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미 열반하신지 10년이 넘었지만 법정 스님의 말씀은 큰 길잡이가 되고 있다.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스스로 행복하라'를 읽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은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법정스님의 이야기를 듣고자 찾아본 책.
'법정 _ 행복한 삶'의 행복한 이야기를 적어본다.
"흐름이 멈추어 한 곳에 고이게 되면 부패한다. 이것은 우주 생명의 원리다."
법정 -새벽 달빛 아래서-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게 되면 썩게 되고, 썩게 되면 악취가 난다.
고여 있는 물이 부패되어 생명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람 또한 한 자리에 오래 있게 되면 나태해지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처음에 참신했던 사람이 망가지게 되는 요인은 바로 '안주(安住)'에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안주한다는 것은, 고여 있는 물과 같아서 이를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를 경계하지 않는 것은 안주를 평안함, 안락함으로만 생각해서이다.
가장 안락하고 평안하다고 느낄 땐 반드시 이를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스스로 자신을 부패하게 하기 때문이다.
"꽃이 꿀을 품고 있으면 소리쳐 부르지 않더라도 벌들은 저절로 찾아간다."
법정 -그대가 곁에 있어도-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이렇게 말했다.
"꽃에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품격이란 것이 있다. 그러나 꽃도 그 생명이 생생할 때에는 향기가 신선하듯이 사람도 마음이 밝지 못하면 품격을 보전하기 어렵다. 썩은 백합꽃은 잡초보다 오히려 그 냄새가 고약하다."
셰익스피어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품격(인격)'은 사람만이 갖출 수 있는 품성, 즉 향기이다.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상대를 존중하고, 신뢰하고, 배려하고, 의연하고, 정직하게 행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고 신뢰하게 된다.
"개체를 넘어서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소요지족,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넉넉해진다."
법정 -산에는 꽃이 피네-
인도의 독립운동 지도자이자 무저항주의자인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는 인도의 작은 소공국인 포르반다르 총리를 지낸 아버지 카람찬드 간디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간디의 부모는 철저한 힌두교 신자로 부모의 영향을 받은 간디는 어린 시절부터 정직과 성실성이 몸에 배었다.
간디는 영국으로 유학을 하여 법률을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인도로 돌아온 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차를 타고 가다 백인 차장으로부터 심한 모욕을 받고 차별받는 동포들을 위해 정치가로 삶을 바꾼다. 인도로 돌아온 그는 인도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무저항으로 투쟁한 끝에 인도의 독립을 이끌어내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간디는 얼마든지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마다하고, 평생을 소박하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 그가 온갖 고난을 겪으며 인도의 독립을 위해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넘어 조국과 인도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에서였다. 또한 적은 것에도 만족하는 '소요지족'의 넉넉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를 자신의 추종자로 만들지 않고 제자 스스로 설 수 있는 자주적인 인간으로 만든다."
법정 -삶의 기술-
참된 스승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자신의 스승을 배반하거나 제자들을 이용하지 않는다. 오직 진실에 따라 가르치고 성실하게 학문을 익히도록 가르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제자를 자신의 하수인쯤으로 여기거나 비인격적으로 대한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제자를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지금의 학문은 좋은 직장을 갖고 출세를 하는 수단으로 전락되었다. 그러다 보니 스승도 제자도 학문도 '본질'을 잃고 말았다.
스승은 많으나 참된 스승이 드문 세상이다. 제자는 많으나 제자다운 제자가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진심을 다하고 성실로써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참된 학문의 도와 스승의 올바른 마음가짐이다.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지혜와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한다."
법정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담담하다'는 말은 '동요 없이 차분하고 침착하다'는 것을 뜻한다. 담담한 마음을 갖게 되면 어떤 어려운 일이나 곤란한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어떤 일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나가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순신 장군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선조는 이순신에게 장군의 지위를 박탈했다. 이순신은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의 담담함은 분노도 억울함도 인내하게 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처럼 이순신은 마침내 선조의 부름을 받는다.
이순신은 모든 일에 있어 담담함을 잃지 않았다. 그의 담담함은 지혜로운 혜안과 따뜻한 가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몫이 있다. 자신의 그릇만큼 채운다.
