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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자아자 Feb 01. 2019

그래도 나는 꿈을 꾸겠다

드라마 같은 이야기이지만 누군가는 해낼 수 있는 그것, 꿈

요즘처럼 성장이 둔화된 시대, '금수저', '헬조선', '3포' 등의 단어들은 우리 청년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고 있다. 이에 따라 '쉬어 갈 여유', '굳이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위로가 주는 압박감' 등의 메시지들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나 역시 이러한 메시지에 크게 공감하고 위로를 얻고 있다. 취준 기간동안 너무 불안하고 걱정될 때 그런 글들이 정말 많은 위로가 되서, 일부러 댓글까지 꼭 확인해보곤 했다. 



경영학도였던 나는 학부 1학년 1학기 때 교수님들께 경제신문을 읽으라는 이야기를 닳도록 들었다. 경제신문은 비즈니스 환경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툴이라고 말이다. 사실 1학기에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들로 읽지 않다가 1학년 2학기부터 읽기 시작해 20대 후반인 지금까지 내게 남아있는 습관이 되었다.



경제신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섹션은 기업들의 동향, 앞으로의 전략을 읊어주는 부분들과 중소기업, 스타트업의 인터뷰를 담은 중소기업 섹션이었다. 기업들의 동향, 앞으로의 전략을 읽고 있으면 경영학 책에서나 배웠던 흐름들, 예를 들면 IoT, 로봇 자동화, 블록체인, 하이퍼루프, 자율주행차 등과 같이 아직 현실에서는 잘 와 닿지 않지만 "미래를 변화시킬 기술"들이라는 거창한 제목과 함께 그들은 생존을 걸고 어떻게 실체화할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은 몰라도 중요한 토픽이구나, 배워야 하나보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중소기업 섹션의 성공한 스타트업+중소기업 CEO들의 이야기는 대기업의 오너, 임원들의 이야기들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들렸다. 그리고 꿈을 이룬다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석사를 할 때까지 그랬다. 조금 더 넉넉하게 치자면 싱가폴에서 스타트업 인턴 할 때도 그랬던 것 같다. 현실에서는 아직 와 닿지 않아도 그런 거창한 글로벌 트렌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고 이것들을 기업에서 어떻게 상용화할지에 대해 논하는 것이 나라로서도, 기업으로서도 정말 필요한 일이라 느꼈다. 영국, 싱가폴이라는 해외에 있어서는 아니고 '학생'이었고 '스타트업'에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 고민으로 진로를 변경하면서 2018년 9월 말 한국으로 돌아와 컨설팅업계의 대부인 MBB에서 RA를 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컨설팅 정규직 입사를 위한 '취준생'기간을 거치게 되었는데, 이때 나 스스로에게 "한국패치(?)"를 너무나도 빨리 해버렸다.



베이비 부머의 자식 세대로서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으며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어짜피 못하는데", "평범하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었나" 류의 비관주의에 동화되고, 또 취업해 근무한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닥 행복해보이지 않아 -반복적 일과와 업무를 반복하다가 50대 초반에 퇴직을 생각해야 하는 인생 역시 그다지 부럽지 않지만 달리 뭘 해야할지는 모르겠는- "결국 치킨집이 위너지 뭐" 류의 자조적 농담을 어느순간 나 역시도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던 중 바로 어제, 싱가포르에서 일했던 스타트업의 사장님께서 한국에 컨퍼런스 참석차 오셨다는 연락을 받고 근 5달 만에 만나게 되었다. 사장님은 중국인이자 싱가폴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를 한 후 취업을 통해 싱가폴 영주권을 취득한 30대 젊은이였으며, 이미 한 번의 창업한 경험이 있으며, 나와는 두 번째 창업한 회사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첫 번째 회사는 대기업에 재직 중 사내 벤처로 선발되어 시작하게 되었었다. 이를 기반으로 독립해 두 번째 회사를 창업한 것이다. 현재는 두 가지 회사를 모두 운영 중이다. 회사는 싱가폴, 일본 도쿄, 중국 선전 세 곳에 오피스를 두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사장님은 금수저도 뭣도 아니지만 그저 자기 위치에서 꾸준히 꿈을 꾸며 열심히 도전해온 사람이었다. 나는 인턴 면접을 볼 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상사의 유형 혹은 회사의 문화"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 우리 사장님을 묘사했었을 만큼 열정과 포부, 그리고 동료를 대하는 자세 등 많은 부분들을 존경하고 있다.  





