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인사 Oct 02. 2019

나만의 공간, 나만의 생각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김정운 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목의 베스트셀러로 알게 된 김정운 교수님의 신간.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저자 _ 김정운, 출판사 _ 북이십일

나는 김정운 교수님이 또 다른 사고(?)를 치실 것이라 생각했다.

역시 교수님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명지대학교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오신 후 결국 여수 앞 섬까지 가셨다.

바닷가 작업실 이름도 아주 멋지다. 미역창고(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


김정운 교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시대에 대한 통찰에서 얻은 몇 가지 소중한 안목을 적어본다.


1) 슈펠리움 (Spielraum, 주체적 공간)

독일어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공간'이라 번역할 수 있다.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실제 '놀이하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아이들은 부모나 형제들로부터 독립된 '자기 방'이 생기면 너무 행복해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자기 방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한다. 딱히 숨길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타인들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슈필라움'을 지키기 위해서다.


2) 배신

타인은 언제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를 되뇌어야 배신당하지 않는다. 타인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은 항상 자기 생각만을 강요한다. 그리고 나중에 꼭 그런다. "정말 믿었던 이가 등에 칼을 꽂았다"고. 그러나 '등에 칼을 꽂는다'는 표현도 함부로 쓰는 거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독일관 사령관이었던 에리히루덴도르프는 "전쟁에서 병사들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는데 배후의 사회민주주의자, 유대인들이 병사들 등에 칼을 꽂았다"고 불평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 '등에 칼 꽂기'를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해 적극 퍼뜨렸다. '등에 칼 꽂기'는 의도가 악하기 그지없는 참으로 고약한 표현이다.

타인을 이해하려면 일단 급하지 않아야 한다.


3) 관음증과 노출증

온 사회가 관음증이다. 소셜 미디어는 내 스마트 폰에 저장된 전화번호의 주인들에게 어제저녁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시로 알려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시시콜콜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다. 노출증이다. 관심이 전혀 없는데도 자꾸 보라고 한다. 결국 훔쳐보고야 만다. 관음증과 노출증은 동전의 양면이다. TV 프로그램은 '리얼리티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온통 관음증을 자극하는 것들 뿐이다.


시간이 곧 마음이다. 내 시선이 내 생각과 관심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 눈의 흰자위가 그토록 큰 이유는 시선의 방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흰자위와 대비되어 시선의 방향이 명확해지는 검은 눈동자를 통해 인간은 타인과 대상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함께 보기(joint-attention)'다.


'함께 보기'가 가능하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먼저 봐야 한다. 모두가 따라 보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새로운 것, 낯선 것을 용기 있기 먼저 보며 '함께 보기'를 요청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리더'다. 남들보다 먼저 보는 리더의 새로운 시선이 '공유될 때 사회는 발전하고 구성원들은 성장한다. 공유할 수 있는 가치의 부재가 '관음 사회'를 만든다.


'훔쳐보기'는 '함께 보기'가 어려울 때 흥행한다.


4) 조급함

'물때'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다. 살다 보면 '물때'와 같은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았음을 깨닫게 된다. 물이 들 때가 있고, 나갈 때가 있다. 잘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가 당연히 있다. 이 '물때'와 같은 시간마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조급함'이다. 항상 잘 되어야 하고, 안되면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조급함 때문에 참 많은 이가 불행해졌다.


5) 걱정

우리는 걱정거리를 빨래집게처럼 마냥 걸어놓고 산다. 빨래가 없는데도 도무지 걷어낼 생각이 없다.


6) 질투와 열등감

우리 인생이 자주 꼬이는 이유는 '질투'와 '열등감' 때문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질투가 외부를 향한다면 열등감은 우리 내부를 향해 있다.


7) Turn-Taking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서 주고받기(turn-taking)'다. 타인의 '순서(turn)'를 기다릴 수 있어야 진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인간의 의사소통 방식이 다른 포유류와 구별되는 것은 바로 이 '순서 주고받기' 때문이다. 엄마가 인형 뒤에 숨었다가 갑자기 '우르르까꿍'하며 나타나는 놀이는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문화에서 발견된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아기는 '내 순서'와 '타인의 순서'를 지키는 인간 소통의 가장 근본적인 규칙을 익힌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타인의 순서를 인정하고 기다릴 줄 알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방에서 '욱'하는 이유는 '성취'와 '경쟁'의 규칙들로만 지내온 세월 때문이다. 세계 10위권의 부유한 나라가 되었지만 의사소통의 가장 기본 규칙인 '순서 주고받기'는 여전히 무시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순서'를 빼앗긴 상대방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는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온 '순서 주고받기'라는 의사소통의 근본 규칙을 회복하지 않으면 이 분노의 악순환으로부터 결코 헤어날 수 없다. 조금만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알면 그렇게까지 '욱'할 일은 별로 없다.



본인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갖자. 그리고 기다려 주자. 자신을, 타인을. 천천히 배려해 주고, 각자의 공간을 인정해 줄 때 우리의 삶은 보다 풍성해질 것이라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