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사람들로부터 내 감정을 지키는 방법
숨 가쁘게 달려온 2019년도 어느새 채 한 달 정도가 남았다.
다사다난했던 2019년이 내 인생에서 크게 기억될 것 같은 이유는 '그분'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지나고 나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겠지만...)
마음이 힘들었던 7~8월에 읽은 책,
'상사는 내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다'를 오랜만에 다시 꺼내어 읽어보았다.
책 표지의 비 내리는 날 우산을 들고 있는 그림을 보면서, 이 책의 내용을 참으로 잘 표현해 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힘들었던 지난날 우산처럼 나를 지켜주었던 문구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사실 나에게 회사 생활보다 더 힘든 건 힘들다는 한마디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 경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믿었고,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상처 받았다. 나는 그렇게 집중하고 나의 온 힘을 다해 듣고 공감하고 위로하는데 그만큼, 아니 그의 반의반만큼도 나에게 해 주는 이가 없다고 여기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스트레스'라고 부르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나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사람 좋다'라고 쓰지만 사실 '이용하기 좋다'라고 바꿔 써도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라면 듣기 좋아야 할 말을 들을수록 기분 나빠지는 것이다. 어쩔 땐 기분 나쁘다는 내색을 하고 싶지만 소극적인 표현이라 알아듣는 이도 없다. 때로는 사람 좋다는 그 이미지에 스스로를 가두어 놓고 자신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을 어쩔 수 없이 참아 낸다. 교묘하게 포장된 상대방의 표현에 진짜 나를 가두어 버리고 또다시 좋은 사람이 돼 버리고 만다.
회사는 나의 기분을 살피지 않는다. 회사가 내 기분을 살피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기대할 곳이 아니다. 대신 지금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자. 바로 그곳, 거울 속에 내가, 하나하나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내가 있으니까.
불안감은 대체로 현재 상황에만 몰입한 나머지 그곳을 떠난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에 생긴다.
시작은 작은 행동 하나였다. 불안감에 짓눌려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대신 종이에 적는 순간부터 내 마음은 힘을 얻기 시작했다. 행동하면 불안감은 사라진다.
밤에 잠들기 전이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특히 더 무겁게 다가왔다. 구분하여 이름 붙여 본다면 잠들기 전에는 두려움, 깨어 있을 때는 불안감이었다. 둘 다 정체를 모르는 느낌이라는 점은 똑같다.
직장 생활 중에도 불안감은 때때로 나를 힘들게 했다. 매일 반복되는 두려움과 싸우면서 일을 했다. 두려움을 잊기 위해 일을 했다는 말이 맞겠다. 적어도 일을 하는 동안에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밀려오는 불안감은 한시도 일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난 이른바 '잘 나가고 싶어 환장한' 축에 속한 것처럼 보였다.
'잘 나간다'는 모호함 대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공간, 나에게 집중하면 된다. 알 수 없는 곳에서 남들처럼 잘 나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실재하는 나에게로 잘 돌아오는 것이다.
몸을 위한 디톡스와 마찬가지로 일정 기간 동안 작정하고 내 마음을 비워 내는 훈련을 한다.
감정도 디톡스가 필요하다. 기본은 일단 쏟아 내는 것이다.
좋은 것, 새로운 것, 특별한 것을 찾기 전 나와 내 감정을 위해 해야 할 첫 단계는 감정 디톡스다. 일단 비워 내야 숨통이 트인다. 숨 쉬듯 가벼운 마음이 나를 행동하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가볍고 여유로워졌을 때 비로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울 수 있다.
직장과 사람과 관계로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이를 정리할 때는 우선 혼자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렸을 때 볼 수 없던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 있는 타임아웃, 작전 타임이다. 이기고 싶은 상대를 굳이 말하자면 그건 나 자신이다.
어떤 식으로든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최우선이다.