만나기 전에는 사실 요즘 암호화폐 시장이 너무 폭락을 거듭한지라 그동안 받은 투자금이 암호화폐로 되어있기에 회사 사정이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되었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사장님은 전혀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여전히 바쁘게 지내고 계셨다. 블록체인에서 더 확장해 IoT에 관한 꿈을 꾸며,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며, 세계를 돌며 컨퍼런스를 참가하고, 네트워킹으로 이어진 인연들과 비즈니스 파트너십에 관한 논의들을 하며, 또 덤으로 카지노나 클럽 같은 유흥도 가끔씩 즐겨주곤 하며. (굉장히 바른 사람임. 가끔씩 즐겨주는 것은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함.)




만나는 날, 처음엔 판교로 오라 하셔서 판교 가는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다시 삼성역으로 오라고 하셨다. (ㅠㅠㅋㅋㅋ 한국 지리를 모르시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알고 보니 계속 국내 업체와의 미팅이 이어 있어서 그랬던 것이었다. 사장님이 이전 컨퍼런스에서 만난 적 있던 한국 업체에게 이번 컨퍼런스 때문에 한국에 오는 겸사겸사 해서 이메일을 보내서 만남이 주선되었다고 한다. 내용은 굉장히 긍정적으로 진행되었고, 앞으로 다양한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비슷한 맥락으로 다음날도 두어 개의 업체들과의 만남이 있을 것이라 하셨다.



사장님과 만나고 있는 도중 카지노를 가자고 계속 연락 오던 친구들 무리들도 알고 보니 다들 비슷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친구들로, 일종의 MBA 같은 블록체인 모임에서 만난 지 4개월밖에 안됬다고 하는데 다들 같은 꿈이 있으니 좋은 친구가 되어 서로에게 좋은 기회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한국행도 한 친구의 주선으로 오게 된 것이라고 하시며 사업을 하면 네트워킹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이밖에도 현재 하고 있는 사업 중 보험사와 함께 파트너십을 맺고 준비하고 있는 내용들, IoT로의 결합 계획 등 내가 떠난 후 생긴 회사의 변화들을 이야기해주시며 준비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 주셨다.




이 외에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나눠가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되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리만치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삶이 내가 신문을 읽으며, 고등학교-대학교 시절 수업을 들으며 꿈꿔왔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트렌드를 읽고 그 속에서 기회를 모색하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 친구들을 널리 사귀는. 세계를 다니며 '국내'가 아닌 '글로벌' 시장을 상대하는 그런 삶.




비관주의 속 잊고 있었던 그런 삶이 평범했던 누군가가 이루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정말 좋은 자극이 되었다.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구나,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비슷한 문화배경에서 자란 누군가는 이걸 해내고 있구나 싶었다. 처음 그런 선택을 하고 이뤄나가기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이 생기고 난감했으랴마는, 여전히 "어렵다"가 "불가능하다"는 아니라는 것을. "위험이 크다"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아니라는 것을.


순전히 주관적인 내 생각에는 현시점에서 향후 5년 내, 사장님이 쫄딱 망해서 모든 것이 가압류당하는 그런 폭망(?)할 확률보다는 serial entrepreneur가 되거나 아니면 그 경험을 살려 다른 회사에 실무진 혹은 advisor로 참여하게 될 확률이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스타트업은 "risky"하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두 번째 회사 기준 창업 후 1년 후 그의 삶은 오히려 "안전"해 보였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싶어 졌다. 또한,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믿으며 살고 싶어 졌다.


문득 내 커리어, 내 삶을 더 열정 있게 살고 싶어 졌다.






최근 손혜원 의원이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손혜원 의원 논란 쟁점의 중심을 조금 빗나가서- 이번 사건에서 손혜원이라는 인간에 집중해 본다면 개인적으론 정말 멋있는 삶인 것 같다. 내가 믿는 가치에 심지어 내 가족들까지 설득해 나의 그 꿈에 동참하게 만들 수 있는 열정. 그리고 자신이 믿는 그 꿈을 현실화해나가는 추진력과 수많은 외부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까지. 그리고 꿈이 나의 인생뿐 아니라 지역공동체 전체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그런 꿈의 스케일까지. 일반 사무직 회사원들의 경우 50대-60대 초반이면 은퇴를 하는 시기인데, 그녀는 그 시기를 넘어서도 여전히 꿈을 그리고 실천해가고 있다.



조금만 내가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고개를 돌려보아도 벌써 머릿속에 두어 명 떠오른다. 인터넷에서, 풍문으로 듣고 본 사람들까지 떠올리니 꽤나 연이어 줄줄이 떠오른다. 해외의 유명한 누구들까지 생각하니 정말 많네 싶다.




여전히, 우리는 '꿈'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어야겠다.




Cover Photo by Steven Erix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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