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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Jun 19. 2023

대한민국에 인사는 없다

인사가 중요한 이유

 초대 인사혁신처장인 이근면 처장님의 '대한민국에 인사는 없다'를 읽었습니다.

폐쇄적이었던 공무원 조직을 변화시키기 위한 인사혁신처의 초대 처장으로 민간출신이었던 저자 이근면 처장님이 부임하고, 공무원 조직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었던 내용, 그리고 인사(HR)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 조직을 운영하는 리더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적어봅니다.

[대한민국에 인사는 없다 _ 이근면 지음 _ 한국경제신문]


1) 벼룩과 코이 (P.20~21)

 벼룩은 60센티미터를 뛸 수 있는데 30센티미터 컵에 가둬놓으면 몇 번을 부딪힌 후에 컵을 치워도 28센티미터만 뛴다고 하는 <광수생각>이라는 만화를 본 적이 있다. (중략)

 코이(비단잉어)라는 물고기는 어항에 담아놓으면 5~8센티미터, 연못에 놓으면 15~25센티미터, 강에서 자라면 1미터 가량의 길이로 성장한다고 한다. (중략) 우리는 이들이 어항이 아닌 강에서 성장하게끔 해줘야 한다.


2) 순환보직제도 (P.25)

 나는 이 순환보직을 접할 때면 한 번씩 돌아가며 센터포워드를 해보는 동네축구가 자연스레 연상되곤 했다. 포지션별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소화하는 전문화된 프로축구팀과 센터포워드, 풀백, 골키퍼를 서로 돌아가며 해보는 동네축구팀이 맞붙었을 때의 결과는 자명한 것 아니겠는가.


3) 잡종강세 (P.49~50)

 멘델은 유전법칙에서 유사형질 간의 동종교배는 열성인자를 낳고, 이질형질의 이종(잡종) 교배에서 태어난 1세대는 우성형질만 나타난다고 했다. 이를 잡종강세(Heterosis)라고 부른다. 역사도 오래전부터 멘델의 유전법칙을 증명해 왔다. 순혈주의를 고집한 조직은 폐쇄성이 강해지고 종국에는 퇴보와 멸망을 가져왔다. 근친상간이 만연했던 신라의 성골과 고려 문벌귀족 사회는 결국 붕괴됐다. 그러나 이종(잡종)을 수혈해 개방성과 다양성을 높였던 시대는 달랐다. 고구려와 백제, 발해의 전성기는 한민족과 읍루(말갈), 거란, 대방.낙랑(한족) 등의 이민족 결합이, 통일신라와 고려 광종~성종대의 태평성대 역시 처용, 쌍기를 필두로 한 이방인이 그 동력을 더했다.

 세계적 기업 구글과 애플의 성장은 지구촌 방방곡곡의 우수한 인재를 발굴해 영입하고 성공적으로 잘 활용한 결과다.


4)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공간 (P.65)

 세계적인 IT 기업인 구글, 애플, 페이스북 사옥은 칸막이가 없는 그야말로 뻥 뚫린 공간이다. 어느 자리에서 근무를 하든지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 심지어 근무 시간에 수영장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직원들도 있다고 한다. 이것도 부족해 구글, 애플 신사옥의 외벽은 거대한 유리로 만들고 내부는 숲으로 채우겠다고 한다.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공간이 직원과 회사에 미칠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5) 잔디론 (P.85)

 공무원의 문화를 가꾸는 것은 좋은 잔디밭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잡초를 뽑지 않으면 좋은 잔디가 잘 자라지 않는다. 잡초를 뽑아야만 질 좋은 잔디가 죽지 않고 잘 자랄 수 있고 좋은 잔디밭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목적은 좋은 잔디밭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서 뛰어놀 국민을 위해서다. 하지만 국민들이 고용한 일꾼인 공무원을 꾸짖기만 한다고 해보자. 일꿀들이 어디 신나서 일하겠는가.


6) 경력직 인재에 대한 관심 (P.104~105)

 사실 민간의 경력을 쌓은 우수한 인재가 경력직으로 들어와 가치를 창출하려면 이들에 대한 보호 조치와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단순히 채용 인원을 늘린다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철저한 관리(management)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다. 조직과 조직 구성원이 이에 적응하는 데는 그만큼 시간이 걸리겠지만 강한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경우 조직은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굴러온 돌'이 반드시 '박힌 돌'을 빼내는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주위의 흙을 튀기면서 땅을 다지고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온 강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아니라 긴장을 불어넣어 생존력을 높이는 존재, 다시 말해 개혁과 혁신의 단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효과와 장점을 믿고 지속적으로 나아가다 보면 공직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 혹여 '굴러온 돌'이 안착하지 못하고 다시 밑으로 굴러가게 된다 하더라도 그 '굴러온 돌'이 남긴 족적 자체가 변화와 혁신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7) 평판인사 (P.120)

 "평판만으로 인재를 등용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집니다." 주나라 공신인 태공망이 집필한 <육도>에 나오는 대목이다. 태공망은 그 사람의 실력은 검증해보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평판만 듣고 등용하게 되면 간신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이들이 패거리를 이뤄서 활개를 치게 된다고 문왕에게 직언한다.

 이로부터 무려 3000여 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태공망의 충고는 유효하다.


