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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Dec 27. 2019

사장님 이삿날 멱살 잡힌 사연

라떼는 말이야 - #7. 교통정리는 신입사원의 몫

과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모두 실수 없도록!"

(일동) "네! 알겠습니다."


비장함이 흘렀다.

오늘은 사장님 이사하는 날.


인사총무팀이 총출동했다.

사장님은 새벽 일찍 회사로 출근하셨는데,

우리는 반대로 사장님 댁으로 출근을 했다.


포장이사 온 직원분들이 더 놀랐다.

자기들보다 더 많은 숫자의 양복 입은 사람들이 일손을 돕겠다고 하니.

그중 책임자 같은 분이 점잖게 말씀하셨다.

"거... 그냥 나와 계시는 게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장님의 지시에 따라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사실 뭘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서 있기 뻘쭘했는데,

"인사씨. 올라가서 뭐 필요한 거 없는지 확인해봐."

"인사씨. 내려가서 뭐 정리할 건 없는지 확인해봐."


그래서 계속 오르락내리락하기만 했다.


사장님 댁 이사의 절정은

오후가 되어 사장님께서 새로 이사 가시는 집에 도착한 뒤부터였다.


말로만 듣던 청X동.

'이야. 대한민국에 이런 집들도 있구나.'

집 안에 들어가 보고 더 놀랐다.

현관이 우리 집 거실보다 큰 느낌이다.

거실은 말 그대로 운동장.

거실에서는 한강이 보이고.

안방까지는 너무 멀어서 감히 들어가 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또 그렇게 쭈뼛쭈뼛하고 있는데,

과장님께서 대리님께 미션을 주셨다.

"아래 도로가 왕복 2차선인데, 포장이사 트럭이 여러 대 있으니 교통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아."

대리님께서 나에게 미션을 주셨다.

"인사. 밑에 내려가서 교통정리 좀 해."


속으론, '네!!!???'.

겉으론, "넵!"을 외치며

바람과 같은 속도로 내려갔다.


아수라장이다.

'침착하자. 침착해.'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사태를 파악한다.


왕복 2차로에 이삿짐 트럭만 3대. 고가사다리차 1대.

대형차량이 총 4대가 늘어서 있다 보니,

오고 가는 차들이 서로 막혀서 난리다.


차 4대 사이의 거리가 족히 30미터 이상은 되었기에

양쪽에서 두 명이 서서, 한쪽씩 차를 막고 보내야 하지만

나는 지금 혼자다.


'아 좀,, 한 명만 같이 내려와서 해주지. 대리님 미워.'

란 생각을 하기도 아까운 상황.


급한 김에 한쪽 차를 막아 세웠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뛰어가서 차를 보냈다.

차가 계속 온다. (신기한 건 그 당시에도 거의 다 수입차였다.)

어쩔 수 없이 막았다.

창문이 열린다.

"야! 너 뭐야?"

'네...? 저요...? 신입사원인데요...?'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답했다.

"미안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를 외치고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화가 잔뜩 나서 기다리는 분에게 오라고 했다.

"야!! 장난해?!"라고 해서 뭐지 하면서 뒤를 보는데,

반대편에서 "야! 너 뭐야?" 했던 분이

그대로 나를 따라 밀고 들어왔다.


다시 반대편으로 뛰어가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온 몸으로 차를 막고,

반대편에 수신호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한참을 기다린 반대편 운전자가 나를 지나치며 욕을 했다.


'아... 뭐지. 나는 왜 지금 여기서 욕을 먹고 있는 거지?'


결국엔 멱살을 잡혔다.

그것도 어린이집 버스 기사님한테.

"야! 죽고 싶어!"

'네,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동승 교사님의 만류로

겨우 멱살이 풀리고 나니,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수입차의 창문이 내려가며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스타일의 여사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니가 뭔데 차를 세워?"

'네...? 저요? 신입사원인데요...?'


그렇게 멘탈이 탈탈 털리고,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정리가 끝난 사장님 댁에 올라가니

과장님, 대리님이 칭찬을 듣고 계신다.

사모님께서 "바쁘신데도 이렇게 와서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하신다.

과장님, 대리님. 굽신굽신.


나는 오늘 무엇을 한 걸까?


가끔 한강변을 오가며,

한강을 멋지게 바라보고 있는 그 집을 보게 되면

십몇 년 전 멱살 잡힌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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