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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Jun 24. 2023

대리사회

주체적이라고 생각했던 삶도, 대리로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과 책으로 유명한, 김민섭 작가님의 '대리사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벌이가 끊기면, "대리라도 하지, 뭐~!"라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가진 것 하나 없어도(=물론 핸드폰과 운전면허는 있어야겠지요.)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리운전은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일인 것 같기는 합니다. 지방대 시간강사로 일하며 한 때는 '교수님'으로 불리던 저자가, 대리운전 '기사님'으로 일하며 보고 느낀 점들을 적은 '대리사회'의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 봅니다.

[대리사회 _ 김민섭 지음 _ 와이즈베리 출판사]

1) 을의 공간 (P.35)

 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차의 주인과 대리기사와 같은 역설의 관계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에서, 주체의 욕망은 쉽게도 타인을 잡아먹는다. 예컨대 의사 결정권자는 언제나 자유롭게 회의 안건을 내고 소통하자고 하지만 그 누구도 화답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상상과 수용 가능한 범위가 제한되어 있음을 모두가 안다. 거기에서 벗어나거나 반론을 내기라도 하면 곧 눈총이 쏟아진다. 소통은 주체가 된 이들의 논리를 확인하고 강요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부하 직원은 직장 상사에게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학생은 교사의 의도에서 벗어난 답을 제출하지 않는다. 아이 역시 부모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털어놓지 않는다.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부터 시작해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주로 배워왔다.


2) 타인을 주체로서 일으키는 이들 (P.37)

 그러나 직접 '을의 공간'으로 내려와 손을 내미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의 운전석에 앉은 이들을 주체로서 일으켜 세운다. 그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이거나, 반갑게 맞이하는 인사와 미소이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담배를 피우기 전에, 음악을 틀기 전에, 전화 통화를 하기 전에, "죄송하지만 제가 무엇을 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선생님의 차인걸요. 묻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꼭 덧붙인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그 공간의 한 주체로서 존중한다는 의미다. 그 자체로 나는 '함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3) 호칭 (P.53)

 호칭은 한 인간의 주체성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다.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라고 믿게 만드는 동시에, 그를 둘러싼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덮어버린다. 나 역시 내가 속한 공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나는 그 구성원이라는 환상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그 환각에 익숙해질 때, 우리 모두는 '대리'가 된다. 그 공간에서는 더 이상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가 없다. 누군가의 욕망을 대리하며 '가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대학뿐 아니라 내가 속했던 여러 공간에서 대개 주체로 서지 못했다. 누구도 호칭 뒤에 숨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그와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의도치 않게 밀려나고서야 나는 누구였는지 나는 거기에서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았고, 그때는 너무 늦었다.


4) 품격 있는 손님 (P.88~89)

 "차가 많이 낡았죠"하고 웃던 그는, 차의 '가격'과는 별개로 내가 만난 가장 '품격'있는 손님이었다. 대리기사와 자신을 함께 주체로 만들었다. 그러한 힘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공감하고 또한 경청하는데서 나온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대리기사와 자신을 함께 대리로 격하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하대하지만 결국 자신도 그 밑에 존재함을 알지 못한다.


5) 갑질 (P.96)

 순간의 감정으로 욱, 하는 이들보다 오히려 타인의 수고를 농락하는 이들이 더 밉다. 양쪽에서 전화를 받아 누가 누가 먼저 오나 경주를 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요구에 따라 거리를 내달려 온 이들을 취소 문자 하나로 돌려세우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 일상의 '갑질'이다. 당하는 이들에게는 대리가 아닌 주체의 아픔으로 오래 남는다. 대리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고 해서 감정까지 대리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그 어떤 비정함에 무뎌질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주체로서 아파하고 주체로서 절망한다.


6) 아웃소싱업체 (P.172~173)

 노동의 관계도는 가장 간단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계약의 주체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용자는 그 중간에 '대리인'을 끼워 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주체로서 감당해야 할 여러 책임에서 벗어난다. 노동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사용자는 자신이 고용한 이들이 아니기에 법적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노동자가 죽거나 다쳐도 이들이 지급하는 것은 '위로금'에 불과하다. 노동자에게 온전히 돌아가야 할 노동의 대가 역시 아웃소싱 업체를 거치고 그 일부만 남는다.


7) 을과 을의 전쟁 (P.181~183)

 나는 '지방시'라는 글을 세상에 내놓으며 계속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그러기 위해서 쓴 글이었다. 교직원이나 보직 교수가 그것으로 트집을 잡으면 그와는 싸워나가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 것은 동료들이었다. 같은 연구실의 연구자들이, 같은 교양과목을 강의하던 시간강사들이, 왜 자신들을/대학을 모욕했는지를 나에게 물었다. 내 앞을 막아선 것은 갑이 아닌 을이었다. 대학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었다. (중략)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을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을이다. 반드시 폭언이나 폭력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쟁의 수행자가 된다. 내 주변의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그와 나 사이에 선을 긋는 것 역시, 갑의 욕망을 대리하는 행위인 것이다.


8) 품삯 (P.206)

 논문을 쓰면서 성경을 종종 읽었는데, '신명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는 것은 성경에 명시된 '율법'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정말이지 기뻤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 시기에도 노동의 대가를 제때 지불하는 것의 중요성을 모두 알았고, 그것이 노동자를 주체로 대하는 방식임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합리와 상식으로 가려진 구조 안에서 개인/노동자는 더욱 주체성을 잃고 소외된다. 말하자면 주체가 아닌 대리가 되어간다.


9) 타인을 주체의 언어로 말하는 것 (P.238)

 우리는 타인을 주체의 언어로 말하는 데 인색하다. 별것 아닌 말의 습관이라 할 수 있겠지만, 상대방을 동등한 주체로서 대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가 된다. '대리 오셨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보이는 그 삶의 태도에 대해 순수한 존경을 보낸다.


10) 대리사회의 주인의식 (P.251~252)

 대리사회의 괴물은 대리인간에게 물러서지 않는 주체가 되기를 강요한다.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 끊임없이 주문하는 가운데, 정작 한발 물러서서 자신을 주체로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봉쇄한다. 결국 개인은 주체로서 물러서는 법을 잊는다. 내가 그랬듯 밀려나고서야 자신이 어느 공간의 대리로서 살아왔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다. 밀려난 개인은 잉여나 패배자로 규정되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대리인간이 들어선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말하자면 우리 사회를 포위한 '대리올로기'의 서사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누구도 가르쳐준 바 없지만, 결국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 밀려나기는 쉽지만 스스로 물러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공간의 주체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고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책장을 덮으며]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에 앞서 주변의 모든 상황은 대리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를 대신하여 일을 하고, 상사를 대신하여 일을 합니다. 상사는 그 위의 상사를 대신하여 일을 합니다. 조직의 높은 자리를 꿈꾸며 모두 일하며 경쟁하지만, 그 조직은 조직 구성원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주체적으로 일하자는 이야기를 듣지만 우리 모두의 환경은 실제로는 나의 것은 없는 대리인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결국 내 것이 아닌 곳에서는 언젠가는 물러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대리로 살아가면서 물러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리로 살아가면서 항상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리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새겨야 할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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