8) 맨파워 & 휴먼리소스 (P.190~191)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준비를 해나가야 할까? 먼저, '사람'에 대한 인식을 재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람을 일컬을 때 맨파워(manpower), 휴먼 리소스(human resource)라는 개념으로 이해해 왔다. 초기 산업화 시대 노동력의 단위로 사람이 활용되면서 맨파워 개념이 등장했고, 마찬가지로 후기 산업화 시대에는 지식의 고도화 과정을 통해 지식의 양에 차이가 생겨나면서 휴먼 리소스라는 개념이 나타났다. 맨파워가 호스파워(horsepower)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물리적 노동력에 따라 사람의 노동가치를 평가해 왔다면, 휴먼 리소스는 생산의 3대 요소인 토지, 자본, 노동의 수준에서 논의되는 생산성의 요소로서 성과를 측정했다. 이때 성과의 차이를 결정짓는 주요인은 지식의 격차로 인해 발생되었다. 지식의 차이가 나타나고 그 결과 사람의 지식수준을 높이는 '교육'이 산업화 시대의 국가 경영과 발전 전략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사람을 단순히 교육의 대상 또는 노동의 시각으로 본다든지 수월성 교육, 평준화 중 어느 방식이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가가 화두가 되었던 것도 그러한 시대적 흐름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사람의 성과는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손 안의 백과사전이라 할 스마트폰 사용이 일반화되는 등 고도의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지식은 누구에게나 평준화되어 이제 더 이상 지식의 차이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양(quantity)에서 질(quality)로, 질에서 가치(value)로 시선이 옮겨가고 있다. 이른바 가치의 시대, 휴먼 밸류(human value)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교육 또한 지식 습득형에서 지식 활용형으로, 즉 창조적 인재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9) 관료제의 장단점 (P.200~201)

 관료제 시스템을 한 번 돌아봤다. 학문적으로야 관료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관료제의 특징이라면 출신이 아니라 능력을 바탕으로 유능한 사람을 채용한다. 특정인의 독단적 명령이 아닌 민주적 절차에 따라 만들어진 법과 규정에 의해 공식적이고 합법적으로 움직인다. 피라미드 형태 지휘 계통에 의해 서열화되어 있다. 책임 소재가 명확하며 문서로 업무를 처리한다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기존 야경국가에서 행정국가. 복지국가로 정부의 역할도 확대되어 오면서 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관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의제 설정에서 평가에 이르는 정책 관계상의 모든 활동이 행정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관료의 영향력도 그만큼 확대되어 왔다.

 관료제가 국가 발전을 견인하는 주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직사회의 여러 문제를 배태한 것도 사실이다. 형식주의, 선례 답습, 직위를 이용한 이른바 '갑질', 개인의 창의성 발휘 곤란, 부처 할거주의 등의 문제들이 그 예다. 관료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시대 흐름 속에서 과연 미래에도 현재와 같은 관료제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이며 진화하지 않으면 공동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행정(administration)의 어원을 살펴보면 라틴어의 'ad(~으로, ~에)'와 'ministatio(봉사)'라는 두 단어가 결합된 말이라고 하는데 봉사라는 어원의 의미가 오늘날 공직사회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게다가 공공행정(public administration)이 아니던가. 


10) 비주류가 살아남는 방법 (P.239~240)

 비주류는 패거리가 없어 누군가에게 묻어가기 어렵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비주류가 살아남으려면 첫째, 탁월한 능력으로 무장하고 유지해야 한다. 끊임없는 단련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즉 실력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둘째, 등 뒤를 조심해야 한다. 허점이 있는 순간 뒤를 지켜줄 아군이 없다. 약점이 있더라도 그 약점을 드러내선 안 된다.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스스로에게 떳떳하면서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비주류는 외로운 법이다. 일반 전국시대의 검객인 미야모토 무사시가 비주류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칼 한 자루와 함께 철저히 혼자였던 미야모토 무사시는 절대 등을 보이지 않았다. 셋째, 작은 공에 만족해야 하고 큰 공을 탐하는 순간 주류의 집단적 공격을 받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를 위안해야 한다. 비주류의 퇴장은 늘 쓸쓸하기 마련이다.


[책장을 덮으며]

 '공무원 같이 일한다.'라는 말은 칭찬일까요? 비난 (또는 비아냥)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아무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공무원 조직이 그 어떤 조직보다 폐쇄적이고 창의력이 적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재들이 모인 공무원 집단은 왜 이렇게 폐쇄적인 조직이 되었을까요? 

 저는 공무원들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폐쇄적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민간출신의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의 책 제목인 '대한민국에 인사는 없다'는 그래서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조직을 살리는 첫 번째 방법은 좋은 사람을 채용해서, 창의력을 바탕으로 마음껏 성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그에 맞는 보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료주의와 기수주의에 따라 성과보다는 근속연수가 중요하고, 성공보다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평가방식이 된 공무원사회는 이와 같은 문화가 바꾸지 않는다면 발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님은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공무원 사회는 경직되어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이 다소 저자인 이근면 처장님의 공적을 기록하는 것에 치우친 감도 있었지만, 대한민국 공무원 조직뿐만 아니라 인사와 관련된 훌륭한 인사이트를 많이 제공해 준 의미 깊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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