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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Mar 09. 2022

낀대세이

꼰대와 MZ사이의 어딘가 즈음.

40대 초반의 나는 회사에서 기성세대(or 꼰대)와 MZ세대의 중간에 있다(라고 생각한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기성세대와

안되면 되게 여건부터 조성해 달라는 MZ세대 사이에서

건전한 조직문화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된, 낀대를 위한 에세이 '낀대세이'의 기억에 남겨두고 싶은 표현들을 적어본다.

[낀대세이 _ 김정훈 지음 _ 소담출판사]


1) 적정 온도

 농경 사회에서 밥을 짓고 고기를 익히는 것도 불, 산업 사회에서 내연 기관의 발달을 이뤄낸 것도 뜨거운 불이긴 하다. 하지만 불을 소유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온도를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승자다. 가스레인지와 보일러는 대부분 갖고 있기에 온도를 최대로 올리는 것쯤은 더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신 '적정' 온도를 맞추는 게 어렵다. 연애의 온도, 관계의 온도, 삶의 온도, 요리 방법 중에도 중탕으로 조리하는 게 제일 어렵지 않은가.


2) 밈 & 짤방

 밈(meme)이라는 말이 난리다. 본디 밈이란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문화의 진화를 설명할 때 처음 등장한 용어로, 완성된 문화적 행동이나 지식 등의 정보가 다른 지성으로 전달될 때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총칭하는 단어다. 하지만 요즘 말하는 밈이란 '재미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해 특정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 사진, 또는 짧은 영상'을 말한다.


 어떤 인터넷 사전 속 밈의 주석에는 이런 말도 붙어 있다. '짤방'과 같은 개념이라고. 그런데 밈과 짤방이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다. '짤방'은 2000년대부터 급상승 기류를 타기 시작한 인터넷 문화다.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가 그 발생지다. 디시인사이드는 갤러리라는 단위로 게시판을 나누어 놓았는데, 해당 게시판의 매니저들은 갤러리라는 명칭에 충실하기 위해 사진 없이 텍스트만으로 이뤄진 게시글은 과감히 삭제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글의 짤림, 삭제를 막기 위해 적당히 관련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이미지를 첨부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짤방'의 유래다. 짤림 방지용 이미지.


3) 반찬을 빼앗아 먹던 학생들

 사실 반찬을 빼앗아 먹던 학생들 대부분은 제대로 된 도시락을 싸 줄 어른이 없는 가정환경인 경우가 많았다. 남을 괴롭히기 위해 반찬을 빼앗았다기보다는 나의 초라함을 드러내기 싫어 먼저 강한 척을 하는 학생들이었다. 급식은 그 비극을 없앴다. 반찬을 뺏기는 아이도, 뺏는 아이도 사라졌다. 반찬 종류로 인해 나뉘는 은근한 계급화도 없애 버렸다.


4) 오타쿠의 매력

 UCC의 진화 격인 유튜브는 제너럴리스트가 아닌 스페셜리스트(전문가)들의 놀이터로 자리 잡았다. 본인이 진정 좋아하는 것들을 타인에게 소개하는 스페셜리스트들과, 그에 뒤질세라 개성을 뽐내는 센스 있는 댓글들이 넘쳐나는 대자연의 놀이터. UCC 시절의 목적성을 가진 댓글러나 유저는 자연스레 필터링되는 진정성이 어린 공간이다. 그 진정성은 과거 우리가 오타쿠라고 놀려대며 무시하던 이들이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이었는지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드는 인간미 넘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탈 인간적인 요즘의 변화 속, 이 인간적인 공간은 그래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게 아닐까. 막이래.


