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스튜디오(Sapience Studio)를 통해 알게 된,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의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를 읽었다.
AI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창의성과 공감의 힘에 대해서 알려준 소중한 표현들을 적어본다.
인간과 컴퓨터는 목적 자체가 다른 지능 체계입니다. 컴퓨터가 인간보다 뛰어나서 인간이 범하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지르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설명이 더 적절할지 모릅니다. 컴퓨터의 목적은 연산과 저장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지닌 지적 시스템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해와 평가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 성능이 좋아지는 컴퓨터와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워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 지도교수였던 텍사스대 심리학과 아트 마크먼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 지금도 두고두고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지식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이다. 두 번째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설명할 수도 있는 지식이다. 두 번째 지식만이 진짜 지식이며 내가 쓸 수 있는 지식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굉장히. 뛰어난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들이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에게 자기가 하는 일이나 자기가 만드는 장비를 설명해 주는 일을 재능기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재능기부는 영어로 탤런트 도네이션(talent donation)이죠? 실리콘밸리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을 탤런트 파트너십(talent partnership)이라고 불러요. 그만큼 우리 인간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하는 일을 쉽게 풀어서 설명할 때 더 지혜로워집니다.
설명이 어렵거나 막힌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가 완전히 알지 못할 때 설명이 막히죠? 설명을 많이 해봐야 해요. 그래야 어디서 막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설명하다 막히는 곳이 바로 내가 모르고 있다는 걸 몰랐던 데예요. 우리는 입을 열어야 합니다. 누구한테까지 설명해야 할까요? 내 일을 잘 모르는 사람, 내 일과 무관한 사람한테까지 설명해야 합니다.
저는 실리콘밸리에서 사업. 아이템을 기획한 다음에 파워포인트로 제안서를 만들어서 첫 프리젠테이션을 자기 방 청소하는 분을 앉혀 놓고 하는 임원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내 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이 사람도 알아듣게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온전히 제대로 알고 있는 거예요.
인간은 부모님으로부터 두 가지를 물려받는데, 그 두 가지가 바로 IQ 같은 기초 사고능력과 성격입니다. 진짜 재미있는 건, 부모님이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뭐라고 하시면 안 되는데 맨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넌 누굴 닮아 머리가 이러니?” “넌 성격이 대체 왜 이래?” 법적으로 물려준 쪽이 가해자죠? 부모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화내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인지심리학자들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지식의 축적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독서의 목적은 ‘지식의 재구성’입니다. ‘지식의 재구성’이란 파편화되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개별적인 지식을 하나의 의미 있는 덩어리로 묶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책 중간중간 포진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묶는 ‘은유’라는 접착제를 계속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꼭 독서가 아니더라도 은유가 존재하는 다른 활동들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 좋습니다.
원트(Want)와 라이크(Like)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원트와 라이크를 구분하지 않고 씁니다. 그런데 이 원트와 라이크를 구분하지 못하면 내가 무엇을 가져야 행복하고 지혜로워졌는지 알기가 힘듭니다. 원트와 라이크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 드릴게요.
원트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원하다’입니다. 순도 100%짜리 ‘원하다’는 내가 그것을 안 가지고 있는 상태,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라이크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좋아하다’죠? 라이크는 그것을 가지느냐, 안 가지느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그것과 오래 같이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트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인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그런데 라이크는 지금 이 순간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거랑 오래가고 싶다는 거니까요. 우리가 강렬하게 원트를 느낀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언가를 가짐으로써. 나를 불편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원트와 라이크, 둘 중 하나가 없는 상황이 많습니다. 이른바 라이크 없는 원트, 원트 없는 라이크이지요.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이 둘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 자신이든 타인이든 그 사람이 무언가를 굉장히 원하면 자동적으로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해 왔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굉장히 좋아하면, 내가 그걸 갖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가지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맺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그 두 가지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낭비하고, 배신감을 느끼고, 헛수고를 하며 살아갑니다.
영국의 서식스 대학교 인지신경심리학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 박사 연구팀은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독서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이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책을 6분 정도 읽을 경우 스트레스는 68% 감소하고, 심장 박동수는 낮아지며 근육의 긴장이 풀린다고 합니다.
독서의 효과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독서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은 단 한 권의 책으로도 더 확장될 수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경험하지 않아서 몰랐던 세상의 일, 감각, 정서, 철학 등을 접함으로써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지금의 자신을 반성하거나 성장하게 되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도 높아집니다.
마지막으로 독서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도파민의 분비를 늘려 행복감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인간의 욕망은 두 가지 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바라고 소망하는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하는 욕망입니다. 이걸 인지심리학자들은 접근(approach) 동기라고 부릅니다. 너무 욕망, 욕망하면 <사랑과 전쟁> 같잖아요. 다른 하나는 내가 싫어하거나 무서워하거나 혐오하는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하는 모든 종류의 감정입니다. 이걸 인지심리학자들은 회피(avoidance) 동기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욕망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이 두 욕망을 적절히 자극하면 사람은 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접근 동기는 라이크를 만들어 내고, 회피 동기는 원트를 만들어 냅니다. 접근 동기는 바라고 소망하는 것을 가져서 무엇인가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회피 동기는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것을 막아 예방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나(me)는 좋은 걸 가지고 싶은 자아입니다. 우리(we)는 좋은 걸 가지고 싶기보다는 나쁜 걸 막아 내고 싶은 자아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나’를 떠올릴 때는 좋아지고 기뻐지고 행복해지고 싶은데, ‘우리’를 떠올릴 땐 평화로워지고 싶고 나쁜 일이 안 일어나길 바랍니다. 즉 ‘나’’는 접근 동기이고, ‘우리’는 회피 동기예요. 이것은 전 세계 어디서나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Q. AI와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 뭐가 있을까요?
A. 간단하고 뻔한 것 같지만, 가장 근본적인 대답은 ‘인간다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한테 많은 분들이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어떤 직업이 없어질지를 물어보세요. 그러면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련 분야 연구자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떤 직업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 직업에서 기계적인 일만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개발되어서 상용화되면 운전기사님들은 다 없어질까요? 그런 분들 중에 기계적으로 운전만 하는 분들이 없어지는 거예요. 승객과 잘 소통할 줄 아는 운전기사님들은 더 귀해지겠지요. 변호사 판사도 마찬가지예요. 기계적으로 변호하고 기계적으로 판결 내리는 분들은 다 사라지겠지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듣고 공감해 주고 불의한 것에 같이 화를 내주는 분들은 오히려 더 많이 필요해질 겁니다.
사람을 대체하는 AI라고 생각하시면 안 될 것 같아요. 인간다운 것은 인간밖에 없고, 인간과 대화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AI의 시대다. 매일같이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 대부분의 새로운 것들은 세상에 없던 것들이 아니다. 그 전에 있었던 것들의 창의적인 연결로 재탄생한 것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의성은 어떻게 발휘될 수 있을까? 그것은 지식의 융합에 있다. 지식의 융합은 독서를 통해 발현될 수 있다. 사물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을 통해서 구현될 수 있다.
AI의 시대는 창의성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창의성은 인간만이 발휘할 수 있는 고유의 특징이다. 창의성은 독서, 생각, 융합, 그리고 공감을 통해 발휘될 수 있다. AI의 시대를 살아가는 경쟁력은 독서와 공감에서 나온다.
계속해서 독서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