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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Jan 24. 2020

읽기의 말들

Leader가 Reader가 되어야 하는 이유

나는 읽는 것을 좋아한다.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각을 글을 통해 들어보는 행위이다.

내가 왜 읽는 것을 좋아하는 지를

설명해 준 책.


소중한 동료가 추천해 주어 읽어본,

'읽기의 말들'의 소중한 표현들을 다시 꺼내어 본다.


[읽기의 말들 _ 박총 지음, 유유 출판사]


1) 독서필패

'독서는 배신하지 않는다'와 나란히 보좌에 오른 말이 '독서불패'다. 역시 '읽어야 이긴다'와 '독서불패'란 책이 나왔다. 여기서 불패가 경쟁에서 앞서게 해 준다는 뜻이라면 번지수를 한참 잘못짚었다. 독서불패가 아니라 독서필패다! 간혹 독서가 예상치 못한 성취를 안겨 준다 해도 어떻게 모든 이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겠는가. 이 체제는 우리 모두를 승자로 만든 적이 한 번도 없다. 책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지기 위해 읽는다. 독서는 품위 있게 지기 위한 무장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멋들어지게 실패하기 위해, 고병권과 이진경의 말을 빌리자면 "아무도 실패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만 실패"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2) 언어의 농도

" 읽기는  안에 깃든 언어의 농도를 높이는 작업이다.  혈관에 우리 시대의 말보다 짙은 생명의 수액이 시퍼렇게 흐르면 역삼투압 현상이 발생한다. 이내 삶의 방식을 뺏기기는 커녕 되레  밖의 오염된 말도 흡수해 기꺼운 자양분으로 삼을  있다. 나를 살리는 문장이 이내  곳곳에 기숙하면 자칫 세상에 휘둘리지 않을 강단이 생긴다. 이를 '존재의 의탁하는  읽기' 부름 직하다.


3) 인생에 남을 한 줄의 문장

'독서력'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도 내 편이다. "책을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줄이 평생의 보물이 되기도 한다. 인생에 남을 한 줄을 문장을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 것도 독서의 요령이다."

어쩌면 모든 저자는 그 단 한 구절을 발설하기 위해, 그 한 구절의 장미를 돋을 새길 원고지 수백 매의 안개꽃을 조용히 피워 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시인과 작가는 종종 단 한 구절의 사람으로 남는다. 나는 죽기 전에 그 한 구절을 토해 낼 수 있을까.


4) 나무 밑동의 중심부

식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 밑동에 살아 있는 부분은 지름의 10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바깥쪽이고, 그 안쪽은 대부분 생명의 기능을 소멸한 상태라고 한다. 동심원의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있고, 이 중심부는 나무가 사는 일에 간여하지 않는다. 이 중심부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버티어 준다. 존재 전체가 수직으로 서지 못하면 나무는 죽는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이다. (김훈)


5) 군대와 도서관의 공통점

명품 속옷을 입은 놈도 고무줄 늘어난 빤스를 입은 놈도 '사제 옷'은 모조리 집에 부치고 국방부에서 지급한 '브레이브맨' 속옷을 일괄 착용했다. 그렇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서일까, 박사나 유학파 친구들은 쩔쩔매고, 무시당하던 '지잡대' 출신들이 날고 기는 계층 역전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그 중간에서 나는 뭔지 모를 쾌감을 느꼈다. 견고한 사회적 불평등이 획일적 군대에서 타파되는 역설이라니.

내가 공공도서관을 출입하다가 문득 이곳이 신성하다고 느끼는 까닭은 세상에 몇 안 되는 평등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선 누구나 평등하다. 금수저나 흙수저도 여기선 한 명의 이용자일 뿐이다. 대출카드도 점유 좌석도 똑같다. '골드'라고 박힌 대출카드를 들고 회장님 의자에 앉는 회원은 없다. 대출권수도, 대출 기한도 똑같다. 내가 쓴 책이 우리 동네 구립도서관에 꽂혀 있다고 해서 특별대우를 해 주지 않는다.


6) 오늘 읽을 책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한 권의 책을 다 읽을 만큼 길게 한가한 때를 기다린 뒤에야 책을 편다면 평생 가도 책을 읽을 만한 날은 없다. 비록 아주 바쁜 중에도 한 글자를 읽을 만한 틈만 있으면 문득 한 글자라도 읽는 것이 옳다.

독서의 주적은 생활이다. 삶의 비루함을 책 읽기로 달래 보려 하건만 생활이란 놈은 그 성실함이 이를 데 없어 하루도 결근이 없다. 독서를 추동하는 것도 생활이요, 독서할 시간을 앗아 가는 것도 생활이니 어찌 얄밉지 않으랴.

지금 시간이 나면 무조건 책을 읽으라. 오늘 하던 일을 마저 해 놓고 내일 몰아서 읽어야지. 나도 여기에 한두 번 낚인 것이 아니다. 내일은 다른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늘 마실 술과 오늘 먹을 치킨만 내일로 미루지 말 것이 아니다. 오늘 읽을 책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7) 아이의 공부방보다 부모의 서재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자녀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키운다지만 독서야말로 백 번 잔소리보다 한 번 솔선함이 낫다. 빤한 얘기지만 진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진리에 가깝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아니 보여 주려고 하지 말고 즐거이 자기 책을 읽는 것보다 더 나은 독서 교육이 없다.

