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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Nov 14. 2019

그렇게 누나는 떠나갔지만.

산후우울증. 그리고 남겨진 가족.

"아들. 누나가 죽었다."

이른 새벽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아들에게 전화를 먼저 하신 일이 거의 없으셨던 아버지였기에,

거의 모두가 잠든 시간에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를 왠지 모를 두려움 속에 받았다.


누나는 그렇게 떠나갔다.

주변 사람 아무에게 그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바로 전날 저녁까지 두 명의 외손주를 돌봐주고 집으로 향하는 어머니에게 누나는 "엄마. 고마웠어요."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을 뿐이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부모님은 30년이 넘게 살았던 고향과 같은 그 동네를 떠났다.

아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으시지만 밤마다 가슴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고 계신 것을 알고 있다.

나도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주 친한 주변 몇몇 사람들에게 누나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8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만 3670명에 달한다고 한다.

산후우울증에 대해 다룬 중앙일보 칼럼 '[분수대] 톱스타의 고백_이에스더 기자(2019.11.13)'에 따르면, 해마다 61만 명의 한국인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631153?cloc=joongang-home-opinioncolumn


얼마 전 직장 동료의 아내에게 누나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니, 누나와 똑같은 선택을 했다.

빈소에서 엄마를 찾아 울고 있는 아이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평소 친하게 지내지는 못한 직장 동료였지만, 그의 손을 잡으며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내 누이도 5년 전에 가족분과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앞으로 많이 어렵고 힘든 시간들이 있을 거예요. 그 길을 먼저 가 본 적이 있으니,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평소 회사에서 항상 밝던 내가 꺼낸 이야기에 그 직원이 더 놀랐던 것 같다.


가끔 누나가 생각나면 마음속으로 물어본다. 왜 그랬냐고?

누나에게 묻고 또 물어보아도 바뀌는 것은 없다.

그저 내 앞에 멍하게 있는 직장 동료가 빨리 제자리를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길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자처한다. 남겨진 아이에게 엄마가 되어줄 수는 없지만, 아빠마저 희망을 놓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 것 같다.


한 해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남겨진 수많은 가족, 친구, 지인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내 동료가 꿋꿋하게 아이를 키워내길 응원한다.

그리고 수많은 자살 유가족들도 힘을 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잠시 생각을 멈추고 희망의 끈을 찾아보길 바란다. 남겨질 가족을 생각해 주길 바란다.


우리 모두는 그 존재만으로 소중한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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