. 산업사회가 가져온 대량생산과 그 기초가 되는 표준화의 결과였다.
사회적 경력. 학력을 제외하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학력. 경력 없이도 자신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깊은 자기 성찰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명함을 내보이지 않고 자신을 얼마나 자세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서술할 수 있는가가 진정한 성공의 기준이다.
게이츠의 이야기는 백 번 옳다. 훌륭하다. 그리고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도 안 재미있다는 거다. 별로 흥미롭지 않다. 안 들어도 다 아는 이야기 같다. 반면 기부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관해 어떠한 이야기도 한 적 없는 잡스의 연설은 뭔가 감동이 있다. 울림이 크다. 듣고 싶어 진다.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
‘계몽’이다. 게이츠는 청중 스스로 연설의 의미를 편집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일방적으로 완성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재미없는 거다.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내러티브는 진리를 강요할 뿐, 일리의 해석학이 빠져 있다. 반면 잡스의 내러티브는 상호작용적이다. 편집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잡스의 정서적. 모순적. 자극적 내러티브는 듣는 이들의 적극적인 해석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가 갖는 의미를 주체적으로 편집해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낼 때만 의미 있다. 남이 만들어주는 의미는 전혀 의미 없다. 진리를 계몽하던 시대는 지났다. 듣는 이로 하여금 ‘주체적 편집의 기회’를 제공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목차와 찾아보기는 주체적 독서를 위한 것이다. ‘주체적 책 읽기’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목적이 분명함을 뜻한다. 주체적 책 읽기는 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책을 들춰 목차를 볼 때, 내 눈길을 끄는 개념들이 있다면 그 책을 선택하게 된다. 책 내용을 대충 훑어볼 때, 흥미로운 개념이 나타나면 그 부분을 잠시 읽게 된다. 그리고 저자 이력이나 찾아보기, 참고문헌 목록을 보며 책의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
내게 흥미로운 내용은 이미 익숙한 개념과 책에 담긴 개념의 교차 비교 과정에서 확인된다. 독서는 내가 가진 개념과 저자의 개념이 편집되는 에디톨로지 과정이다. 그래야만 저자의 생각이 내 생각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절대 아니다.
‘책인사의 책 추천’ 매거진은 ‘데이터베이스’다.
김정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데이터베이스가 모이면, 창의적인 결합이 가능할 것이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기존의 것들이 모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선은 많이 읽고, 많이 적어야겠다. 많이 읽을수록, 나에게 맞는 좋은 문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적어놓은 글들이 모여 나만의 창조적인 이론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창조는 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