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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Dec 01. 2019

대통령의 협상

진정성이야 말로 최고의 협상력이다.

소중한 직장동료가 선물해 준, '대통령의 협상'이라는 책을 읽었다.


정치적 색깔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바보'라는 별명을 가진, 고 노무현 대통령의 소통과 협상, 그리고 진정성에 대해서 되새겨 볼 수 있었던 좋은 책을 소개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대통령의 협상 _ 조기숙 저, 위즈덤하우스 출판사]


책 제목은 '대통령의 협상'이지만,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우리의 마음은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서 움직이는지에 대해 알게 된 내용을 소개해 본다.


1) 문화

도올 김용옥 선생은 노 대통령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으로서 목표가 뭐냐는 질문에 "문화를 변화시키고 싶다"라는 답변을 들었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란 '생활의 방식 way of life'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협소하게는 예술적. 정신적 산물로 정의되기도 한다.


2) 갈등

인간이 있는 곳엔 반드시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갈등 자체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오랜 뿌리인 수직적 유교 문화는 갈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조용한 합의 또는 화합만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위해 희생하는 구조는 절대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반면 갈등은 종종 사회 발전에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한다. 갈등은 수면 아래에 머물던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창의적 해법을 찾게 되고 시너지도 발현되기에 갈등은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한다.


3) 협상

협상은 언제 필요할까? 이해당사자들이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구조에서 필요하다. 협상을 하면 모든 참가자가 협력함으로써 서로의 이익을 향상시켜주며, 결과적으로는 사회의 공공선에도 기여한다.

협상 만능론자들은 이 세상에 딱 하나를 제외하고는 협상이 불가능한 상대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 예외란 자판기를 가리킨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는데 원하는 물건이 나오지 않자 두드리고 흔들다가 무너지는 자판기에 깔려 목숨을 잃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한다.

우리는 왜 협상하는가?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협상한다!


4) 질투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느끼는 질투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독일어에는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라는 말이 있다. 샤덴(손실, 고통) 프로이데(기쁨) 합쳐진 말로, 남의 고통과 실패를 보며 느끼는 쾌감을 의미한다.


5) 갓동민

작은아들이 tvN의 <더 지니어스>라는 게임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걸 옆에서 가끔 본 적이 있다. 개그맨 장동민이 IQ가 천재 수준이라는 출연진을 모두 따돌리고 승자가 돼 '갓동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내가 유심히 관찰한 건 같은 팀의 멤버를 속여서 이익을 취한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놀랍게도 바로 다음 회, 길어야 그다음 회에 여러 참가자들의 담합에 의해 응징을 당함으로써 프로그램에서 일찌감치 퇴출당했다.

그의 두뇌 회전이 빠르기도 했지만 두 가지 특성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최종 승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첫째, 그는 같은 팀에 속하는 멤버를 적극적으로 속이거나 배신하지 않았다. 그와 팀을 이루면 얻을 게 있고 배신당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형성해 나갔다. 둘째, 그는 개인전에서도 다른 사람과 연대해 게임을 했고 팀플레이에서는 오히려 점수가 적어서 곧 탈락 위기에 있는 멤버에게 후한 보상을 해주었다. 즉, 연대가 깨지지 않도록 보상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6) 바트나 (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피셔는 좋은 협상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나의 이익, 바트나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대안, 옵션뿐만 아니라 상대의 것도 함께 검토하라고 한다.

타협을 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 사용하는 기준을 피셔는 '바트나 BATNA'라고 부른다. '협상안이 깨지더라도 내가 택할 수 있는 여러 개의 대안 중 최고의 대안'이라는 의미다. 피셔는 협상안보다 바트나가 나쁘면 협상안을 받아들이고, 반대로 협상안보다 바트나가 좋으면 굳이 협상안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과거에는 한 회사에 입사하면 퇴사할 때까지 충성을 다하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됐다. 그에 비해 현재는 세계화의 확산과 함께 기업 간 경쟁이 격화되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직장인들은 언제 회사를 떠날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이런 환경에서는 바트나를 향상시키는 전략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 이런 점을 본능적으로 아는 젊은 직장인들은 회사에 충성하는 대신 많은 시간을 자기 계발에 투자한다. 그런 다음 다른 직장에서 좋은 조건의 제안을 받아내면 이직을 하면서 몸값을 올린다. 미국에서는 대학교수도 다른 대학에서 수시로 좋은 조건의 제안을 받아 와 현재 근무하는 대학과 연봉 재협상을 한다. 바트나를 통해 개인이 자신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사례 중 하나다.


내가 바트나를 가지고 있으면 상대와의 협상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기에 나의 협상력이 올라가는 반면, 바트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대는 나와의 거래를 어떻게든 성사시키려 노력할 것이다.


7-1) 팃포탯(tit for tat) 전략

어쩔 수 없이 유지해야 하는 관계일수록 상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무조건 잘해줄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에게 한 이기적인 행동을 그대로 돌려줘 상대가 손해를 보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도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나에게 협력하게 된다. 이를 게임 이론에서는 상호주의, 즉 팃포탯 전략이라고 한다.

