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상처를 대면하고, 현재에 집중하여, 미래를 준비해 가는 방식.
코칭심리전문가 김윤나 님의 신간, '당신을 믿어요'를 읽었다.
'말그릇'이 내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속 좁은 이들을 이해하게 해 주었다면,
'당신을 믿어요'는 그동안 쉽게 대면하지 못했던, 나 자신만의 아픔을 마주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나 자신에게 고맙다'라는 느낌을 전해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감명 깊었던 구절들을 적어본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보면 주인공이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친구에게 영어를 가르치는데, 슬픔에 잠긴 사람을 위로할 때 쓸 수 있는 표현이라며 알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I've been there."
이게 어째서 위로가 되는 문장이냐며 묻는다. 그러자 주인공은 답한다.
"깊은 슬픔은 때때로 특별한 장소가 되기도 해요. 시간이라는 지도상의 한 좌표처럼요. 그 슬픔의 숲에 서 있노라면 도저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죠. 그럴 때 누군가가 자기도 거기 가봤고 이제는 빠져나왔다고 말해주면 희망이 생기는 법이에요."
분명한 것은 상처는 음지에 숨겨두면 점점 눅눅하고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터널에는 출구와 비상구가 있다. 찾으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나타난다. 당신이 경험한 사랑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는 아직 주어진 행운을 다 쓰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문 앞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인간 중심 상담에는 '가치 조건화'라는 개념이 있다. 내게 소중한 사람, 의미 있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본래 자신이 가진 방향성을 포기하고 애정과 관심을 받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진짜로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건강한 사람은 애초부터 자신의 에너지를 고갈해가면서 필요 이상의 업적을 세우려고 핏대를 세우지도 않고, 자기 권리까지 포기해가며 상대를 배려하지도 않으며, 필요 이상의 분노를 끌어들여 사람들에게 강함을 보여주려 하지도 않는다. 남들에게 들려주기 좋은 노래보다는 자신을 위한 노래를 부를 줄 안다.
한때 나도 서커스단에서 훌라후프를 돌리고 공을 굴리는 코끼리처럼 뭐라도 해야 삶이 돌아간다고 믿었다.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을까 봐 무서워서 멈추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 코끼리는 긴 코로 묘기를 부리지 않아도 그냥 코끼리다. 버려질까 봐, 맞을까 봐 겁내지 않는다면 코끼리가 그렇게 무거운 몸을 세우고 비틀고 할 이유가 없다.
기특한 코끼리에게 박수를 쳐주던 관객은 결국 떠난다. 우리는 누군가의 딸이나 아들로 보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들이 기뻐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일을 찾아야 한다. 당신이 흥얼거리고 싶은 노래 말이다.
눈물은 내면과의 대화를 건너뛰며 살아온 사람들을 위해 떨어진다. 그 신호마저 모른 척하면 눈물은 정신까지 침투한다. 당신을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뜨리거나 무기력하게 만들어 앞으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만큼 주저앉힌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는 것이다. 눈물을 닦아낼 휴지를 찾는 대신 그대로 비추어줄 거울을 준비해야 한다.
눈물이 날 때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한다. 괜찮아지기를 바라지만 아직 괜찮지 않은 그때에 관해서 말이다. '당신이 모른 척하는 이야기'로 돌아가자. 당신이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지 않게 만드는 사람과 숨겨둔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도움이 된다. 전문가와 상담을 시작해도 좋다. 무엇보다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일기나 글쓰기 같은 기록의 모든 방식이 그런 것들이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마음의 건강상태를 짐작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는데, 그중에 'time zone'이라는 것이 있다.
건강한 마음 상태를 가진 사람들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에 적절한 배분을 둔다.
비유하자면 시소를 떠올리면 좋겠다. 시소의 왼쪽은 과거, 오른쪽은 미래, 중심은 현재가 맡고 있다. 시소는 양쪽을 오르내리며 리듬을 만든다. 흔들리더라도 오래지 않아 중심을 되찾는다.
삶에 생기가 있는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되 빠져 있지 않다. 순간을 음미하되 취해 있지 않다. 내일을 계획하되 집착하지 않는다. 후회나 미련, 걱정과 혼란스러움 앞에서도 충실한 현재 덕분에 균형이 유지된다.
