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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Aug 13. 2020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

몇 주째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릴 때, 비를 피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집에 있으면 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서야 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단단히 준비를 해도

비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든든한 우산’이다.


비가 오는 것 같은 요즘 내 마음에,

든든한 우산이 되어 준 책이 있다.


‘법정스님의 인생응원가’에서 마주한

우산과 같은 이야기를 적어본다.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_ 정찬주 지음 _ 다연 출판사]


1) 나눔

내가 사는 곳에는 눈이 많이 쌓이면

짐승들이 먹이를 찾아서 내려온다.

밤에 잘 때는 이 아이들이 물 찾아 개울로 내려온다.

눈 쌓인 개울가를 보면 발자국이 있다.

토끼 발자국도 있고, 노루 발자국도 있고, 멧돼지 발자국도 있다.

그래서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서

해질녘이면 도끼로 얼음을 깨고 물구멍을 만들어 준다.

물구멍을 하나만 두면 그냥 얼어버리기 때문에

숨구멍을 서너 군데 만들어놓으면 공기가 통해 잘 얼지 않는다.

그것도 굳이 말하자면 내게는 나눠 갖는 큰 기쁨이다.

나눔이란 누군가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2) 개새끼

 지장이가 낳은 새끼들은 어림잡아 서른네댓 마리. 매년 한 번씩  다섯  해 동안 새끼를 낳았으니 나도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다. 겨울에 새끼를 낳을 때는 몸으로 북풍한설을 막는 것을 보았고, 새끼들의 똥꾸까지 핥아주어 청결하게 하는 것을 보고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린 생명을 사랑하는 어미개의 본능은 사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나는 어미개의 모성애를 본 뒤로는 아무리 화가 나도 ‘개새끼’라는 욕을 해본 적이 없다. 개와 함께 살면서 개를 모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3) 본질

 얼마 전의 일이다. 산방을 나서는데 텃새인 직바구리 한 마리가 현관 바닥에 죽어 있었다. 현관 유리창에 부딪쳐 죽은 것이다. 산방을 짓고 산 이후 처음 보는 일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현관 유리창에 투영된 소나무를 보고 달려들다  사고를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직박구리를 느티나무 그루터기 옆에 묻어주고는 어리석은 사람도 죽은 새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본질이 아닌 헛된 그림자를 보고 달려들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으로 받고 괴로워하고 때로는 목숨을 잃고 있는가. 사람을 취하게 하는 권력이나 돈, 명예 같은 것이 결코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본질은 아닌 것이다.


4) 행복의 조건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 모른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공통된 병이다. 그래서 늘 목이 마른 상태이다.

겉으로는 번쩍거리고 잘 사는 것 같아도

정신적으로는 초라하고 궁핍하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사랑스러움과 고마움을 잃어버리고 산다.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사랑스러움과 고마움에 있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5) 침묵

오늘날 인간의 말이 소음으로 전락해버린 것은

침묵을 배경으로 거르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소음과 같이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

말을 많이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많다.


침묵은 자기 정화의, 또는 자기 질서의 지름길이다.

온갖 소음으로부터 우리 영혼을 지키려면 침묵의 의미를 몸에 익혀야 한다.


6) 지식과 지혜

안으로 마음의 흐름을 살피는 일

우리는 이것을 일과 삼아서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최초의 한 생각에 싹튼다.

최초의 한 생각을 지켜보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지식은 기억으로부터 온다.

지혜는 명상으로부터 온다.

지식은 밖에서 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움튼다.


7) 스님의 장학금

 법정스님의 속가조카 현장스님으로부터 자세히 들은 이야기다. 주인공은 모 대학의 김현철 교수다.  조실부모하여 할머니 손에 자란 김현철은 사춘기 고교생 시절 방황하다가 상담교사에게 법정스님의 산문집 한 권을 받고는 저자인 스님을 흠모하던 차에 우연히 광주 충장로 1가에 있는 베토벤 음악감상실에서 스님을 뵈었다고 한다.