5) 연기를 위한 Why

 살아가는 데 있어 How보다 Why가 훨씬 중요하단 걸 깨닫게 된 건 정말로 우연이었다. 부전공으로 연극 영화과 수업을 들었는데, 기초 연기 수업을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께서 해 주신 말에서 그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 연기를 잘하기 위해선 How보다 Why를 먼저 생각해야 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지보다 그 감정이 왜 생겨났느냐를 떠올리는 게 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삶도 결국 연기 아닌가. 괜찮다는 연기. 잘 될 거라는 연기. 그러니 그 연기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선 How보단 Why를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중요하지만, 왜 그런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진정성이 생긴다.


6) 물들이기

 취향을 강요하는 낀대의 특징이 있다. 자신만의 개똥철학을 남에게 늘어놓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별거 아닌 일에 혼자 의미 부여를 잘한다. 자기 생각이 절대 법이자 우주 진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고립된 방을 만들어 거기 틀어박혀선 스스로를 가둔다. 그런데 이들의 진짜 문제는 아집이 아닌 '물들이기'에 있다. 그 방에 타인까지 끌어들여 가두려 하는 거다. 자신의 눈과 귀를 막고 사는 건 자유라지만, 타인에게까지 그 속박을 강요하며 자신의 색을 물들이려는 건 폭력인 것도 모른 채.

 그들은 사실 어둡고 먹먹한 고독이 싫다. 소외되는 것이 두려워 편 가르기에 급급한 거다.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며 내 편을 만들어야 안심하는 외로운 사람들. 공존은 어렵고 소외는 무서워하는, 자신이 괴로운 게 싫어 타인의 괴로움은 외면하는, 안타깝지만 미운 사람들.


7) 자존감과 자신감

 자존감과 자신감은 다르다. 자존감은 버티는 힘이고 자신감은 나아가는 힘이다. 내가 서 있는 땅이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는 게 자존감이라면, 무너진 후에 지하에서 지상으로 다시 올라오는 힘은 자신감이다.

 자존감은 자신감과 달리 사회적 관계 내에서 필요한 힘이다. 무인도에 홀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자존감을 중요시할 필요는 없다.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반대로,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건 자존감이다.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제대로 삶을 살아 내고 있다는 자존감.

 그러고 보면 자신감은 시간, 자존감은 존(Zone), 즉 공간에 대한 메타포를 가진 게 아닌가 싶다. 얼마나 오래 걸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자신감, 내가 있는 공간에 대한 확신에 대한 문제는 자존감.


8) 용미사미

 용의 꼬리와 뱀의 대가리 중 고민하는 많은 이들 중

용의 꼬리로 고민했던 사람은

결국 뱀에서도 꼬리를 담당한단 사실을.


 결국 중요한 건 용이냐 뱀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대가리냐 꼬리냐가 아닐까 싶다.

한 번 대가리는 언제 어디서든 대가리니까.


9) 실리와 실용

 실리와 실용은 다르다. 실리란 이익이고 실용은 쓸모다. 실용이란 '잘 쓰는 행위' 그 자체에 힘을 두고 있지만, 실리란 이 행위까지 계산해 도출한 이익 값을 말한다. '실리를 따진 실용성'이란 말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실용성까지 따진 실리적 선택'이란 건 그럭저럭 수긍이 간다.


10)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남을 깎아내리는 것과 내가 발전하는 것. 전자가 더 쉽다. 하지만 여기서 전자를 선택해 버리는 순간, 당신은 언젠가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잡아먹히고 말 거다. 그러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히 누군가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자신을 발전시켜 보는 건 어떨까. 


[책장을 덮으며] 

 요즘 젊은 사람들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나 때는 안 그랬는데 말이야~'라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그 말이 맞다면, 인류는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는 단 한 번도 뒤로 후퇴한 적이 없다. 결국 젊은 사람, 즉 신세대는 항상 기성세대보다 발전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다만 과거 속에서 살면 안 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결국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기성세대가 된다. 기성세대가 되더라도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는 힘. 우리 모두에게는 미래 지향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낀세대도 눈치 볼 필요 없다. 내가 생각하는 맞는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 기성세대는 과거에 있고, 젊은 세대는 미래를 추구한다면, 낀 세대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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