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부패하는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신문을 보다가 '권력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왜 나쁜 사람들이 많을까?'
아니면 '권력 있는 자리가 나쁜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나쁜 사람들이 권력 있는 자리에 오르는 것인지?'에 대한 글을 읽었다.
(+권력을 잡으면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 _ 한겨레 _ 안선희 기자)
최근 갑질과 꼰대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보니,
바로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권력이 나쁜 사람을 만드는지?
나쁜 사람이 권력을 잡는지? 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도움을 준,
'권력의 심리학'의 통찰력 있는 이야기들을 적어본다.
월드는 장군들이 간과한 점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바로 보이지 않는 비행기들이다. 날개, 꼬리, 동체에 포격을 당한 연합국의 비행기는 대부분 연기를 내뿜으면서도 고국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이들은 살아남은 비행기였다. 하지만 다른 부분, 특히 앞코에 가까운 엔진에 포격을 맞은 비행기는 이 군사 연구에 포함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그 비행기들은 독일 땅에 격추되어 화염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월드는 독일 땅에 남은 비행기들, 이곳에 없기 때문에 군에서 연구할 수 없었던 비행기들이야말로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했다. 월드가 아니었더라면 군은 비행기를 더 무겁고 느리게 만들면서도 적군의 포화에 가장 취약한 부분을 조금도 보강하지 못했을 것이다. 월드는 군에 총알구멍이 나 있지 않은 영역을 보강하라고 권했다. 군은 그의 조언을 따랐다. 엔진에 철갑을 보강한 것이다. 이 조치로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월드는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월드는 선택 편향이라는 통계적 개념의 일부인 '생존자 편향의 오류(survivorship bias)'를 이해했다. 골자는 간단하다. '생존'한 경우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경우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스프링복이라면 살면서 가장 걱정되는 건 다른 누군가의 점심거리가 되는 일일 것이다. 특히 사자, 치타, 들개 무리와 마주친다면 눈앞이 깜깜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가까운 곳에서 당신을 노리며 침을 흘리고 있는 사자, 치타, 들개 무리를 발견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아마도 당신은 허공으로 뛰어올라 포식자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행동은 본능적으로 피할 것이다. 하지만 스프링복은 정확히 그렇게 한다. 정말로 스프링 같은 모양새로, 마치 올림픽에서 자비 없는 러시아 심판에게 자세 점수를 평가받기라도 하는 듯 다리를 가능한 한 꼼짝도 하지 않고 꼿꼿하게 편 채로 최대한 높이 뛰어오른다. 스프링복이 땅에 다시 발을 디딜 때쯤이면 포식자들이 자기를 확실히 봤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이다. 임무 완료다. 그런데 왜 이러는 걸까? 배고픈 상태로 마트에서 장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굶주린 존재의 눈앞에 무언가 맛있는 걸 보여주는 게 얼마나 지독한 일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스프링복의 이런 습성은 스토팅(stotting) 또는 프론킹(pronking)이라고 한다(우스꽝스러운 두 단어 중 더 마음에 드는 쪽을 고르시라). 진화생물학자들은 스프링복이 그 순간 포식자에게 자신이 얼마나 민첩한지 느껴보라는 식으로 이렇게 행동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프론킹하는 스프링복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임을 단단히 보여줬으므로, 빨리 점심을 해치우고 싶은 치타라면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는 말이다.
이런 유형의 행동은 동물의 왕국 전반에 존재한다. 이 행동들은 여러 동물 종이 모두의 수고를 덜어줄 정보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신호 이론(signaling theory)'의 예다. 프론킹이 없다면 스프링복이 우사인 볼트(Usain Bolt)처럼 빠르다는 것을 치타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프링복을 쫓아가 보는 것 밖에 없다. 이는 치타와 스프링복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측 모두 의미 없는 추격전을 벌이느라 소중한 에너지만 허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스프링복은 프론킹을 하도록 진화하고, 치타는 가장 까다로운 올림픽 심판도 10점 만점을 줄 만한 개체를 피해야 한다는 점을 배운다.
