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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Dec 15. 2021

점에서 선으로 뻗어나가면 세계가 되는 게 아닐까?

몰입형 챗봇 IT 서비스, 아포피스 제작 일기 #2

"만약 내가 7일 후에 죽는다면,
무슨 생각들을 하고, 남은 날동안 무엇을 하려 할까?"

이 생각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제가 팀원들과 함께 만들고 있는 IT 앱 서비스 '아포피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함께 써 내려가는 삶의 마지막 대화, 아포피스.
아포피스는 "소행성 충돌로 인해 당신이 일주일 후에 죽는다면"이라는 가정으로 하는 몰입형 챗봇 서비스입니다.
지금은 알파테스트 버전 서비스를 거쳐 리뉴얼을 하고 있으며, 베타 서비스 출시와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앞두고 있습니다.

과연 아포피스는 정말 IT 서비스가 될 수 있을까요? 
저의 다소 괴상한, 소행성처럼 날아온, 꿈만 같은 서비스인데 말이죠.

아포피스라는 서비스를 만드는 기록을 하려 합니다.

이 글은 전문적인 서비스 기획 글이라기보다는, 아포피스를 제작하는 저의 일지 혹은 일기입니다. 서비스 시작부터 끝까지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굉장히 많이 담겨있습니다만. 그저 즐겁게 봐주세요.

(리뉴얼 전 앱 서비스 이미지)



[1화부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1화 링크는 맨 밑에 있습니다.]

그렇게 나는 죽음을 IT 서비스로 만들어 보기로 한다. 죽음으로 가는 모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마치 소행성 궤도 같은 길로 들어선 것일까?


2012년 지구 멸망설을 굳게 믿고 몇 개월 후의 죽음을 진심으로 두려워했던 18살의 나.
죽는다고 생각하며 매일 밤 두려워 울다가. 왜 이렇게 죽음이 두려운지에 대해 깊게 생각에 빠졌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며, 이제까지 살았던 삶을 돌아보고 3개월 동안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서 모두 달성했었다. 난 누굴까, 난 무엇을 원할까? 처음으로 치열하게 고민해본 시간.
다소 엉뚱한 계기였지만 죽음은 나에게 새로운 우주를 열어주었다.
'유한한 삶'이라는 새로운 눈.

1. 사람은 지구 멸망이 아니더라도 진실로 언제든 죽을 수 있다.
2. 언제든 죽을 수 있다면 하루를 살아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하고 싶은 건 미루면 안 된다.


'그래 그때의 경험을 IT 서비스로 끌고 와 보자.
내가 지금까지의 삶을 걸쳐서 정말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고 싶은 말. 메시지. 그러니까 그 알맹이,  quintessence, 정수. 그걸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언제 또 이런 서비스를 할 수 있겠어. 나중에 돈을 벌기 위해서만 취업을 한다면,
남이 하라는 걸 하고 사는 삶이 대부분일 수도 있는데.'
 

서비스의 방향성을 잡으니 마음이 설레고 두근거렸다.
아니야, 이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마치 오랫동안 가만히 둔 빗물의 가장 윗부분을 뜬 것 같은, 순수하고 깨끗한 재미를 느꼈다. 아이디어를 상상하고 머릿속에서 구현하는 것, 이렇게까지 재미있다는 게 신기했다. 손과 발끝이 모두 짜릿하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괜히 집 안에서도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당장이라도 구체화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지만, 동시에 조금 고민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별난 사람 취급을 받을까 봐 걱정이 됐다. 사회성이 떨어졌던 과거가 있어서인지, 그런 면들을 티 내지 않으려고 꽤나 노력하는 편이었기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아이디어를 발표한다면 너무 엉뚱하다고 취급이 되진 않을까? 나만의 개인적인 경험에서만 그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기대감과 설렘은 힘이 강하다. 그 자체로 강력한 투쟁심이 되어 마음속 걱정을 이긴다.
나는 용기 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말하고 다녀보기로 했다.
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대형 IT 벤처 창업 동아리 SOPT를 단체 회장을 거쳐 계속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변에 IT 분야 쪽 친구들이 정말 많았는데, (한 기수에 200명씩 활동해서 이때쯤에 내 주변의 모든 관계와 인간의 풀이 개발자나 디자이너로 꽉 차있는 수준이었다.)
주변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친구들에게 이 아이디어를 말할 때마다 모두들 관심을 가지고 흥미로워했다. 물론 내가 눈을 반짝거리다 못해 쌍심지를 켜고 아이디어를 설파하고 다녔기 때문에 반응을 강요받았을 수 있지만, 대체로 기발하다라든가 한마디로 재미있다는 반응이었다.