나를 포함한 감정코칭연구소 회원들이 주말마다 하는 것이 있다. 이름하여 '나와의 데이트'다. 나와의 데이트는 반드시 혼자 해야 하는데, 집 안에 아무리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 하더라도 밖으로 나가는 것이 원칙이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차분히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최소 한 시간 이상이다. 가까운 곳이라도 한 시간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알고 보면 혼자만의 싸움이 더 위험하다. 섀도복싱과도 같이 허공에다 하는 주먹질이다. 나만 상대를 알 뿐 상대방에게는 하등의 영향이 없다. 링 안에서의 싸움은 상대방이 있어야 하기에 때로는 귀찮아서라도 매번 성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링 밖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싸움을 하며 혼자 상처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혼자만의 싸움에 빠져들기 전에 일단 한발 물러나는 것이 우선이다.
이럴 수가. 문제가 '문제'였다. 나는 그동안 '문제'라는 단어를 오해하고 있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문제는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 논쟁, 논의, 연구 따위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돼 있다. 마지막에 덧붙이길 '해결하기 어렵거나 난처한 대상, 또는 그런 일'이라고도 한다.
나는 마지막 해석에만 집착한 나머지 문제를 자꾸만 나를 어렵고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만 여긴 것이다. 어렵고 힘들 것이라는 전제 때문에 해결하는 과정이나 결과를 보고도 충분히 성취감을 즐기지 못한 것이다.
애초에 회사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필요했다.
하루 중 스마트폰을 별로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배터리가 빨리 사라질까 하고 놀랄 때가 있다. 알고 보니 한번 켜 놓은 애플리케이션들이 백그라운드에서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란다. 지금 제 기능을 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돌아가는 것들 때문에 정작 써야 할 곳에 배터리를 쓰지도 못하고 원치 않는 순간에 방전될지도 모른다.
문제 상황에만 집중하며 불안해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백그라운드 애플리케이션들이 돌아가는 것과 같다.
문제만 들여다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가 반드시 해결된다는 믿음으로 바라보는 명확한 나의 모습이 중요하다.
나쁜 감정은 없다. 설령 나쁜 감정이 있다 해도 내가 만날 일이 없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감정의 가치가 아니라 내 안에 감춰 둔 무언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오늘도 나와 다른 이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감정에 핑계를 대고 있지는 않은가. 감정 때문이라며 감정과 점점 더 멀어지고 소홀하지는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나쁜 감정은 없다. 감정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아직 서툰 관계의 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관계 회복을 위한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직장에서의 감정 상황도 대부분 사소한 감정에서 시작한다. 직장에서는 애초의 목적대로 각자의 일만 한다면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많은 경우 서로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된 사소한 감정이 오해와 갈등을 부르는 것이다. 악의를 가지고 공격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응을 하는 것이 맞는다.
자질구레한 다양한 감정 상황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은 피로감만 더할 뿐이다. 그래서 사소한 감정에 목숨 걸 필요가 없다. 불필요한 기대가 불필요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소한 감정에 목숨 걸지 마라. 사소한 감정은 사소할 때 알아차리는 것이 제일이다.
사소할 때가 가장 소중하다. 사소한 지금이 최고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감정에 목숨 걸기 전 '잠깐 멈춤'을 선언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사소한 감정임을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이 내 사소한 감정에 대한 예의다.
퍼스널 컬러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 색과 조화를 이루어 생기가 돌고 활기차 보이도록 하는 개개인의 컬러라고 한다. 자신의 신체색을 아는 것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나부터 행복해도 된다.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 내가 행복하면 다른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감사와 사랑의 선순환이다. 시작은 나부터 행복한 데 있다. 지금 혹시 나만 행복해질까 봐 미안하고 두려운가? 지금 먼저 깨달은 내가 먼저 더 크게 나눌 수 있다. 나부터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하다.
세상이 정해 놓은 성과에 목매면 목이 매인다. 내 안의 내가 원하는 성장에 집중하고 그 느낌부터 찾자. 흔해 빠진 뻔한 복제품이 아니다. 직접 내 손에 붓을 쥐고 나만의 그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림, 수채화든 유화든 추상화든 내가 직접 그린 것이면 충분하다. 이제 우리는 세상이 정해 놓은 달력에 지배받지 않는 '나요일'을 살자.
책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된 책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덮으며 알게 된 것은, 상사든 동료든 주변 사람들과 관계없이
일단 나 자신을 대면하고, 나 자신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책 표지처럼 비 오는 날의 나에게 우산과도 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