스티브 라우치를 보면 '어둠의 3요소(dark triad)'라는 전형적인 신호가 드러난다. 어둠의 3요소는 마키아벨리즘, 나르시시즘, 사이코패스 성향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마키아벨리즘은 이탈리아의 정치 철학가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가 남긴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은 한 가지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캐리커처에서 비롯됐으며 음모, 대인관계 조작, 타인에 대한 도덕적 무관심 등이 두드러지는 성격 특성을 가리킨다.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Narcissus. 그는 자기 자신과 완전히 사람에 빠진 탓에 파멸했다)의 이름을 딴 나르시시즘은 오만, 자아 도치, 과장,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 등으로 나타나는 성격 특성을 가리킨다. 세 가지 요소 중 가장 어두운 요소인 사이코패스 성향은 공감 능력의 결여와 충동, 무분별, 조작, 공격성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세 가지 요소 모두 각기 다양한 정도로 존재한다. 어쩌면 당신의 핏줄에도 각 특성이 조금씩 녹아 있을지 모른다(그리고 이 문장을 읽는 사람 중 소수는 아직 진단받지 않은 '나르시시스트 마키아벨리 주의자 사이코패스'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이런 특징을 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금씩만 가지고 있다. 한 사람에게 세 가지 요소가 극단적인 수준으로 응축돼 있을 때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는 주변 사람에게도 문제가 된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5년 동안 미납된 주차 딱지 중 UN 외교관 차량에 발급된 횟수가 15만 회에 달한다. 하루당 80회 이상이다. 누적된 미납 과태료는 무려 1,800만 달러다.
2002년, 뉴욕 시장 마이크 블룸버그(Mike Bloomberg)는 여기에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블룸버그 행정부는 과태료 미납이 세 번 이상 누적된 외교관 차량의 외교관 번호판을 취소하는 '삼진아웃' 규칙을 도입했다. 그해 10월, 불법 주차된 외교관 차량이 길가에 난무하던 맨해튼 개척 시대가 막을 내렸다. 도시에 새로운 보안관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 시 행정부는 한 달에 30개국의 면책 번호판을 빼앗기도 했다.
마치 올림픽 종목이나 되는 것처럼 앞다투어 주차위반을 해대던 부패한 국가 출신의 외교관들은 삼진아웃 규칙 시행 하루 만에 불법 주차를 완전히 그만뒀다.
시행 이전의 시기 동안, 티끌 하나 없는 국가의 외교관들도 뉴욕에 거주한 기간이 오래될수록 불법 주차를 더 자주 하는 경향이 있었다. 시행 공백에 익숙해질수록, 부패한 국가의 외교관들이 보이는 행동을 따라 하고 싶다는 유혹은 점점 더 거세졌다. 문화가 중요하긴 하지만, 사회적 영향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은 실제로 부패한다. 그러나 권력이 부패하는 정도에 관한 우리의 매우 냉소적인 시각은 잘못됐다. 이 중 일부는 권력을 가진 인물을 칭찬하거나 비난할 때 우리가 너무 자주 간과하는 네 가지 현상과 관련이 있다. 나는 이 네 가지 현상을 가리켜 '더러운 손', '나쁜 짓 잘하는 법 배우기', '기회는 찾아온다', '현미경 아래에서'라고 부른다. 각 현상은 우리에게 왜곡된 관점을 안겨주고, 우리는 이로 인해 권력이 사람을 실제보다 더 부패시킨다고 믿게 된다.
부패하는 사람들은 권력에 이끌리며 대개 권력을 얻는 데 더 능하다. 우리 인간은 석기시대적 뇌와 관련된 비이성적인 이유로 잘못된 지도자들을 따르는 데 이끌린다. 나쁜 시스템은 모든 것을 악화시킨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우리의 직관에는 결함과 오해가 있을 수 있다. 더러운 손, 학습, 기회, 감시 등의 네 가지 현상은 권력이 실제보다 더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때때로 우리는 권력의 효과와 권력 유지의 본질적인 측면을 혼동한다. 그러나 이 네 가지 완화 요소 또한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다. 권력의 부패 효과는 이 요소들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액턴 경이 옳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실제로 부패한다.
