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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Apr 14. 2022

어른의 대화법

 회사 생활을 하면서 여러 상사를 모셨습니다. 그중에서는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항상 온화했습니다. 거친 공격의 언어가 오가는 와중에도 그분은 한결같이 차분하고 존중의 언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그분을 깎아 내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런 점을 다 아시는 와중에도 품격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대화법을 보고, 직장 상사가 아닌 인생의 어른으로서 존경했습니다.

어른의 대화법이란 무엇일까요? 회사에서 날이 선 날카로운 언어들을 접하다 보니, 책 제목에 매료되어 순식간에 읽게 된 '어른의 대화법'의 소중한 교훈들을 적어 봅니다.


[어른의 대화법 _ 임정민 지음 _ 서사원 출판사]


1) 메타인지

 미국 발달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H.Flavell은 1976년 처음으로 '메타인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인간의 인지 능력 중 메타인지 발달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지(Cognition)는 어떠한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여 안다는 뜻이고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인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인지 과정을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하고, 발견하고, 통제하는 정신작용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을 뜻한다.

미국 콜롬비아대학 심리학과 리사 손(Lisa Son) 교수는 "메타인지 능력은 학습하며 스스로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가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메타인지가 높은 사람은 소통을 할 때도 자신이 잘 모르는 상황이나 상대의 모습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지레짐작하여 오해를 하지 않는다. 또 사실과 판단을 구분하여 말한다.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워 주기 위해 문답의 방법으로 사상을 전파했는데 이것이 메타인지를 강화시키는 훈련이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어록은 메타인지에 대한 선현의 가르침인 셈이다. 자신을 모르고, 상대를 모르고,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원활한 소통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 우리를 위한 말

 가족은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사회 공동체이며 이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안정과 소속감을 느끼고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그러니 가족은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배우자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직원이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상대가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우리는 선한 의도로 말을 시작한다. 하지만 상대에게 내 마음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소통은 이루어지지지 않는다. 결국, 서로에게 남는 건 얼룩진 상처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나를 위한 말'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말'을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3) 티키타카

 '티키타가(Tiqui-taca)'라는 용어를 아는가? 티키타카는 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축구에서 짧은 패스를 빠르게 주고받는 경기 전술을 일컫는데, 최근에는 말이 잘 통해 빠르게 주고받는 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티키타카에는 '상호작용이라는 대화의 속성'이 제대로 담겨 있다. 대화는 내가 상대방에게 말을 걸고 상대가 대답을 했을 때 일어나는 의사소통이다. 상호작용이자 교류(Transaction)인 것이다.


4) 갈등

 갈등의 어원이 흥미롭다. 갈등(葛藤)은 '칡 갈(葛)', '등나무 등(藤)'을 써서 '칡과 등나무'라는 뜻이다. 칡과 등나무는 동아줄 같은 튼튼한 줄기가 다른 나무들을 휘감으며 자라는데 시계 반대 방향인 오른쪽으로 감아 오르는 칡과 시계 방향인 왼쪽으로 감아 오르는 등나무가 서로 얽히고설켜 결국 올라가지 못하게 되는 모습에서 갈등의 뜻이 유래되었다. 갈등은 일이나 사정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화합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이며 상충되는 견해, 처지, 이해 따위의 차이로 생기는 충돌을 의미한다. 즉, 갈등은 '다름'에서 비롯된다.


5) 봉준호 감독

 <마더>를 찍을 때 일이다. 주인공인 김혜자는 울분을 토하는 신(Scene)을 무려 30번이나 찍었다. 봉준호 감독은 지칠 대로 지친 김혜자에게 다가가 "잘하셨어요~ (잠시 배우를 다독이며) 16번과 지금(30번) 중에 고를게요."라고 말한다. 나는 그가 상대를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 쓰고 배려하는 지를 이 말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국민 엄마' 칭호를 받는 김혜자는 60년이 넘는 연기 경력에 다수의 연기대상을 수상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대배우이다. 그런 그녀가 한 신을 30번이나 찍었는데 "아까 한 게 더 좋았으니까 16번으로 할게요."라는 말을 들었다면 기분이 어떨까? 속으로 '아니, 16번으로 할 것 같으면 진작 그걸로 하지. 왜 계속 찍은 거야! 일부러 고생시키는 거야, 뭐야?'라며 잔뜩 화가 났을 법하다. 물론 최종 선택은 감독의 권한이고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결정이다. 하지만 상대가 기분 상할 수 있는 지점을 알고 "16번과 30번 중에 고를게요."라며 열연한 배우를 배려해서 말한다.