이 지점에서 초기의 아포피스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때마다 마치 피가 빨리 도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 B와는 아포피스에 대해 밤을 꼬박 새 가면서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아직도 침대에 누워 전화를 하다가, 벌떡 일어나서 그 친구와 침을 튀기며 토론했던 순간이 기억이 난다. 이 친구는 철학을 전공한 친구였다. 대체로 "죽음과 삶은 철학적으로 어떠한 의미 등으로 풀어내는데, 이 철학가의 사상을 서비스에 녹여보는 건 어떠냐?" 이런 류의 말들이었다. 신나게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으면 창 밖에서는 은은한 빛이 들어왔다. 해가 뜨고 있었고, 나는 모든 걸 쏟아낸 개운함을 느꼈다. 어느새 밤이 다 가버리고 아침이 와서 어리둥절한 채로 잠에 들었다. 되돌아봐도 무언가를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꿈과 같은 경험이었다.



아포피스 기획의 구체화
피가 빨리 돌던 Ideation(아이데이션)을 뒤로하고,
죽음을 향한 서비스를 어떻게 구체화할까?



1.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그렇게 세계를 구축한다.
점을 잘 찍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


IT 창업 동아리 SOPT 때 중간발표했던 PPT. 지금 보니까 정겹고 귀여운 수준.


대부분의 기획의 일이 그렇겠지만,
서비스 기획 또한 인간이 안고 있는 하나의 '문제'에서 시작해서 '해결'로 끝마무리를 짓는 분야이다. 하지만 인간의 문제는 그게 어떤 것이든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에서 해결로 하는 길은 장대하고 길고 척박한 길이다. 아이데이션을 해서 어떤 세계의 점을 찍었다면 그 세계를 탄탄하게 확장해야 한다.
즉 하나의 문제에서 시작한 '점'은 그 문제의 여러 해결 방법 '선'의 형태로 뻗어나가는데, 뻗어나가는 첫 선이 탄탄해야만 나중에 다양한 선들이 이어져 그 세계를 해결하는, '면'으로 구축할 수 있다.

나의 사적인 죽음이라는 '점'에서 시작한 서비스는 어떤 '선'들로 빠져나가야만, 타인의 문제도 해결해주는 '면', 즉 세계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어떤 가치를 타인에게 건네주고 싶어 하는 걸까?

더 딱딱하게 정리하자면,
서비스 기획의 시작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며, 아무리 탄탄히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은  1. Problem(문제) 그리고 2. 그 문제에 대한 다양한 Solution(해결책 중에 어떤 방식을 선택하는가.) 그리고 3. Value Proposition(어떤 핵심 가치를 주고 싶은가) 일 것이다. 위에서 나는 문제를 점, 여러 해결 방법을 선, 실현된 해결이자 가치는 면, 즉 세계로 표현했다.

기획을 배우면서 족히 몇십 번은 들었던 이야기는, '문제'를 파고들어서 잘 설정하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충분히 파고들지 않았을 때 표면적이거나 허구적이다. 사실 기획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이러한 실수를 왕왕 저지른다.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다른 이상한 곳에서 찾는 것. 아주 미묘한 차이더라도 문제의 원인을 뿌리째 뽑지 못하고, 엄한 곳을 파내고 있으면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 정의만 완벽하게 한다면 해결책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사적인 문제도 이러한데, 여러 사람이 가진 핵심적인 문제를 찾는 것은 어렵다. 기획자도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지.