역사가들은 처칠이 해독된 암호를 통해 시드니 함을 비롯한 다수의 호주 군함이 곧 공격을 받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본다. 처칠은 침묵을 지킨다면 해당 군함이 위험이 처한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그 정보를 호주에 알리지 않기로 했다. 시드니 함에 경고를 한다면 이니그마 암호가 풀렸다는 사실을 독일이 알아낼 가능성이 너무 컸다.
1941년 11월 19일, 시드니 함은 독일 순양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승선한 645명 전원이 사망했다. 처칠은 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손을 더럽혀 훗날 나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데 일조했다.
마찬가지로 미국 남북전쟁이 막바지에 달했던 1865년 초, '정직한 에이브러햄(honest Abe)'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노골적일 만큼 정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행동했다. 미국 내 노예제를 폐지할 수정헌법 제13조의 통과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링컨은 사실상 하원 내 반대파 의원들에게 뇌물을 주었다. 노예제와는 무관한 입법적 뇌물을 이용해 그들의 표를 산 것이다. 하원 의원 새디어스 스티븐스(Thaddeus Stevens)는 이렇게 말했다.
"19세기에 가장 위대한 조치는 미국 역사상 가장 완전무결한 사람이 지원하고 선동한 부패를 바탕으로 통과됐다." 완전무결했지만, 훨씬 더 큰 대의를 위해 손을 더럽히는 일은 예외였다.
처칠과 링컨은 너무나 많은 존경을 받는 인물이므로, 이 일화들은 저명한 역사가들의 손을 거쳐 미화되어왔다. 그러나 다른 많은 권력자의 경우, 더러운 손 문제는 지도자를 실제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해 우리의 평가를 왜곡시킨다. '권력은 부패한다'고 하면 보통 권력으로 인해 사람들이 전보다 더 악하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권력자들은 단지 더 나쁜 결정을 내려야 할 뿐이다. 둘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는 정직한 에이브러험이 기꺼이 자신의 손을 더럽혀 노예제를 폐지하고 처칠이 나치를 무찌르는 데 필요한 일을 결단력 있게 해냈음에 감사해야 한다. 권력자에게는 부도덕한 행동이 가장 도덕적인 선택지일 때가 있다.
북한에서는 김 씨 왕족이 주체사상이라는 통치 신학을 통째로 개발했다. 이들의 기괴한 신화를 암송하는 것은 목숨을 부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인데, 국가 교리에 도전했다가는 처형당하거나 강제노동수용소로 가는 편도 표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에는 독재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습득한 핵심적인 목적이 있다. 바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분류하는 충성심 테스트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친애하는 지도자'에 관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권의 신뢰를 받아도 좋을 사람일 가능성이 더 크다. 말도 안 되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수 있는 부하는 투자해도 좋은 부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독재자가 절대 권력을 향한 갈증 때문에 점점 더 정신을 놓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더욱 정교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권력 탓에 부패한 게 아니다. 그들은 나쁜 짓을 더 잘하는 방법을 배웠을 뿐이다.
애나 푸가 의사가 아니라 건물 관리인이나 경비원 또는 행정직원이었다면, 환자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타인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타인을 해칠 기회도 주어진 것이다. 권좌에 앉은 모든 사람에게도 같은 현상이 적용된다. 이들은 타인을 해칠 수 있는 상황에 더 자주 직면한다. 이들이 잘못된 지시를 내리면 더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권력이 이들을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기회가 늘어나고 영향력이 커진 탓에 단순히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많은 경우가 후자에 속한다.
1987년 미국 의회가 세금 보고서에서 언뜻 미미해 보이는 작은 사항을 수정했을 때의 일이다. 과거에는 세금 우대 혜택을 받으려면 가구마다 피부양자를 보고서에 적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사람들이 세금 우대 혜택을 받기 위해 허구의 피부양자나 애완동물의 이름을 적지는 않는지 궁금해하는 직원이 있었다. 그래서 새로이 개선된 보고서 양식에는 각 피부양자 옆에 피부양자의 고유한 사회보장 번호를 적는 칸을 추가했다.
