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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Dec 24. 2023

열한 계단

내 삶을 찾아가는 과정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채사장님의 폭넓은 독서력에서 나오는 수많은 상식의 융합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읽게 된, 채사장 작가님의 ‘열한 계단’.

한 소년의 눈을 띄게 한 ‘문학’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성장과정을 그려나가는 ‘열한 계단’의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 봅니다.


[열한 계단 _ 채사장 지음 _ 웨일북 출판사]


1) 학생들이 질문을 멈추는 이유 (P.41)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는 반대로 그들이 너무나 성숙했기 때문이다. 성숙한 영혼이 받아들이기에 정규 교육의 단조로움은 너무나도 하찮다. 학생들은 똑똑하다. 그드리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진리의 문제, 사회 정의의 문제, 존재의 문재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진정으로 알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은 놀랍도록 심오하다. 반면에 현행 교과는 그들이 바보가 되기를 원한다. 단순 암기와 기계적인 문제 해결 능력만을 강조한다. 고등학교 2학년이 넘어가면 학생들은 질문을 멈춘다. 그들은 실제 교과의 내용보다는 질문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어른들에게서 더 많이 배운다.


2) 부담스러운 이상주의자 (P.95)

 이런 부담스러운 이상주의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발견된다. 당신은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자기만의 신념으로 가득 찬 사람들 말이다. 보통은 괜찮고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악의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보다는 괜찮지 않은가?


 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사람들은 결벽증적인 강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세상을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청결과 불결로 나누고 자기가 선, 정의, 청결의 편에 섰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악, 불의, 불결로 타자화한 후 이에 맞서는 것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이러한 우월감과 선민의식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들이 사실은 나약하기 때문이다. 배움의 부족으로 세상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경제적인 자립을 하지 못하고 그 방법에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현실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여 타협과 조율에 익숙하지 않을수록 세상과 벽을 쌓고 작은 세계 안에서 완전함을 향유하려 한다.


3) 노예의 도덕 (P.105)

 니체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가치 체계는 노예의 도덕에서부터 기인한다. 이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예의 관점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노예는 지금 어떤 마음 상태일까? 그들은 증오심에 가득 차 있다. 약하고 무능력한 노예들은 현실적으로는 현재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대신 정신적인 측면에서 복수를 꿈꾸게 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상상 속에서는 모든 것을 전복시킬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인위적인 도덕 체계를 고안하게 된다.


 노예들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상상해 낸다. '주인은 악하다.' 이거시 그들의 도덕관의 시작이다. 이제 노예들의 머릿속에서 주인은 탐욕스럽고 음란하며 신을 거역하는 죄 많은 존재로 변신한다. 노예들의 원한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악으로 규정된 주인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주인이 악이라면 노예인 자신은 무엇인가? 당연히 우리는 선이다. 이제 자신에게 강요되었던 덕목들의 가치는 변신한다. 나약함의 상징이었던 순종과 복종 그리고 겸손과 절제는 이제 선한 자의 덕목으로 그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다.

 가치는 전복된다. 주인의 '좋음'은 '악'으로, 노예의 '나쁨'은 '선'으로 뒤바뀐다.


4) 우리는 의심해야 한다 (P.107)

 우리는 의심해야 한다. 왜 그들이 내 앞에서 신에 대한 순종을 말하는지, 왜 국가에 대한 복종을 말하는지, 왜 나에게 겸손하고 절제하는 도덕적인 삶을 살라고 강조하는지. 그러한 강요를 통해 도대체 자신은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인지를 의심의 눈으로 직시해야 한다.


5) 붓다의 마지막 가르침 (P.121)

 마지막임을 깨달은 붓다는 목욕을 했다. 제자들에게 사라나무 숲 속에 누울 자리를 깔게 했다. 그곳에 바르게 누워, 붓다는 밤늦게까지 제자들에게 최후의 가르침을 전했다.

 "자신의 자신의 등불이 되어라. 자신이 자신의 의지처가 되어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처로 삼아라."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붓다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생겨난 존재는 없어지게 되어 있다. 부지런히 정진에 힘써라."

 이후 선정에 든 붓다는 그대로 완전한 열반에 이르렀다.


6) 전근대 시대의 철학과 종교 오류 발생의 이유 (P.173)

 전근대 시대의 철학과 종교는 실험과 관찰이라는 기초적인 검증조차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오류 가득한 결론으로 인류를 혼란에 빠뜨렸다.