로알드 달의 '마틸다'처럼 알아서 책을 읽는 아이가 아니라면 누군가 책 읽기의 즐거움으로 꾀어내야 한다. 그 유인 방법은 일단 읽어 주기이지만 더 확실한 방법은 먼저 읽기다. 뜻하지 않은 유혹이 가장 강력하다고 하는데, 읽어 주기가 기획한 유혹이라면 먼저 읽기는 의도하지 않은 유혹이다.


8)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을 읽는 내내 장 루슬로의 앞시구가 입에 맴돌았다. 책 읽는 사람은 강물의 등을 떠밀어 급류로 만드는 세상에서 느긋하게 맴돌 둠벙을 만드는 사람, 홀로 질주하는 여울을 손을 잡아 유유히 흐르는 대하로 이끄는 사람이어야 한다.


9) 좋은 스승

좋은 스승은 자신을 떠나게 하는 스승이요, 나쁜 스승은 자신을 더 의존하게 만드는 스승이란 말도 있다.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 읽은 뒤에는 이 책을 던져 버려라. 그리고 나를 떠나라."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뒤이어 읽을 책을 지시하지 않는다면 다른 고수에게 제자를 떠나보내지 않는 스승만큼 악하다.


10) 독서는 장거리 달리기

'독서력'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별 부담 없이 책을 잡을 수 있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독서가 습관화된 힘"을 독서력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를 장거리 달리기에 빗댄다.


독서는 장거리 달리기나 행군과 비슷하다. 날마다 달리고 조금씩 거리를 늘려 나가면 대부분 장거리 달리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독서의 세계에서는 그야말로 '꾸준히 하는 것'이 힘이 된다.


11) 책 선물

책을 건네는 손길은 고도로 지적이면서 고도로 관계지향적이다. 책을 권하는 행위가 성립하려면 책도 알고 사람도 알아야 한다. 폭넓은 독서가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요, 한 사람을 내 관심의 자궁에 오래 품어야만 그에게 알맞은 책 선물이나 추천이 가능하다.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을 쓴 하바 요시타카는 이러한 묘미를 아는 사람이다.


마음에 새겨 준 한 권도 좋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보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그 대화에서 번득여 열어 본 자신의 서랍 속 책을 소개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추천할 책을 고민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행위다. 여행지에서 그 사람을 생각하며 엽서를 쓰는 것과 같다.


"또 책이냐? 쌓아 둘 데도 없는데..." 감사 대신 핀잔을 주지만 책 선물은 늘 고맙다. 그대가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떠올렸다는 사실이 고맙고, 책의 한 구절을 굳이 나와 나누려는 열정이 고맙다. 읽어 보지 않은 책을 선물했다 한들 다르지 않다. 내게 무슨 책을 선물할까 한참을 고민했다는 사실이 못내 고맙다. 누군가 나란 사람을 남몰래 정성껏 위해 주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는 법이다.


12) 아버지의 노동과 독서

그해 여름 나는 내 아버지의 모든 것을 용서했다. 아버지가 아무리 독재적으로 포악하게 행동해도 참고 견디기로 마음먹었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의 영혼을 마비시키는 그 노동 덕분에 나는 글을 읽을 시간이 있었고, 그 때문에 나의 삶이 아버지의 삶보다 더 나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이클 더다)


13) 필사

나 어릴 적엔 작품을 베껴 쓴다고 하면 작가 지망생이냐고 물었다. 닮고 싶은 작가의 문장을 필사하면 확실히 글솜씨가 는다.

책은 눈으로 읽음과 손으로 읽음이 확실히 다르다. 정민은 "손으로 또박또박 베껴 쓰면 또박또박 내 것이 되지만 눈으로 대충대충 스쳐보는 것은 말달리며 하는 꽃구경일 뿐"이라고 절하한다. 발터 벤야민은 필사 없는 독서를 도시 위를 비행기 타고 지나가는 것에 비유하면서 "책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은 그 책을 필사하는 것" 밖에 다른 수가 없다고 했다.

정민은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이 기억이 저장된다"고 하며 필사만 아니라 타자의 효과도 인정한다. 간직하고 싶은 문장을 타이핑해서 모아 두시라. 뛰어난 통찰이나 표현을 담은 문장, 나중에 기억해 뒀다 인용하고 싶은 문장, 새로운 어휘의 용례로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 등 어떤 것이라도 좋다. 그렇게 모인 구절을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로 파일이나 폴더를 여러 개 만들어서 모아 두고 거기에 자신의 생각도 첨언해 보라. 그런 과정에서 사고가 종합적으로 발달한다.

물론 이 과정이 달가운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하나식 둘씩 보석 같은 문장을 모으다 보면 엄청난 자산이 된다. 그렇게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으면 일종의 보물창고가 되는 셈이다. 글은 바로 보물창고에서 나온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세상에서 무얼 촌스럽게 베껴 쓰냐고 지청구를 늘어놓는 이들도 있다. 정보의 바다를 떠다니는 문장과 내가 손수 옮겨 적은 문장은 그 결이 다르다.


<책장을 덮으며>

바쁜 일과 속에서 잠시라도 책을 읽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수많은 문장 속에서 기억하고 싶은 글들을 기억하고자,

'책인사의 책추천'을 쓰고 있다.


홈런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꾸준하게 배팅 연습을 한 선수만이

홈런을 칠 수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안목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배우는 자세로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읽기의 말들'을 통해

'우리는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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