그리고 그 그릇에 차면 넘친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진정한 부자이다."
법정 -자신의 그릇만큼-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자신의 처지와 분수에 맞게 살면 된다.
왜 그럴까. 처지와 분수를 알면 자신의 그릇의 크기, 즉 자기의 몫 그 이상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지 않음으로써 만족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고 천해도 즐거우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돈이 많고 귀해도 근심한다."
이는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로 자신의 삶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지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릇 인간관계는 신의와 예절로써 맺어진다.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그 신의와 예절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법정 -어떤 주례사-
[사례1 - 윈스턴 처칠과 알렉산더 플레밍]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과 페니실린을 만든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운명 같은 존재였다. 어린 시절 시골 별장에 갔다 물놀이를 하던 중 발에 쥐가 나 위험에 빠진 처칠을 시골아이였던 플레밍이 살려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둘은 친구가 되었고, 처칠은 의사의 꿈을 갖고 있었지만 집이 가난하여 공부를 할 수 없었던 플레밍의 사정을 아버지에게 부탁한 끝에 런던으로 오게 하여 공부를 시켜주었다. 성인이 된 처칠은 군인이 되었고, 플레밍은 의사가 되었다. 전쟁에 나갔다 병에 걸려 위험에 빠진 처칠의 소식을 듣고 때마침 페니실린을 만든 플레밍은 전쟁터로 달라가 처칠에게 처방했고, 처칠은 죽음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살아났다. 처칠은 훗날 두 차례나 영국의 수상을 지냈고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 The Second World War>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플레밍은 노벨 의학상을 받는 등 둘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사례2 - 충무공 이순신과 서애 류성룡]
충무공 이순신과 서애 류성룔도 신의와 예로 맺어진 사이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둘은 각별한 사이였다. 이순신은 자신보다 세 살이 많은 류성룡을 형처럼 따랐고, 류성룡은 이순신을 친구이자 동생처럼 대해주었다. 성인이 된 둘은 이순신은 무신, 류성룡은 문신이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시기로 위기에 처한 이순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도 류성룡이었고, 이순신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은 사람도 류성룡이었다. 이순신은 류성룡을 믿었고 류성룡은 이순신을 믿었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이 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둘은 평생을 서로에게 '신의와 예'로써 대했다. 그랬기에 둘은 변함없이 서로를 존경하며 백성과 나라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좋은 책의 내용이 나 자신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때 문자의 향기와 서권의 기상이 내 안에서 움트고 자란다."
법정 -책에 읽히지 말라-
책을 읽은 후에는 반드시 책 내용대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독서며 내 삶으로 만드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율곡 이이는 이렇게 말했다.
"독서를 하는 데 있어 입으로만 읽고 마음으로 느끼지 아니하며, 몸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 글은 다만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함께 볼륨을 낮추자"
법정 -볼륨을 낮춥시다-
우리 사회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권 사람들은 정치권 세계에서, 교육계 사람들은 교육계 세계에서, 법률계 사람들은 법률계 세계에서 각 계층 각 분야마다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가 보편화되고 나서는 각 개개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세우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다변화, 다양화된 현대사회에서는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이기심이 앞서다 보니 그 정도가 지나쳐 종종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소음공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낮출 땐 낮출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시민이 취해야 할 자세인 것이다.
"침묵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존재의 뜰이 열린다"
법정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
문제는 우리가 하는 말 중에는 쓸모 있는 말보다는 쓸데없는 말이 더 많다는 것이다. 남을 비난하고 헐뜯고, 욕하고, 인격을 모독하고, 고통을 주는 말들, 그런 불필요한 말들이 날 파리처럼 사회를 떠돈다.
이런 시대에 '침묵'은 아주 중요하다. 고요한 시간, 혼자만의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필요한 말을 줄임은 물론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게 되는 '마음의 눈뜸'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단절된 침묵의 세계는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하는 신비의 세계다. 침묵의 세계에 들어 자신을 살피는 마음의 눈을 갖게 되면, 그 어느 때라도 말로 인한 실수를 줄이고, 새로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법정 스님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행복은 멀리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행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은 알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만의 행복만을 바라보고 있다.
나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타인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무엇보다 나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이와 같은 모습이야 말로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