 예를 들어 철학의 시원으로 말해지는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벼운 물체보다 무거운 물체가 먼저 낙하한다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오늘날까지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무게가 다른 물체라 하더라도 같은 높이에서 떨어뜨렸다면 언제나 동시에 바닥에 닿는다. 그렇다면 위대한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기초적인 주장에도 오류를 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실험과 관찰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지배하는 모든 법칙을 순수한 사고만으로 충분히 밝혀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이 더 고귀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7) 안 병장의 전투화가 항상 깨끗했던 이유 (P.208~209)

 안 병장의 전투화는 항상 깨끗했다. 당장 구보를 나갈 때도, 흙바닥에서 작업이 예정되어 있을 때도 그는 직전에 전투화를 닦았다. 내가 물었다.

 "어차피 곧 더러워질 텐데,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닌가?"

 안 병장이 경계근무명령서를 확인하며 덤덤하게 말했다.

 "저도 예전에는 안 그랬지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군 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도 힘들게 하고, 되는 일도 없고, 왜 힘든지 생각했더랬지 말입니다. 생각하다 보니까 보람도 성취도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생각했습니다. 그럼 왜 보람도 성취도 없나. 그랬더니 제가 모든 걸 대충 하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군대 일이란 게 그렇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 구색만 맞추려고 한 거지 말입니다. 그렇게 저는 군 생활 전체를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채우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역해서 사회에 돌아가면 지난 2년은 버린 시간이 되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걱정이 됐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20대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하찮은 시간으로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지 말입니다. 나한테 선물해야겠다. 군 생활의 2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선물해야겠다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뭐, 구두부터 닦기 시작했습니다."


8) 책만 본 사람들과 현실에 적응하기만 한 사람들의 한계 (P.250~251)

 우리는 한 가지에만 집중한 사람들의 한계를 쉽게 본다. 책만 본 사람들과, 현실에 적응하기만 한 사람들의 한계. 우선 책만 본 사람들의 한계는 타인에게 엄격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이 쉽다. 왜냐하면 책의 울타리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상이 쉽다. 왜냐하면 책의 울타리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실제 세상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까닭에 현실의 폭력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다른 사람들이 나약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 발을 디디면 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당황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나약함을 부정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된다. 모든 일에서 불평불만거리를 찾아내는 사람, 타인의 잘못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선과 도덕과 정의를 습관적으로 강조하는 사람.


 다음으로 현실에 적응하기만 한 사람들의 한계는 자신에게 너무도 너그럽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계획과 일정에 따라 정확하게 진해오디는 일 따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음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옳고 그름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타협과 조율을 통해서만 상황에 따라 문제를 봉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된다. 선과 도덕에 대해 하찮게 여기는 사람, 모든 것을 손익으로 판단하는 사람, 심연의 깊은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


9) 세계화가 추진되는 이유 (P.270)

 대량생산은 사회의 모습을 바꿨다. 부르주아는 필연적으로 세계화를 추진하게 된다. 대량생산으로 인한 초과 공급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구의 자본주의 열강들이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정 어떠한 도덕자이거나 인류애적인 가치를 가져서가 아니다. 세계화는 단순히 초과공급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시장의 필요에 의해 요청된다. 근대 유럽이 아프리카, 인도, 아시아,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한 이유 그리고 오늘날 미국을 중심으로 무차별적인 세계화가 추진되는 이유는 초과공급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경제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10) 카르마(Karma) (P.347)

 카르마(karma)는 업(業)을 말한다. 보통 이 단어는 선행과 악행에 대한 도덕적 응보 정도로 사용된다. 하지만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경험이 카르마라고 할 수 있다. 생전에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했던 모든 것은 우리의 인식에 잔상을 남긴다. 이러한 잔상들은 초애니 바르도에 이르러 내가 체험하게 된 환영들을 만들어낸다. 앞으로 만날 환영들은 내가 육체를 가졌을 때 경험했던 다양한 이미지들의 조합인 것이다. 따라서 내가 생전에 불교도였다면 평화의 부처와 분노의 부처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교였다면 천사와 악마를 만나게 될 것이다. 초애니 바르도에서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는 나의 과거 경험이 결정할 것이다.


[책장을 덮으며]

 저자인 채사장 작가님은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학업에 소홀하고, 점수는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성적이 좋고, 선생님 이야기를 잘 들으면 정말 좋은 학생일까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부합하는 학창 시절을 살면 행복과 부가 보장되는 것일까요?

 저자는 인생을 표류하던 시기였던 열여덟 살 때, 처음으로 문학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기독교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종교에 대한 궁금증은 철학으로 커져갔습니다. 문학으로 해소되지 못한 지적 갈증은 과학으로 커졌고, 이는 이상과 현실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삶과 죽음.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열한 계단의 여정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열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결국 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었겠지만, 열한 계단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심오한 관할과 생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게 된 것이지요. 저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삶과 이 세상을 둘러싼 많은 것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열한 계단'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의 삶을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책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내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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