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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Mar 16. 2022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강한 것은 하나를 이기지만, 다정한 것은 모두를 이긴다.

 회사 직원이 폭행을 당했다. 모회사 관리자가 우리 관리자를 때린 것이다.

공간 분리를 요청했다. 돌아온 대답은 내 눈과 귀를 의심하게 했다.

"공간 분리가 그쪽의 결정사항이라면, 공간 분리는 그쪽에서 하면 되겠네요. 해당직원(=피해자)를 언제까지 다른 곳으로 보낼 것인지 결정해서 보고해 주세요. 그리고 때린 건 우리 직원이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쪽 직원이 맞을 짓을 했네요. 관리자들 교육 똑바로 하시고 교육한 결과도 보고해 주세요."


 원인은 둘째 치더라도, 폭행에 대한 사과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

피해자의 입장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일까? 말 한마디조차 이렇게 공격적인 회사 생활에 어려움을 느껴가던 시기에 접하게 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다정한 이야기들을 적어본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_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_ 디플롯 출판사]

1) 최상위 포식자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는 무기용으로 사용할 뾰족한 날과 조각용 연모, 절삭용 날, 구멍 뚫는 날을 제작했다. 뼈로 만든 작살, 낚시에 쓰일 그물, 조류나 덩치 작은 포유류를 사냥할 덫도 만들 줄 알았다. 막강한 사냥 기량을 가졌음에도 중간 포식자 이상은 되지 못했던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웬만한 포식자의 공격에도 끄떡없을 신기술로 무장한 호모 사피엔스가 최상위 포식자 지위를 차지했다.


2) 친화력

 우리는 걸음마를 떼거나 말을 배우기 전부터 이러한 기술을 습득하는데, 이것이 곧 복잡한 인간관계와 문화적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 된다. 친화력은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게 하며, 지식을 세대에 세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게 해 준다. 또 복합적인 언어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문화와 학습의 기반이 되었으며, 친화력을 갖춘 사람들이 밀도 높게 결집했을 때 뛰어난 기술을 발명해왔다. 다른 똑똑한 인류가 번성하지 못할 때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특정한 형태의 협력에 출중했기 때문이다.


3) 똑똑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발견한 것은 똑똑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감정은 보람차거나 고통스럽다거나 매력적이라거나 혐오스럽다고 느낄 때 아주 큰 역할을 수행한다.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를 선호하는 성향은 연산능력 같은 인지를 형성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타인의 의도나 욕망, 감정 등 인간에 대한 이해와 기억력, 전략 능력이 아무리 고도로 발달하더라도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과 결합하지 않으면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4) 깅그리치의 전술

 1995년 조지아주에서 뉴트 깅그리치(Newt Gingrich)라는 젊은 공화당 의원이 40년 이상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겠다는 계획을 들고 나왔다. 의회가 작동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패권을 쥐고 있는 당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신질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구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말 하원의장 깅그리치의 전술은 노골적으로 공화당과 민주당의 우호적 관계를 어렵게 만들거나 심지어는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 정책을 제도화하는 것이었다. 상임위에서건 의원석에서건 깅그리치는 의사당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들과 협조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공화당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이나 민주당에 대해서 발언할 때 "부패했다"거나 "역겹다" 같은 혐오감을 유발하는 어휘를 사용하도록 권고받았다. 깅그리치는 민주당 의원들을 나치에 자주 비유했다. 깅그리치가 공화당을 이렇게 적대적인 영토로 몰아가자 민주당의 많은 의원도 뒤질세라 맞불을 놓았다. 막후 협상 같은 것은 사라졌고, 초당파적 모임이며 회의도 없어졌다. 깅그리치가 도입한 하원의 규범이 결국에는 상원까지 접수했다.

 조 바이든(Joe Biden)이 존 매케인(John McCain)과의 관계에 대해서 한 말은 그때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1990년대에 존과 나 둘 다 논쟁에 참여하곤 했죠. 우린 민주당 쪽으로든 공화당 쪽으로든 건너가서, 글자 그대로, 옆에 나란히 앉아서 얘기를 나눴는데... 그걸... 질책하더군요. 양당 지도부가요. 논쟁 중에 그런 식으로 말을 걸고 친한 티를 내면 어쩌냐는 거죠. 1990년대 깅그리치 혁명 이후의 일입니다. 지도부는 우리가 같이 있는 걸 원치 않았어요. 그때부터 분위기가 바뀐 겁니다."

 의사당에서 지켜오던 양당 간의 상호 예절이 사라지면서 협상과 타협을 가능하게 했던 수단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여당이 정치적 계산하에 정부 예산을 특정 지역구에 투입하는 사업인 포크배럴(pork barrel) 낡은 관행이 되었다. 쓸모없는 관행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포크배럴이 중대 법안을 관철하는  결정적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정치학자  켈리(Sean Kelly) 2010년의 포크배럴 예산집행금지안이 의회를 움직이게 하는 기어를 잠가버렸다고 생각한다.  금지안이 시행된 뒤로 매년 통과되는 법안 수가 100 넘게 감소했다. 정책 입안자에게 협상의 동기가  당근이 없다면 성공 확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5) 마음이론

 생후 9개월 전의 아기는 엄마가 손짓하면 그 손가락을 볼 가능성이 높다. 생후 9개월이 지나면 엄마의 손가락 끝에서 이어지는 가상의 선을 따라가기 시작할 것이다. 생후 16개월 무렵에는 손짓을 하기 전에 엄마가 자기를 보고 있는지부터 확인할 것이다. 엄마가 보고 있어야 손짓이 소용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두 살 무렵이면 타인이 본 것과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된다. 또 그들의 행동이 어쩌다 나온 것인지 혹은 의도한 것인지 구분할 줄도 안다. 네 살 무렵에는 타인의 생각을 아주 영리하게 추측할 수 있어서 난생처음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사람이 누군가에게 속으면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손짓은 심리학에서 '마음이론(Theory of Mind)'이라고 부르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시작되는 관문이다.