700만 명이 사라졌다. 1986년 세금 감면을 위해 신고된 미국인 피부양자는 7,700만 명이었지만, 1987년에는 7,000만 명에 불과했다. 이처럼 급작스러운 변화는 미국 내 세금 감면을 위해 신고된 피부양자 열 명 중 최대 한 명의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미 국세청은 심지어 특히 대담한 1,100개 가구가 과세연도 1년 사이에 최소 일곱 명의 피부양자를 알 수 없는 이유로 잃었다는 점도 발견했다. 정부는 이듬해 28억 달러의 추가 세수를 거뒀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매년 조세 사기를 저지르던 사람들에게 돌아갔을 금액이다. 수많은 악행이 거대한 빙산처럼 수면 아래에 숨어 있었다. 우리는 대개 일각만을 보고 살지만, 권력자들은 애써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인해 늘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겉보기보다 더 나쁜 사람이지만, 권력자는 더 많은 감시를 받기 때문에 더 자주 발각된다.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실패의 원인으로 잘못 탓하는 한편, 요행으로 성공한 끔찍한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교훈은 간단하다. 결과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되고, 의사결정 '과정'을 훨씬 더 주의 깊게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훈이 담긴 사례 하나를 야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89년, 미네소타 트윈스는 승률이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그저 그런 팀이었다. 팬들은 감독 톰 켈리(Tom Kelly)를 비롯한 팀 지도부에 분노했다. 때마침 미국 프로리그 사이영상(Cy Young Award) 수상자인 프랭크 비올라(Frank Viola)를 다른 투수 세 명과 맞바꾼 참이었다. 1년 후, 트윈스의 승률은 한층 더 낮아졌다. 캘리 감독이 곧 마이너리그 야구에서 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6월이 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트윈스가 열다섯 번 연속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야구 역사상 가장 긴 연승 기록을 세운 것이다. 1989년 크나큰 실책이 분명해 보였던 맞교환으로 영입한 투수들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켈리가 1989년과 1990년 팀을 재편한 이후 성과가 제대로 드러나는 데에도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어린 선수들이 최고의 재능을 발휘하는 데 승패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구단주의 인내심은 1991년 월드 챔피언이라는 큰 결실로 보답을 받았다. 그러나 보통의 구단주였다면 1990년 이후 켈리를 해고했을 것이다.
이 사례는 리더십에 관한 의외의 교훈을 준다. 우리는 승패를 만들어낸 결정을 평가하기보다는 승패 그 자체만을 살핀다. 이처럼 좁은 시야 탓에 좋은 결과가 좋은 리더십이고 나쁜 결과가 나쁜 리더십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다.
지난 35년간, 켄 파인버거(Ken Feinberg)는 미국의 주요 보상 기금을 모두 관리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 중 가장 어려웠던 일은 두말할 것도 없이 9.11 피해자 보상 기금이었다. 2,977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이 사건 이후 파인버그는 답할 수 없는 질문 하나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 희생당한 각 생명의 가치는 얼마였는가?
파인버그는 수십 년 동안 이런 종류의 딜레마를 대하면서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첫째는 삶이 한순간 예상치 못하게 급변할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세히 들여다볼) 두 번째 교훈은 일반적으로 변호사들의 차가운 태도에서 연상되지 않는 교훈이다.
"자애로운 폭군이 되어야 합니다." 파인버그가 힘주어 말했다.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적, 실질적 권력에 건강한 공감과 감성을 더해야 합니다. 이런 특성이 없다면,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곤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없다면, 당신은 망한 겁니다."
이 통찰에는 전략적인 측면이 있었다.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한다면 보상을 받을 사람이 합의된 금액을 수용할 가능성이 작아지고, 피해자들은 수년을 법정 싸움으로 고생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파인버그는 자기 자신에게 결정적인 인간적 측면도 인정했다. 그는 850명의 피해자와 가족들을 면대면으로 만났다. 그리고 각 가족의 고통을 직접 봤다. 생존자를 만날 때는 영원히 남을 장애와 흉터를 봐야만 했다.