내가 서비스 아포피스가 가진 문제/해결/가치는 이것이었다.

1. Problem (문제): 
바쁜 일상 어딘가에 치여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들은 대부분의 삶을 흘려보낸다. 삶의 전반적인 방향성, 삶 그 자체, 자기 자신, 자신의 욕망 등에 대해 살펴보고 회고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로 인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자신의 모습이나 삶에 대해 무지하다.
하지만 알고 싶어 한다. 매 순간 알고 싶어 하지는 않지만, 힘들 때나 삶에 전환기가 왔을 때. 어떤 인간이든 삶의 특정 시점에는 꼭 그러한 것들을 알고 싶어 한다.

2. Solution (해결):
죽음은 삶을 조명하는 데 아주 좋은 장치다. 죽음 앞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면. 지난 삶을 회고하고 점검하고 남은 날을 하루하루 놓치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더 잘 보내고 싶어 한다.

3. Value (가치):
이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이 마치 과거의 나처럼 죽음을 통해 삶을 깊숙이, 또는 새로운 시점에서 보고, 자기 자신의 존재, 자신이 원하는 것,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사실 이제 와서 보면 (아포피스를 한 지 1년이 지났으니) 역시나 서비스의 문제와 해결을 잘 잡은 편은 아니었다. 문제부터 해결까지 모두 추상적이고 철학적이어서 현실과 맞닿아있지 않았고, 이러한 아포피스의 두루뭉술한 문제 제시는 날 지금까지 고통스럽게 한다. 한마디로 너무나 빈약하지만 쓸데없이 거창한 가설을 증명하는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2.  뻗어나가는 선들
어떤 해결 방식을 선택할까? 죽음을 어떻게 선명하게 제시할 수 있을까?



- 2068년의 소행성 충돌까지 D-day 어플은 어떨까?

처음에는 단순하게 '아포피스'라는 소행성이 2068년쯤에 지구와 충돌해 지구를 멸망시킬 가능성이 있으니, 2068년쯤에 어느 날짜를 D-day로 하는 지구 멸망으로 인한 죽음까지의 D-day 앱을 만들어볼까 생각했다. 그때 정말 소행성 충돌로 지구가 멸망할지 안 할지는 몰라도, 혹시 모를 미래 자신의 죽음을 실체화하거나 수치화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마치 영화 <인 타임> 느낌이 나는 죽음 타이머 같은. 죽음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해주는 타이머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서비스?

아포피스 충돌로 인한 지구 멸망 예측 날짜인 2068년의 특정 날짜로 따지면 대략 3000일 정도가 남았다.



영화 <인 타임>에서는 모든 가치가 삶의 시간이다. 삶의 남은 시간을 표시해주는 타이머.




하지만 언뜻 생각만 해봐도 그것으로 누군가에게 큰 영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2068년까지는 대충 계산해봐도 40년이나 남아있기 때문에 위기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즉, 40년이라는 숫자 앞에서 죽음을 염두에 둔 자신의 삶을 깊게 파고들 것 같지 않았다.

과거의 나의 경험을 다시 되짚어보자면, 지구 멸망이라고 예언된 2012년 12월까지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었다. 죽음을 목전에 앞둔 채였기 때문에 여러 고민과 생각이 가능했던 것 같은데.

지구 멸망이 40년 후라면....
"40년 후? 꽤 오래 살아남은 만족스러운 인생인 것 같은데. 그 정도면 호상이야."라고 할 것만 같다.