6) 보노보의 전쟁 없는 삶

 보노보는 다정한 동물로 찬양되기도 하고, '전쟁 말고 사랑'이라는 모토에 걸맞은 히피 유인원이라고 조롱당하기도 한다. 특히 많은 과학자가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침팬지를 우리의 거울상으로 더 적합하다고 믿으면서 보노보는 오랜 기간 무시되어왔다. 실제로 우리가 가진 거의 모든 특성이 침팬지에게 있다. 밝은 면도 어두운 면도, 우리가 그러하듯이 침팬지에게도 빛나는 지능과 악마 같은 장난기, 다정하다가도 순식간에 살해를 저지를 수 있는 잔학성이 공존한다.

 그렇다고 보노보를 무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유인원의 친척 가운데 오직 보노보만이 우리를 괴롭혀온 치명적인 폭력성에서 벗어난 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 탁월한 지능과 지성을 뽐내는 인간이 하지 못한 것을 보노보가 성취한 것이다.


7) 청소놀래기

 청소놀래기는 더 큰 물고기의 기생충을 청소하는 소형 어류다. 청소받는 고객 물고기는 자기를 청소하는 청소놀래기를 얼마든지 먹어치울 수 있지만 절대 그러지 않는다. 청소 기지(물고기들이 청소를 위해서 모이는 영역)를 관찰해보면, 청소부들이 청소하는 동안 포식자 고객 물고기는 수동적으로 변해(청소놀래기는 물론 청소 기지에 있는 다른 모든 물고리를 향한) 공격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한 물고기는 끼니를 챙기고 다른 물고기는 기생충을 제거하는, 아름다운 협력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8) 엄마곰 호르몬

 엄마 곰이 가장 사랑에 넘치는 순간 즉, 아기 곰과 함께 있는 순간이 한편으로는 엄마 곰이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일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라도 무의식적으로 아기 곰에게 위협이 되는 행동을 했다가는 엄마곰이 악몽 속 존재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것이 엄마 곰의 사랑이다.


9) 혈통 좋은 개

 19세기 말에 최초의 개 쇼가 열렸는데, '순수'혈통을 개량하는 데 쓸모 있어 보이는 '우수한' 형질을 지닌 개를 선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행사였다. 대회에서 수상한 개의 주인은 특권과 상당한 상금을 받았다. 개는 사고파는 상품이 되었고 품종마다 무엇이 이들을 우수하게 만들었는지에 얽힌 사연이 따라붙었다(특히 족보 없는 개와 비교되는 경우가 많았다). 스코틀랜드의 혈통견 전문 사육가이자 작가였던 고든 스테이블스(Gordon Stables)는 1896년에 이렇게 썼다. "잡종견이나 데리고 다니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로써 어떤 개가 우수한 종자라거나 어떤 개가 열등한 종자라고 하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순식간에 수상 이력이 있는 혈통 좋은 개의 후손이나 유행하는 품종의 개를 소유하는 것이 사회적 신분의 표시로 자리 잡았다. 혈통이 잘 보존된 개를 키우는 것은 권력과 높은 직위를 뜻하게 되었다. "혈통이며 품종이 서열과 계급, 전통의 표본이 되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날조된 것이었지만." 유럽의 혈통견은 신분과 계급제에 병적으로 집착하던 문화의 산물이었으며, 이 집착에서 나온 것이 우생학 운동이었다.


10) 인간의 주적은 인간이다

 인간의 3분의 1은 암으로 죽는데, 야생 동물은 암을 거의 앓지 않는다. 가축과 인간만 자주 암을 앓는다. 19세기까지 5세 미만의 아동 절반이 감염병으로 죽었다. 역시 가축화된 종은 감염병을 많이 앓는다. 인간은 개와 마찬가지로 치매를 앓으며,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강박장애 등의 정신장애도 인간과 가축에서 흔히 발견된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성인 4명 중 1명이 정신장애를 앓는다. 외집단 혐오와 차별, 살인이나 전쟁도 그렇다. 신석기시대 초기, 어떤 지역에서는 성인의 약 절반이 다른 인간의 손에 죽었다. 지금도 우리의 주적은, 늑대가 아니라, 인간이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10명이 늑대에 물려 죽는데, 살인 사건은 매년 40만 건에 달한다. 전쟁 사망자를 뺀 수치다. 이런 비극의 이면에 자기 가축화가 자리하고 있다.


[책장을 덮으며]

 몇 개월 뒤면 직장생활이 만으로 15년이 된다.

지난 15년을 되돌아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악하게 대했을 때는 내가 편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매우 정글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밟고 올라가는 아수라장과 같다.

다른 사람을 밟지 않자니, 결국은 내가 밟힌다.

그래서 모두가 서로를 밟고 있는 형국이다.


 그 속에서도 나는 최대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자 노력한다.

이야기를 들어주고자 노력한다.

"그냥 하시라구요!"라며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지만,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경청하고자 노력한다.


 다정한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다정한 길은 느리다. 빠른 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느낌이다.

상대방을 정복하면 혼자 생존할 수 있지만,

상대방과 함께 가면 세대를 거듭해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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