뉴욕대학교의 심리학자 야코프 트로프(Yaccov Trope)에 따르면, 심리적 거리감에는 어떤 결정이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양파 안에 놓이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네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사회적 거리감이다(팬데믹으로 인한 끔찍한 사회적 거리두기와는 다른 개념이다). 사회적 거리감은 당신이 자기 행동에 영향을 받을 사람과 자기 자신을 얼마나 동일시하는지를 말한다. 딸과 가장 친한 동네 친구의 아버지를 해고하는 일은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을 해고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 둘째, 시간적 거리감이다. 결정을 내리는 순간부터 그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화학 회사의 CEO로서는 유독물질을 천천히 지하수로 침출시키는 일이 레스토랑에서 다른 손님의 물 잔에 독을 타는 일보다 더 쉬울 것이다. 셋째, 공간적 거리감이다. 같은 방 안에 있는 사람보다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피해를 미치기가 더 쉽다. 마지막으로 넷째, 경험적 거리감이다. 피해를 유발하거나 타인을 학대하는 일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해도 된다면 이를 적나라하게 느끼고, 경험하고, 지켜봐야 할 때보다 저지르기 더 쉽다.
2014년 어느 연구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사무실 중 거의 4분의 3이 '개방형'으로, 업무 공간을 분리하는 벽이 낮거나 아예 없다. 업무 시간에 잠시 트위터를 하거나 가족 또는 친구와 전화 통화라도 하려고 하면 모든 사람이 알게 되고, 그 점을 당사자도 안다. 이런 사무실 설계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일반적이지만, 사실 직원들에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2011년 개방형 사무실 연구 수백 건에 관한 검토에서는 이런 설계가 직원을 소외시키고, 스트레스를 높이고, 직업 만족도를 낮춘다는 점을 발견했다. 게다가 개방형 사무실의 가장 큰 목적이 협업 증진임에도 현실 데이터는 개방형 사무실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이 70퍼센트 감소한다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파놉티콘 스타일의 업무 공간은 감시에 탁월하지만, 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이라는 결과다.
기업 본사에서 가장 많은 감시를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처럼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가장 적은 사람들이다. 임원 사무실과 이사회실은 불투명한 채로 남아 있다. 이사회실은 도청당하지 않고, 이사진의 GPS 소프트웨어는 추적당하지 않는다. 개방형 사무실의 장점을 극찬하는 CEO들은 대부분 전망 좋은 개인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굳게 닫는다. 최고의 임원진이 업무 시간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키보드 타자를 기록하고 검사하는 일이 없다는 건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처럼 가혹한 모니터링을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감시가 꼭대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의 평범한 무단횡단자보다는 부패한 공산당이 훨씬 더 철저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사람들은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배를 '하는' 사람들이다.
애덤 살리스버리(Adam Salisbury)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서아프리카의 부패에 관해 연구했다. 그는 부르키나파소에서 관세동맹을 주도하던 부패한 공무원이 실각하자 이때까지 그의 지배를 받던 사람들이 악습을 빠르게 청산했음을 발견했다. 상부에서 더는 부패의 신호가 내려오지 않자 부하 직원들은 스스로 개혁했다. 우두머리의 목을 베는 방식은 효과가 있는 듯하다.
살리스버리의 연구 결과는 누군가를 현미경으로 조사하려고 한다면 책임을 맡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개념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책임자의 권력 남용은 훨씬 더 중대하고, 상부에서 이들의 행동을 청산하면 하부에서도 더 많은 이들이 행동을 그만둘 가능성이 더 크다. 반대의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말단 직원이나 비서가 더 좋은 행동을 보인다고 해서 부패한 판사나 CEO가 갑자기 청렴결백해질 리는 없다. 그러나 권력자들이 오늘날 거대한 신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우리는 잘못된 사람들에게 감시를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로마의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Juvenal)도 이런 말을 남겼다.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드디어 나쁜 상사의 민낯을 파헤쳐 볼 수 있겠다'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이 책을 다 일고 나니, '나쁜 상사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자주 발언권을 얻게 되고, 더 자주 의사결정을 하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나쁜 점이 유독 부각되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쁜 결정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는 점이 이해가 되었다.
'나쁜 상사도 문제지만, 나쁜 상사를 더욱 나쁘게 만드는 권력을 추구하는 추종자는 잠재적으로 조직문화를 더욱 해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늘 하루도 상사 때문에 힘들었다. 하지만 나 또한 누군가의 상사이다. 누군가의 상사인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은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내가 조금만 더 생각하고,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받은 다수의 사람들의 삶이 바뀔 수 있음을. 언제까지고 상사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