팃포탯은 말 그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인 상호주의 전략이다.

팃포탯 전략이 적대적인 상대로부터도 협력을 끌어내는 비결은 상대가 배신했을 때 보복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데 있다. 내가 끊임없이 선의를 보이며 협력하면 상대도 감동해서 협력할 것이란 가정은 소수의 좋은 사라에게만 통한다. 대부분 사람은 보복의 두려움을 느낄 때 협력한다.


액설로드는 팃포탯 전략의 핵심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 먼저 협력하라.

-. 상대와 점수를 비교하지 마라.

-. 상대의 선택을 되돌려줘라.

-. 단순하게 생각하라.


7-2) 팃포스리탯 (tit for 3 tat)

팃포스리탯은 내가 인간과계에서 사용하려고 이름을 붙인 전략인데, 두 번은 상대의 배신과 이용을 참아주지만 세 번째에는 더 참지 않고 나도 비협력을 택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나쁜 결과만 보고 배신하려는 의도였다고 오해하기도 하고,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에는 의도와 다르게 늘 오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생활에서는 팃포탯보다는 팃포 스리탯을 쓰는 것이 신뢰가 없는 양자가 상호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8) 죄수의 딜레마

협상이 필요한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한 것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나오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존 내시 John Nash가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했기에 이 전략을 '내시 균형'이라고도 부른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양자가 서로 침묵으로 무죄를 받을 수 있음에도 서로 손해를 보면서 죄를 고백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통의 단절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상대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이기적인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집단적으로는 비합리적 결과를 가져오는 상황을 가장 잘 포착한다.


9) 진정성

사실상 협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상대가 거의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라 흑심을 감추고 상대를 속이기란 쉽지 않다.

협상에서 진정성이 중요한 이유는 신뢰를 받아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고 나와 상대가 서로 윈윈 하는 협상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은 평생의 가치관과 살아온 삶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훈련으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성이야말로 성공적인 소통의 첫째 요인이다.


10) 적극적 경청

적극적 경청이라 해서 무조건 듣고만 있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일방적으로 듣는 건 경청이고, 적극적 경청은 상대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듣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진다.

적극적 경청은 한마디로 쌍방향 소통을 하는 것이다. 쌍방향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는 내가 상대방이라면 무엇을 원할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11) 흑백논리

많은 이들이 '다르다'대신 '틀리다'를 사용하는데, 이는 나와 다른 생각은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경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사고는 '모 아니면 도'라는 흑백논리에서 비롯된다.

흑백논리는 나는 백이고 상대는 흑이며, 나는 옳고 상대는 틀리다는 생각이다.

흑백논리가 있는 곳에서는 공존이 불가능하다. 주위 사람들까지 흑과 백 중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그 중간은 회색 지대로,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을 과거엔 '사쿠라'로 불렀고 요즘엔 기회주의자로 매도된다.

흑백논리는 기본적으로 미성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은 흑백논리를 선호한다. 그게 생각하기 편하고 선택하기도 단순하기 때문이다.


12) 공무원의 복지부동

노 대통령은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질타하기보다는 그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에게는 벌을 주되, 열심히 일하려다 실수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관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잘하려다 실수한 것을 자꾸 처벌하니까 공무원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했다. 공무원의 복지부동은 그들의 속성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인센티브 시스템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13) 견제와 균형

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제팀을 세 개 정도 운영한 것으로 안다. 경제팀을 하나로 모아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팀의 팀장은 자신보다 우수한 전문가가 들어오는 걸 경계할 것이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자신을 제치고 그 사람을 발탁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팀장의 그와 같은 게이트키핑(문지기) 역할 탓에 우수한 사람은 배제되고 팀원은 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팀장이 우수하면 다행이지만, 무능하다면 창의적인 팀원을 억누르고 자신보다 우수한 팀원의 진입을 막아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런데 세 팀을 운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후보는 세 팀의 팀장이나 팀을 별도로 만나야 하니 시간도 많이 들고 몸도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세 팀은 후보에게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경쟁할 것이고, 이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좋은 전문가를 영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소통 스타일도 독특해 그 많은 비서관을 다 알고 직접 소통했다. 업무지시도 비서관에게 직접 하고 보고도 직접 받았다. 물로 이지원에는 비서관이 대통령께 보고서를 보내면서 수석과 다른 비서관실을 참조로 포함했기에 모두가 보고서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팀원이 아니라 주로 팀장과 직접 소통하는 위계적 소통 스타일을 선호한다면 그 팀의 논의 결과가 사실은 팀장의 생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체계에서는 팀원이 대통령이 아니라 팀장에게 충성할 가능성이 커진다. 위계적 소통 구조하에서는 참모들이 대통령이 아니라 위임 권력이 집중된 비서실장에게 충성하는 기현상을 낳게 된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주로 적었다기보다는,

협상에 중요한 원칙들을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에 빗대어 설명해 주었다.

특별히 어떤 정치색을 배제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가지고 있었던 '진정성'만큼은,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도 우리의 가슴속에 크게 느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그분의 생각과 글과 언행은 언제나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그 한결같은 마음속에서 이 시대 최고의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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