마음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옛일을 회상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지금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니란 것을, 사실 나는 더 괜찮고 잘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반대로 오늘의 무게에 눌려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에 매몰된 삶이란,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짓눌려 과거를 성찰하지 못하고 내일의 작은 기대를 키우지도 못하는 인생이다. 현재에 고착된 사람들은 아픔에서 배워가는 교훈도, 노력을 통해 채워가는 성장도 비워 있는 시간을 산다는 특징이 있다.
시간이 미래로 채워진 사람들은 현재를 살지 못한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해도, 많은 돈을 벌어도 어디쯤에서 멈추고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
심리학은 괜찮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힌 우리에게 '지금-여기(here and now)'를 살라고 조언한다.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속삭인다.
모든 관계의 제1원칙은 자기 보호이다. 상대가 계속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데 '그래도 자식인데...' 하면서 물러서지 않으면 상처만 깊어진다. 관계에서는 가까이 다가가야 잘 보이는 문제가 있고, 떨어져야 명확해지는 것이 있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감정의 응어리는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경계가 모호해져 버린 채 살면서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참고 견디며 의무를 다하느라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다. 그럴 때는 서로의 팔을 뻗어도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건강한 테두리를 그리는 것이 먼저다.
아들러의 글을 번역한 책 <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읽으면서 다음 대목에 쫙쫙 밑줄을 그으며 몇 번이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불완전한 상황에 처한 아이는 대부분 야심가가 되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투쟁한다. 그러나 때로 투쟁이 정상적인 수준을 벗어나 우려스러운 정도가 되면 아이는 타인을 시기하거나 질투하고 결과적으로 스스로 극복하기 힘든 열등감을 키운다. 그 아이는 서툴거나 능력이 부족하면 절대 안 된다는 마음속 고정관념과 싸우는 호전적인 아이가 되며, 나이가 들어서 호전적인 성인이 된다. 그러면 그는 다른 사람보다 더 큰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헬렌 켈러는 "우리의 불행은 결핍에 있기보다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결핍감에서 온다."고 말했지만 결핍과 결핍감을 분리하기는 어려웠다.
'중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은 다른 사람의 박수 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아끼고 배려하는 방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세우는 일은 밖을 떠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안을 채워야 시작되는 일이었다.
불쌍하고 가여운 인생... 어쩌자고 이렇게 누워 있냐며 꺼이꺼이 통곡을 했다.
'마지막이야, 마지막.'
그것은 늘 조급하게 만든다.
떠나는 길 노잣돈을 두라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나는 그동안 쓰지 못했던 인심을 마지막이 되어서야 두둑하게 풀어놓았다.
누군가를 지독하게 미워하면 나중에 더 슬퍼할 일이 생긴다. 특히 그 대상이 갑자기 사라지면 증오만 그대로 남아서 화살이 자신을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워하는 일보다, 미워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이 남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나는 부모 이름만 들어도 바들바들 떠는 남은 자식들을 볼 때, 그것이 미리 염려스럽다. 그러나 이런 것은 원래 한발 늦게 깨닫는 법이라 입 밖으로 쉽게 꺼낼 수가 없다.
그때부터 나는 어떤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꾸 뒤돌아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끈질기게 뒤를 추적해올 때마다 '떡볶이 국물'을 떠올린다. 어차피 벌어진 일에 현재를 희생할 만큼 중요한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떡볶이 국물이 묻은 옷 같은 데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자국을 달고도 얼마든지 웃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자살 협상 전문가로 활동하는 이종화 대표는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경찰이 자살소동을 벌이는 현장에 출동했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자 동시에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이해합니다", "진정하세요", "그만 나오세요"라고. 그러면 상대는 "이해하긴 뭘 이해해!", "네가 뭘 알아!", "너 같으면 나오겠냐!"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해결사들이 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종화 대표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설득하려 들지 말고 이렇게 말하자고 했다.
"화가 나 보이네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슬퍼 보이네요. 당신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사람과의 관계는 '불'에 비유할 수 있다. 온기를 쬘 수 있을 정도로만 다가가고, 타지 않을 정도로 물러서는 거리를 유지하라는 뜻이다. 누군가의 상처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를 불쌍하게 여길 이유도, 동정할 필요도 없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숨기는 사람과 입 밖으로 꺼내어 알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내 브런치 서재의 또 다른 글.
'그렇게 누나는 떠나갔지만'이라는 글을 통해서,
(https://brunch.co.kr/@azafa/14)
누나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밝은 햇볕 뒤에는 그림자가 생기기에, 과거의 어두운 상처는 지금 꺼내어 스스로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다가올 미래에 우리 삶을 발목잡지 않도록 대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지금 현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