6) 화끈이 상사 대처법

 직장 상사와의 소통으로 고민을 토로하는 분이 있었다 해외업무 특성상 영어로 말할 때는 당당하게 얘기를 하는데 우리말은 존댓말과 존칭어가 발달되어 있다 보니 우리말로 토론을 할 때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장유유서, 상명하복과 같은 뿌리 깊은 전통적 인간관이 지배적인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나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항상 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목소리부터 높이며 "너 몇 살이야!" "어쭈! 네가 그걸 알아?"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아... 이분은 화끈이구나!'라고 알아차리면 된다. 남들에게 명령하고 지시하는 권위적인 소통 방식을 가진 화끈이 캐릭터의 상사에게는 내가 끄덕이 캐릭터가 되어 상사를 잘 받아 주고 맞춰 주는 것이 필요하다.


7) 수적석천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의 수적석천(水滴石穿)'이라는 말이 있다. 물이 돌을 뚫을 수 있는 이유는 '물의 힘'이 아니라 '돌을 두드린 횟수' 때문이다. 미미할지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매 순간 사람들과 수없이 많은 소통을 하며 살아가기에 일상에서 수시로, 매일매일 노력한다면 작은 시도들이 모여 결국 인간관계에 큰 변화를 줄 것이다.


8) 부탁과 강요

 보통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은 상대에게 잘 말하는데 상대가 기꺼이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도록 말하는 방법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래 놓고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상대와 소통이 안 된다고 결론지어 버린다. 만약 상사와 직원,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처럼 상대의 부탁에 응하지 않았을 때 어떠한 피해나 처벌을 받게 될 것이 예상된다면, 이것은 위계나 위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상대가 응한 것으로 이때의 부탁은 강요가 된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것이 강요였는지, 부탁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9) 갑질

 갑질이란 권리상 쌍방을 뜻하는 갑을(甲乙)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에 특정 행동을 폄하해 일컫는 '~질'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부정적인 어감이 강조된 신조어이다. 갑질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우월한 신분, 지위, 직급, 위치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행동을 말한다.


10) 가출의 이유

 부모는 언제나 나를 믿어 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며, 잘못을 용서해 주고 따뜻하게 안아 주는 사랑과 신뢰가 있다면 갈등이 있어도 가출까지 감행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출을 감행했다는 것 자체는 이미 집이 나에게 안전지대가 아니고 부모님은 나를 보호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을 외부에서 찾고 도움을 요청하려는 것이다. 가정이 아이들에게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집에서 나오는 것이다. 집을 나온 아이들은 외부에서 도움을 찾다가 나쁜 길로 빠지고 범죄의 타깃이 되고 부정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책장을 덮으며]

 직장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징계를 받은 직원이 있습니다. 그 직원은 아직도 '본인은 직장 내 괴롭힘을 한 적이 없다. 부하 직원들이 잘 못하는 것은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직원은 '통제적인 부모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함께 일하는 조직 구성원이 일 처리가 깔끔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양육적인 부모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직원을 조용히 불러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본인의 기대치는 어느 정도인지? 어떤 부분에서 그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할 것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징계까지 받은 직원은 결국 본인의 잘 못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조직으로 옮겨가 협력업체 관계자들로부터 '갑질'을 한다는 엄청난 컴플레인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본인은 아직도 인정하지 못합니다. 협력업체가 일 처리를 똑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은 제대로 일처리를 해달라는 말을 했다고 항변합니다.

 그 직원에게 '어른의 대화법' 책을 선물해 주어야겠습니다. 이미 수십 년이 넘는 기간을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며 살아왔으니 성향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폭언, 욕설이 아니더라도 대화의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어른의 대화법' 책에서는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결국 좋은 대화를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합니다. 경청해야 합니다. 경청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은 상대와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태도는 겸손해야 합니다. 옳은 말을 한다면 굳이 상대방에게 강요를 하지 않아도 상대가 수긍하고 들을 것입니다. 강압적인 태도는 건전한 대화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최근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몰아붙였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말해도 되었을 텐데, 저의 감정 컨트롤이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는 물론 가정에서도 보다 차분하고 편안하게 말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것이 어른의 대화법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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