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그림에세이)
1979년의 봄
처음으로 유치원을 가기 위해
엄마와 손을 잡고 집을 나섰던 날.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왕십리 천주교 부설 <성심유치원>
집에서 유치원까지는 꽤나 멀었습니다..
유치원에 처음 등원하는 날. 기억속의 하늘은 어두웠습니다.
나의 기분탓이었을까요?
그 길은 어둡고 두려웠습니다.
바닥은 꽤나 지저분하고
유치원을 가는 골목길에는 작은 시장이 있었는데
닭의 울음소리는 힘차고 정말 시끄러웠습니다.
바깥세상의 냄새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 표정, 행동들은 나에게는
위협이었습니다.
내가 무사히 유치원까지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손에서 전해진 온기 덕분입니다.
누구에게든 어머니의 존재는 거대한 세상에 맞설 수 있는 언덕이자 위로일것입니다.
나는 그 뒤로 한참을 엄마와 함께 유치원을 다닌것으로 기억합니다.
함께 오가는 동안 가장 생생한 기억은 엄마가 건네준 '바나나'입니다.
40여년전의 바나나 한개의 가격은 '500원'
그것을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어린 나에게도 그 값이 매우 비싸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바나나를 사서 나에게 쥐여주었고.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아쉽지만
엄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달콤한 바나나를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나는 그 바나나가 맛은 있었으나 그 놀라운 가격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1979년은 부마 민주항쟁이 벌어진해이며 당시 자장면 한그릇의 평균가격은 429원.
이것은 통계적 기록이고 당시의 소득과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고려해보면
현재와 직접적인 수치 비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유치원 하원길 내 손안의 바나나는
엄마의 마음이었습니다.
아껴가며 천천히 먹었습니다.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