 베토벤 음악감상실에서 법정스님을  한 번 뵌 적이 있는 김현철 학생은 대학교에  입학한 뒤 등록금이 없어서 고민 고민하다가 불일암으로 법정스님을 찾아갔다고 한다. 학생의 고민을 듣고 난 스님은 그에게 등록금 고지서를 베토벤 음악감상실에 놓고 가라고 했다. 이후 김현철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스님은 그의 등록금을 대납해주었다. 뿐만 아니었다. 학업을 포기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있으면 말하라고 해서 김현철 학생은 세 명이나 소개했다. 그 학생들도 등록금 고지서를 베토벤 음악감상실에 갖다 놓고 스님의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금의 조건은 외부에 일체 알리지 않는 것이었다. 스님에 대한 고마움을  입안에 삼키고 있어야 했다. 스님이 학생들에게 직접 등록금을 주지 않은 까닭은 어린 학생들의 자존심을 배려해서였다.


8) 죽음

죽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어본 사람 말을 들어보면 그다지 괴롭지 않답니다.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생각 자체가 괴로운 것입니다. 실제로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혀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몸을 버리고 가는 것만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면 살았다가 그 생각의 사라짐과 함께 죽고, 다음 생각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따라서 순간 깨어 있어서, 다른 망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로워지려면 먼저 죽어야 합니다. 과거로부터 ‘나’의 모든 생각으로부터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자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9) 독서

사람을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집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내 영혼에 불이 켜집니다.

읽는 책을 통해서 사람이 달라집니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항상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우고 익히는 일에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독서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탐구의 지름길입니다.

배우고 찾는 일을 멈추면 머리가 굳어집니다.

머리가 굳어지면 삶에 생기와 탄력을 잃습니다.

생기와 탄력이 소멸되면 노쇠와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옛 선인들은  고전을 읽으면서 인간학을 배웠습니다.

자신을 다스리고 높이는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하도록

심신을 닦고 나서 세상일에 참여했습니다.

고전에서 배우고 익힌 소양으로 인간이 지녀야 할

몸가짐과 품위를 닦았던 것입니다.


10) 용서

 용서는 가장 큰 수행입니다. 남에 대한 용서를 통해 나 자신이 용서받게 됩니다. 또 용서를 통해서 그만큼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습니다. 달라이라마의 <용서>란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중국의 티베트 침략 전부터 달라이라마가 잘 알고 지낸 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자 달라이라마는 인도로 망명을 떠납니다. 그런데 남아 있던 그 스님은 그만 중국 경찰에 체포되어 18년 동안 감옥에 갇힙니다. 그곳에서 티베트를 비판하라고 강요받으며 온갖 고문을 당합니다. 그렇지만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 스님은 요지부동입니다.  그 후 가까스로 석방되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탈출합니다. 달라이라마가 20년 만에 다람살랑서 그 스님을 만났는데, 옛날의 얼굴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감옥에서 그토록 고초를 겪었음에도, 전혀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달라이라마가 스님에게 묻습니다.

 “스님, 십팔 년 동안 그토록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두려웠던 적은 없습니까?”

그러자 그 스님은 이렇게 답합니다.

“나 자신이 중국인들을 미워할까 봐, 중국인들에 대한 자비심을 잃게 될까 봐, 그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나 자신이 그런 처지에 있었다면 과연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용서는 가장 큰 수행입니다. 타인에 대한 용서를 통해 나 자신이 용서받게 됩니다. 그만큼 내 그릇이 성숙해집니다. 마음에 박힌 독은 용서를 통해 풀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에게 “자비와 용서를 어디서 구해야 합니까?”하고 묻습니다. 이때 부처님은 땅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땅은 언제나 자비롭고 용서하며 너그럽다.”

땅은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대지를 어머니에 비유해 ‘어머니 대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더럽히거나, 허물어뜨리거나 해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대지입니다. 땅의 덕입니다. 이런 땅을 딛고 사는 우리는 이와 같은 ‘땅 보살’에게 수시로 배워야 합니다.


<책장을 덮으며>

끝도 없이 내리던 비가 그쳤다.

많은 비로 인한 피해도 발생했다.

하지만 피해는 회복될 것이다.


빗물이 넘쳐흐르듯,

내 마음을 넘쳐흘렀던

지난 상처들을 되돌아본다.


정말 상처가 맞긴 한 걸까?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생명수와 같은 단비였는데,

내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해서

홍수가 난 것은 아니였을까?


비가 그치니

잔잔한 바람이 분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법정스님의 말씀도 그렇다.

메마른 마음을 적셔주는 이슬비 같다.

비가 그치고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과 같다.


법정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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