그래 40년 후 죽음은 너무 길다. 그렇다면 향후 죽음이 가정되는 기간을 줄이자.
'한 달? 일주일?'
한 달은 너무 길 것 같기도 하고 일주일은 너무 짧은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앱 서비스의 리텐션(서비스를 지속해서 사용하는 것)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한 달 쓰고, 또는 일주일 쓰고 끝이 나야 하는 걸까? 서비스 아포피스의 중대한 리스크를 처음 맞닥뜨렸다.
미래의 죽음의 시간을 가정하는 서비스라고 한다면 가정한 죽음 날짜 이후에는 서비스를 어떻게 사용하게 되는 걸까? 이 문제는 날 계속해서 따라오게 된다.


3. 유서라는 선
조각조각 머릿속에 떠오르는 서비스의 장면들


- 유서 쓰기

한창 서비스를 여러 방향으로 구체화하며 생각해보던 중에 불현듯 친구 C가 지나가다가 툭 던졌던 말이 떠올랐다. 나의 소위 ~이상하고 또 이상한 친구들~ 바운더리 안에 있는 한 명이었다. 항상 가장 원하는 삶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신은 자유를 원한다고 답하던 친구였다.

"너 유서 써봤어? 유서 한 번 써봐. 진심으로 죽는다고 생각하고. 집중해서 써보는 거야. 삶이 힘들거나 지겨워질 때쯤 모든 것을 정리하는 데 꽤나 좋아. 쓰면서 시원하게 울기도 하고." 

과거 내가 코로나19의 시대가 처음 열릴 때 동아리 SOPT, 대형 단체의 회장을 하면서 힘들어할 때 친구 C는 유서 쓰기를 추천해줬었다. 그 말을 듣고 흥미가 생겼던 나는 그 친구에게 이것저것 물어봤었다. 유서를 왜 쓰게 되었고, 유서를 쓰고 어땠는지를.
실제로 유튜브에 검색해보면, 몇몇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상담할 때 진행하는 하나의 방법 같기도 했다.
서비스 구체화 과정에서 그 말이 떠오르면서 머릿속에 띵-하고 그림이 하나 그려졌다.


특정 시간에 죽는다고 설정하고 자신의 죽음을 가정하는 서비스인데, 
서비스 마지막쯤에 유저가 유서를 쓰면서 엉엉 울었으면 좋겠다.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마지막쯤에 엉엉 우는 유저를 상상하며 희열을 느꼈다.
스스로 조금은 변태 같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미리 유서 쓰기'는 항상 어느 정도 수요가 있다. 삶을 넓은 관점에서 회고하기에 가장 명료하고 좋은 방법.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하고 이상한 친구들을 만나 다양하고 이상한 이야기들을 했다.
대뜸 전화를 하거나 만나서는 죽음에 대해, 그리고 이 서비스에 대해, 물어봤다. 지난 이야기들에 등장한 친구 A, B, C는 물론이고 많은 친구들을 잡고 늘어졌다. 죽음과 삶에 대해, 내가 아닌 타인은 정말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생각의 가장 안쪽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파고들었다. 다양한 상상과 구체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서비스의 토대를 잡았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가정하고 죽음까지 남은 날들 동안 죽음과 삶을 관통하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던져주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죽음을 가정한 기간은 너무 길면 안 된다.
위기감이 사라져서 절실하게 자신의 죽음과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1. 서비스는 7일 후의 죽음을 가정한다.
2. 일차마다 다양한 주제를 던져주고 그에 대해 기록하게 한다.
    주로 자신의 삶 자아 그리고 죽음.
3. 가정한 죽음 전 날에는 유서를 쓴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여기저기 치열하게 대화를 하면서 큰 뼈대는 모두 나왔다.
나의 아포피스를 더 날카롭게 뾰족하게 갈아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아포피스의 콘셉트를 가지고 다양한 사람의 심층 인터뷰와 MVP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함께 써 내려가는 삶의 마지막 대화. 아포피스 제작 일기 시리즈>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을 담아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재밌게 읽으셨다면, 구독/좋아요/댓글로 마음을 건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화부터 이어집니다>

1화 _ 죽음은 어떻게 서비스가 되는가.

https://brunch.co.kr/@azhambahut/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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