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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Jan 06. 2023

최재천의 공부

공부란 무엇일까요?

인간은 공부를 합니다.

인간의 공부는 동물의 학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동물의 학습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인간의 공부는 성장과 발전을 위한 것입니다.


공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공부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을 알게 해 준 '최재천의 공부'의 교훈적인 이야기들을 적어봅니다.


[최재천의 공부 _ 최재천 지음 _ 김영사 출판사]


1)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

 제가 쓴 칼럼 중에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있어요. 서양에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36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이지만, 아는 것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매우 어렵고 시간이 걸리죠. 제가 미국에 살면서 알게 된 게 있어요. 그들은 끝까지 토론하고 합의를 보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오래 토론하고도 실행 단계에서 또 시간을 무지 씁니다.


2) 진행자의 역할

 미국에 살 때 즐겨 보던 TV 프로그램 테드 코펠(Ted Koppel)이 진행하는 <나이트라인. Nightline>이었습니다. 초대 손님 두 명과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인데요. 제 눈에 들어온 진행 방식이 있어요. 코펠이 한 사람에게 "이 문제가 심각해서 질문하는데 잘 생각해서 답해달라"하면서, 그 옆 사람에게 간단한 질문을 툭 던지며 먼저 답해달라고 합니다. 어려운 답변을 해야 하는 이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는 거죠. 다짜고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재촉하면 정리가 안 된 상태로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시청자들을 고려한 진행이라고 생각해요. 진행자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게끔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3) 창의력

 긍정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그거였어요. "창의력은 혼자서 몰입한 시간이 만들어낸다." 자기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고, 홀로 집중하며 만들어낸 작업을 사람들은 '창조적이다!'라고 감탄한다고요. 혼자만의 시간이 쌓여 세상의 꼭짓점을 끌고 가는 아이디어나 결과물이 나오지요.


4) 미국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

 피터에게 가장 먼저 배운 영어 표현이자 '삶의 수업'이 "You never know until you try"예요. "우리는 해보기 전에 절대 알 수 없어"라면서 미국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이라고 설명했죠.


5) 책 읽기와 글쓰기

 책 읽기에 대해 강연할 때 저는 코끼리가 똥 누는 사진을 화면에 띄웁니다. 코끼리 똥 실제로 보신 적 있으세요? 어마어마합니다. 들어간 게 있어야 나오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은 독서를 안 하는데도 글을 제법 쓴다고 말해요.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많이 읽은 사람들이 글을 잘 써요. 읽은 내용을 기억해서 베끼는 게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문장이 탄생합니다.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이 글을 잘 쓰는 사례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6) 자연에서는 꼴찌만 아니면 삽니다.

 자연에서는 꼴찌만 아니면 삽니다. MBC 예능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에서는 매주 일곱 명이 노래를 부르고 한 명만 떨어졌어요. 만일 일곱 명이 노래를 부르는데, 한 명만 붙고 다음 주에 그 사람만 나올 수 있다면 모두가 별의별 모략을 다 썼을 겁니다. 노래 부르는 중에 괜히 돕는 척하다가 흔들리게 만든다든가 그요. 한 명만 떨어지니까 아무도 자기가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떨어지는 한 명이 발표되면 마치 자기가 떨어진 듯 달려가서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훈훈한 프로그램이 됐죠.

 실제로 자연계가 그렇게 운영돼요. 가장 적응을 잘한 하나만 살아남고 다 죽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시대에는 아무도 안 떨어져요.


7) 아이에게는 '묻지 마 투자'만 하면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무조건 '묻지 마 투자'만 하시면 됩니다. 자기 아이보다 키가 더 큰 부모님이 있으면 손들어보세요. (그럼 아무도 못 들어요.) 아이들에게 '얘, 너 그거 해서 밥이나 먹겠냐'하시는 아버님, 솔직히 대학 다닐 때를 생각하고 말하신 거죠? 20년 전에 세상을 바라보던 눈으로 지금 아이와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키도 더 작으면서."


 기성세대는 앞에 있는 키 큰 아이 너머로 다음 20년을 내다봐야 합니다. 그러면 40년을 내다봐야 하는데, 키 큰 아이 뒤에선 잘 볼 수가 없죠. 아이들은 20년만 내다보면 돼요. 아이들은 지금 그 20년 앞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유를 묻지 말고 무조건 도와주는 겁니다. 제가 보기엔 그게 답이에요.


8)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인간

 인간만은 유일하게 자기가 직접 해보지 않은 일을 글과 말을 통해 배워서 하잖아요.

 우리는 매 세대가 원점으로 돌아가 똑같은 데서 출발하지 않고 앞선 세대가 멈춘 곳까지 출발선을 들고 가서 거기서부터 나아갑니다. 지구에 있는 어떤 생물도 인간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어요. 그들의 뇌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 해도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체제가 없으니까요.


9) 2인자에 집중하자

 지금은 퇴임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이만갑 교수님이 늘 하셨던 말씀이 "2인자에 집중하자"입니다. 우리 고대 역사를 보면 2인자가 1인자를 꺾는 역사였다고 짚으셨습니다. 1인자가 2인자를 품지 않고 항상 독식하니까, 최측근인 2인자가 반란을 일으켜 1인자를 제거하고 올라서는 역사를 반복했어요. 그래서 최측근에게 배반당하는 사건이 우리 역사에 많습니다. 매우 동물적 방식이에요. 우두머리가 분배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2인자가 3인자, 4인자와 손잡고 1인자를 거꾸러뜨리는 방식이죠. 그분이 연구한 결과를 보면 다른 나라보다 유독 우리 역사에 그런 사건이 많습니다.


10) 리더가 입을 열면.

 리더가 입을 열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아요. 집단 지성을 이루고 창의성을 끌어내려면, 리더는 어금니가 아프도록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제가 국립생태원을 연구 중심의 센터로 만들겠다는 포부로 초대원장을 맡았는데요. 서천에 내려가보니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 전시를 열어야 했습니다. 전시 개막일이 3주도 채 남지 않았는데, 직원들이 준비해놓은 짜임새가 아쉬웠어요. 할 수 없이 한마디를 했습니다. 시간이 촉박하지만 이런 것도 생각해보면 어떠냐고 넌지시 건넸죠,


 그랬더니 며칠 후에 기획회의를 하는데, 그동안 논의했던 내용을 다 버리고 제가 말한 내용으로 정리해서 가져왔더라고요. "아니, 그동안 논의하셨던 내용은 다 어디 갔어요?"라고 물었더니, "원장님 말씀이 가장 좋아 보여서 그 방향으로 잡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조직의 장이 말하면 모든 게 무너져요.


 제가 국립생태원 경영자로서 약간의 성공을 거뒀는데, 그 성공의 가장 큰 동력이 바로 제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튜터를 하면서 몸에 밴 태도예요. 누군가 저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달라고 제안하면 말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른 분들이 이야기를 꺼내도록 듣기만 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던 방법이기도 하고요.


[책장을 덮으며]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책인사님은 왜 이렇게 책도 많이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하세요?"

저의 대답은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합니다.'였습니다.

지식의 총량이 증가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이 알아야 할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줍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인간은 더 많은 지식을 얻게 되지만,

역설적으로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동안 본인이 알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출생을 통해 생물학적 삶을 얻게 되었다면,

공부를 통해 정신적 삶을 얻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공부를 통해 한 층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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